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99화 (99/110)
  • 17.

    힐다의 말을 듣자 리첼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나?

    그녀가 생각하는 레녹스 공작은 매번 눈치 없이 그녀의 일을 방해하고 틈만 나면 일하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도망 다녔고, 기사단장과 부기사단장이 번갈아 가며 그를 찾으러 다녀야만 했다.

    그래서 레녹스 가문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밤에도 잘만 주무신다는데…. 밤마다 붉은 눈이 힐다를 감시하다니?

    리첼은 힐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장에선 아버지의 어떤 점이 무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힐다에게 내린 처벌도 조금 약한 거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태도를 보니 무언의 정신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약한 처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너한테 붙잡혔을 때 말한 적 있지? 뒷감당할 수 있냐고 말이야. 그런데 넌 그때 내 말을 비웃으며 무시했지.”

    “아, 아니에요.”

    힐다는 리첼의 말을 부정했다.

    “펠릭스 님도 네게 분명히 경고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 말도 넌 그냥 넘겼잖아.”

    “그땐 제,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드레스를 붙들고 있는 힐다의 손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난 그때 분명히 얘기했던 거로 아는데? 날 풀어주면 납치하고 위협한 죄는 그냥 묻고 넘어가 주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 당시에 넌 내 말을 듣지 않았잖아? 이렇게 아쉬울 때만 갑자기 공손해진 태도를 보면 내가 네 행동이 진심이라 생각할 수 있겠니?”

    “진심이에요. 진짜 반성하고 있어요.”

    치맛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더니 힐다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이, 이렇게 빌어요. 그러니 제발….”

    힐다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외쳤다. 리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칼에 독을 묻히고 펠릭스 님께서 다쳤을 때부터 난 너를 용서할 마음 따윈 없었어. 내 경고를 몇 번이나 무시했으니 이젠 너도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이, 이번 한 번만이라도 서, 선처해주세요. 네?”

    “선처?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사형도 면했고, 메리오너스가의 보복이 없다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 레녹스 가문의 방식에 따라준다고 했거든.”

    “살려주…세요.”

    리첼의 말을 들은 힐다의 눈빛엔 절망이 가득했다.

    “난 그냥 네가 여전히 내게 무례하게 행동하는지 보러 온 것뿐이야.”

    리첼은 힐다가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수건 한 장을 건네곤 감옥에서 나왔다.

    “공녀님, 제발 살려주세요! 공녀님!”

    뒤에서 힐다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리첼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뻔뻔하게 시비 걸고, 괴롭힐 땐 언제고 곤경에 처하니 갑자기 공녀님 거리며 비굴해진 그녀의 태도가 괘씸했다. 아무리 경고를 날릴 땐 그리 무시하더니 이제 와 살려달라니.

    차라리 감옥 안에서도 뻔뻔한 태도로 일괄했으면 이렇게까지 리첼의 기분이 더럽진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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