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100화 (100/110)
  • 18.

    “기분도 꿀꿀한데 무도회에 참석하는 건 어때? 황실에서 무도회를 연다고 초대장이 왔던데?”

    힐다의 얼굴을 보고 난 이후 리첼의 기분이 계속 좋지 않자 레이나가 무도회에 참석할 것을 제안했다.

    “무도회라….”

    다행히 리첼의 납치 사건은 사교계에 소문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매번 먼저 소문을 내고 다니던 레녹스 공작이 이번엔 입막음을 시켰다.

    ―납치 사건에 대해 입을 연 자는 가만두지 않을 게야.

    그는 납치 사건과 관련된 이들에게 입조심을 시켰고, 메리오너스 가문에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메리오너스 자작도 아들이 다쳤기에 역시나 소문이 퍼지는 걸 원치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카페에서 난 연기는 레녹스 기사들이 실수로 연막탄을 떨어뜨린 것으로 결론을 내린 후 공작이 합의금을 지불하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도와준 건 고맙지만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건지.

    레녹스 공작의 딸이지만 리첼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소문이 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뭐. 소문이 났어봐. 무도회에 참석하는 순간 모든 시선이 언니에게 향했을 거야. 다행인 줄 알아.”

    리첼과 달리 레이나는 아버지의 변덕엔 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리첼은 무도회에 참석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때마침 레녹스가를 방문한 카일에게 물었다.

    “내 파트너로 참석하는 거 어때요?”

    “죄송한데 그날은 일이 있습니다. 황실에 가긴 할 테니 시간이 된다면 무도회장이 아닌 곳에서 마주칠 순 있겠군요.”

    카일과 함께 참석하면 몰라도 그도 가지 못한다니 무도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난 그냥 안 갈래.”

    “그래? 그럼 나는 리리스와 둘이서 참석할게.”

    리첼은 레이나의 제안을 거절했고, 레이나는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무도회 당일 레이나는 몸이 좋지 못해 무도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리리스 미안, 콜록콜록. 가까이 오지 마. 감기 옮아.”

    레이나는 기침을 하며 리리스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저지했다.

    “난 가고 싶어! 가고 싶단 말이야!”

    그러자 리리스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황궁에 가셨기에 리리스를 데려갈 사람은 리첼 밖에 없었다.

    “리첼 언니 나랑 가자! 맛있는 디저트 먹고 싶단 말이야! 레이나 언니 것도 가져올 거야.”

    “…알았어.”

    리리스가 울면서 졸랐고, 어린 리리스 혼자 무도회에 갈 순 없었기에 리첼은 그녀와 함께 무도회에 가야만 했다.

    ‘리리스가 싫증날 때쯤 대충 눈치 보고 돌아오든지 해야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리첼은 결국 비아와 리리스와 함께 무도회에 참석했다.

    리리스의 퉁퉁 부은 눈을 얕은 화장으로 가려야 했기 때문에 무도회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이미 레녹스 공작 부부가 먼저 참석했으므로 리첼 일행이 늦게 도착해도 상관은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후 리첼은 리리스와 함께 주변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려던 그때였다.

    “어? 선생님!”

    리리스가 누군가를 발견하곤 해맑은 미소와 함께 그쪽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이라니? 리첼은 리리스가 달려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단정히 올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

    ‘카일?’

    분명히 일이 있어서 바빠서 참석 못 하겠다는 그가 연회복을 차려입었고, 그리고 그 옆에는….

    ‘클라라?’

    어째서인지 카일은 클라라의 파트너로서 그 옆에 서 있었다.

    ‘더 우울해졌네.’

    그 와중에 카일의 모습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리첼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비아도 카일을 봤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리첼에게 속삭였다.

    “나도 모르겠어. 분명히 내게는 바쁘다고 했거든.”

    리첼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카일과 클라라에게 인사할까 하고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지금 대화했다간 괜히 카일에게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것만 같았다.

    ‘첫 춤은 설마 클라라와 추는 건 아니겠지?’

    대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카일은 첫 춤을 클라라와 함께 추려고 하고 있었다.

    “!”

    그 순간 리첼은 배신감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

    이제 보니 바람둥이는 펠릭스가 아니라 카일 같았다.

    리첼은 이제 잡은 물고기라고 이젠 다른 여인들도 눈에 들어오기라도 하는 걸까.

    ‘설마 사제를 그만둔 것도 여러 여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아냐?’

    마음 한구석에선 카일이 그럴 남자가 아니라는 걸 믿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구석에서는 어쩐지 열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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