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94화 (94/110)

16.

“괜찮으십니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레녹스가의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빛이 났던 방향을 따라 찾아온 듯 보였다.

제일 앞에 기사단장 패트릭의 모습이 보이자 리첼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워낙 실력이 뛰어났기에 힐다가 다시 마법 도구를 가지고 일어난다고 한들 그가 모두 막아줄 것만 같았다.

“난 다친 곳 없이 괜찮아요. 다만….”

리첼이 펠릭스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패트릭은 자신의 형을 보자마자 놀란 눈으로 그에게로 달려갔다.

“어?”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카일의 모습이 보였다.

“공녀님….”

카일은 리첼을 부르려다가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는 펠릭스의 모습을 보자 심기가 불편한 듯 갑자기 말을 멈추고 굳어버렸다.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저 때문에 다치셨어요.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독이 온몸에 퍼진 것 같아요.”

리첼은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라도 해독제라도 있는지 묻자 패트릭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완전한 해독제는 아니지만 일시적으로 독을 해독하는 약과 진통제는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약으로 목숨은 부지할 것 같았다.

패트릭이 펠릭스에게 약을 먹이려 했지만, 카일의 손이 그를 저지했다.

“이 자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전히 인상을 쓴 카일의 시선이 펠릭스를 향했다.

“우연히 제가 납치당하는 걸 보셨대요. 그래서 저를 구하러 오셨다가 저를 대신해 다치셨어요.”

카일에게 말하면서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녀 때문에 그가 죽을까 봐 걱정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요.”

잠시 카일의 눈동자에 분노가 보이는 듯했다. 착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그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커다란 분노의 감정을 느낀 걸 본 건 두 번째였다. 그 대상은 두 번 다 펠릭스였지만.

“한시가 급해요. 얼른 약을 먹여야 해요.”

리첼이 또다시 패트릭에게 약을 먹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도 카일이 막았다.

“저자가 신경 쓰이십니까?”

카일은 펠릭스가 지금 이 자리에 있고, 리첼이 그에게 신경 쓰고 있는 것 자체가 탐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다, 당연하죠.”

질문이 이상했다. 다쳤으니 신경 쓰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왜 자꾸만 약 먹이려는 걸 방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만 그에게서 떨어져 주시겠습니까?”

“네? 네.”

카일의 말을 들은 리첼과 패트릭은 펠릭스에게서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그러자 카일이 펠릭스에게 다가가 그의 등 위에 손을 얹었다. 곧이어 펠릭스의 몸에서 잠시 빛이 나더니 그 빛은 그대로 그의 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리첼은 입만 살짝 벌린 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다른 기사들도 놀랬는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다 됐습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카일이 말했다.

“네? 다 되다니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리첼이 물었다.

“치료가 끝났습니다. 이제 그를 걱정하실 필요는 없고, 이제 그를 신경 쓰실 필요도 없습니다.”

단 몇 분 사이에 치료가 끝나다니. 믿을 수 없는 말에 리첼은 잠시 멍하니 카일을 바라보았다.

“거, 거짓말 아니죠? 진짜로 치료가 끝났다고요? 몸 안의 독이 없어지기라도 한 건가요?”

카일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내 가능할 일이 아니었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러면 왜 펠릭스 님은 깨어나질 않는 거죠?”

리첼이 펠릭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다.

“제가 잠시 재웠습니다. 독은 완전히 제거했으나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으니 한숨 푹 자고 나면 나아질 겁니다.”

“감사합니다.”

카일의 말을 듣자마자 패트릭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한 후 다른 기사들에게 펠릭스를 메리오너스가로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

“진짜 이렇게 빨리 나았다고요?”

리첼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몇 번이고 되물었다.

“네. 궁금하시다면 내일 메리오너스가로 찾아가 보십시오.”

“카일 님은 원래 회복 마법을 쓸 수 있었나요?”

직접 쓸 수 있는 마법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카일이 마법사이기에 치료 능력은 있을 순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다쳤을 때 상처가 아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은데요?”

카일이 독을 먹고 쓰러졌을 때 그의 몸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게다가 지, 지난번 체력 회복약도 이, 입을 통해 줘, 줬던 기억이…?

“….”

카일은 대답 대신 리첼에게 다가왔고, 그대로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로 덮었다. 그는 말하기 곤란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입을 막곤 했다. 난감하다는 표정이라도 지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뻔뻔한 태도로 그녀의 입안을 더듬었다.

‘역시나 치사해.’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기에 리첼은 카일의 목에 손을 감곤 더욱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목숨을 위협당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그의 키스는 부드럽고 기분이 좋았다.

“워후. 저희는 먼저 내려가 볼게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놀란 기사들이 펠릭스와 힐다를 각각 어깨에 들쳐 메고 눈치껏 자리를 피하려 했다.

“리첼! 괜찮느냐, 리첼? 감히 레녹스가를 건들다니! 간도 크군. 내가 가만히 있을 줄….”

하지만 하필이면 저 멀리서 분노에 휩싸인 레녹스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씩씩거리고 왔다가 리첼과 카일의 모습을 보고 놀라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레녹스 공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키스를 멈춰야만 했다. 아쉬움만 남긴 채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타이밍이 참…. 정말 도움이 안 돼.’

리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레녹스 공작에게로 걸어갔다.

“보다시피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펠릭스 님이 저를 구하려다 대신 다쳤고, 카일 님의 목걸이가….”

리첼이 카일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구했으니까요.”

리첼은 이어 말을 했다. 말을 듣자 레녹스 공작이 카일에게 다가갔다.

“역시 자네의 힘을 믿길 잘했군.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모두 저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공작님의 얼굴을 보기 부끄럽습니다.”

카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건 아닐세. 정신 나간 여자가 벌인 짓이 왜 자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숲을 나가세. 자, 다들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레녹스 공작은 그와 함께 온 기사들과 리첼의 호위를 맡은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레녹스 공작은 얼마나 화가 났던지 힐다를 정신 나간 여자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의 보복이 심할 것 같기에 힐다가 조금 불쌍해지기도 했지만,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들기에 리첼은 애써 그녀의 미래엔 간섭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자, 가시죠. 지금부터는 제가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카일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어디 한번 믿어볼까요?”

그의 손을 잡으려 한 순간 몸이 붕 뜨는 걸 느꼈다.

“!”

남들이 보는 앞에서 안기니 부끄러웠다. 얼굴이 점차 달아올랐다.

“왜….”

“발뒤꿈치에 상처가 났습니다.”

리첼은 그제야 높은 굽을 신고 뛰느라 까지고 헤진 자신의 발을 보았고, 긴장이 풀리니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마법으로 고쳐줄 수 있잖아요.”

펠릭스도 살린 그가 리첼의 발을 치료 못 할 리 없었다. 치료도 하지 않고 안아 올리다니?

“그냥 제가 이러고 싶었습니다.”

리첼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순간 귓가에 그의 숨결이 닿는 동시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을 녹일 듯한 감미로운 목소리에 리첼의 얼굴은 폭발할 것만 같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재빨리 카일의 목에 손을 둘러 낯빛을 감추고자 했다.

그 뒤로 마차에 도착할 때까지 레녹스 공작의 험악한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리첼은 애써 그 눈빛을 무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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