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리첼은 펠릭스의 손을 뿌리치려고 있는 힘껏 그를 밀어내려 했건만 강한 힘에 밀려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펠릭스가 손목을 잡아당기자 단단히 죄어든 팔에 이끌려 그의 품 안에 안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리첼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펠릭스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으… 으읍!”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펠릭스의 가슴을 밀어내며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입맞춤은 달콤했기에 저항하려던 몸짓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거칠게 그녀의 입안을 헤집었다.
예전에도 리첼의 안에 들어왔기에 그는 그녀가 흥분하는 곳들을 알고 있었다.
얽히지 않으려 버텼지만, 흥분하는 곳들을 건드리자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몸에 저릿한 자극과 함께 쾌감이 느껴졌다.
‘거, 거절해야 해.’
이 이상 했다간 펠릭스에게 끌려갈 것 같은 예감이 들자 리첼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술이 떨어지는 걸 막기라도 하는 듯 펠릭스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더욱 세차게 잡았다.
“아, 안 돼요!”
리첼은 온몸의 힘을 써서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다행히 두 사람의 입술은 떨어졌지만 리첼은 펠릭스의 활활 타오르는 눈빛과 마주쳤다.
“!”
갑자기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는 평소와는 달랐다. 리첼을 뺏기고 싶지 않은 질투심, 다시 뺏어올 수 있다는 기대에 찬 흥분으로 인해 이성적인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빨리 벗어나야 해.’
리첼이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펠릭스의 손이 더 빨랐다. 그녀의 치마를 들어 올리더니 은밀한 공간으로 들어오려 했다.
재빨리 치마를 내리며 버티려 했다. 하지만 펠릭스의 빠른 손에 그녀의 저항은 힘을 잃었다. 그의 손이 그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아… 안 된다고요!”
리첼이 수십 번 ‘안 돼’를 외치지만 펠릭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왜 이렇게 제 손길을 거부하려고 하는 거죠? 제가 만지는 것이 싫은가요? 그럴 리 없을 텐데요?”
펠릭스는 리첼이 그를 거부할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말이 맞긴 했다. 그가 만질수록 그녀의 몸이 제멋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은 느끼고 있었다. 그 역시 궁합이 잘 맞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몸의 이끌림이 이렇게까지 강할 줄 몰랐다.
한 번 닿으니 이런 사실을 깨달을 줄이야. 펠릭스의 능란한 손놀림이 너무나 달콤해서 이대로 있다간 그가 원하는 대로 휩쓸릴 것만 같았다.
“아, 안 돼.”
의지와 달리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그는 손끝만으로도 리첼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참지 말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줘요. 그럴수록 난 더 흥분하니까요.”
리첼의 귀에 대고 펠릭스가 야릇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 또한 자극적으로 들렸다. 감미로운 함정에 빠져 이대로 진짜로 그와 해버릴 것만 같았다.
‘안… 돼. 벗어나야만 해!’
억지로 지배하려는 그의 손등을 온 힘을 다해 꼬집고 비틀었다.
“아아악!”
얼마나 심하게 꼬집었는지 펠릭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단 그의 손을 뺐다. 그리곤 빨갛게 물든 자신의 손등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당신도 내게 끌렸던 것 같은데 그건 제 착각이 아니라고 확신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왜 거부하는 건가요? 나와 자고 나면 당신의 생각이 바뀔 거라는 걸 당신도 잘 알 거 아니에요? 본능적으로 내게 끌리고 있잖아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제가 잘 알 거라고요?”
펠릭스의 영문 모를 소리에 리첼은 황급히 옷매무새를 바르게 정리한 후 그에게 물었다.
“궁합.”
짧은 말이었지만 그 순간 리첼의 눈동가 흔들렸다.
갑자기 궁합이라니? 그와 그녀가 잘 맞을 거라 본능적으로 느낀 걸까. 아니면 그 사실을 알게 된 걸까.
펠릭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생각을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선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말에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궁합이 잘 맞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모른 척해도 소용없어요.”
리첼의 동공은 또다시 흔들렸다. 펠릭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의 주변 인물 중에 그에게 그 사실을 알릴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그러면 전 상처받아요.”
펠릭스가 괴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어 말을 했다.
“고백 따윈 하지 않아도 우리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당신의 마음이 돌아섰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애매한 태도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과거에 신사답게 굴었던 자신이 행동을 후회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저도 당신에게 끌리긴 했어요.”
“그렇죠? 그런데 왜…?”
그러자 펠릭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당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죠? 당신에 대한 마음이 주춤한 사이 다른 분이 제 마음에 들어왔어요. 상처를 준 것만 같아 미안해요.”
“아직 우리 사이는 되돌릴 수 있어요. 그러니깐 한 번만 하자고요. 서로에게 몸이 이끌리니 나랑 잔다면 분명히 당신의 마음도 다시 나를 향할 테니까요.”
거절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펠릭스는 다시 그녀를 조르기 시작했다.
“대체 왜 자꾸 몸이 이끌린다고 말씀을 하시나요. 궁합은 또 무슨 얘기고요? 대체 왜 우리가 궁합이 맞을 거라 확신에 차 있는 거죠?”
리첼은 이대론 그와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전 성녀님, 아니 이젠 힐다 양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 전 저를 찾아와 말씀해주셨어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목걸이가 궁합이 맞는 상대를 알려준다고 말이에요.”
“힐다 양이라고요?”
또? 펠릭스의 입에서 힐다의 이름이 나오자 리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 신전에 들렀는데 제게 할 말이 있다고 다가오더니 목걸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당신과 저는 운명으로 묶여있다면서요.”
펠릭스의 태도가 갑자기 변했나 했더니 이번에도 힐다와 관련이 되어있었다.
리첼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힐다가 성녀 직을 박탈당하고 구두 닦는 봉사를 한다기에 일단 지켜보는 중이었다.
성녀에서 갑자기 구두닦이로 자존심이 몹시 상할 것이기에 정신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라 긍정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게다가 신전에서 감시 중이기에 당분간 조용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자극하지 않으려고 찾아가지 않았건만, 이런 식으로 또다시 일을 벌일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와의 악연이 지긋지긋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전으로 구두 닦으러 가서 그 면상을 발로 찼어야 했는데 아까웠다.
그녀 대신 다른 영애들이 분풀이했다기에 참았는데!
‘역시 실수인 척하면서 내가 직접 육체적인 폭력을 가했어야 했나.’
힐다는 리첼과 카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펠릭스를 이용한 것 같았다. 아마도 카일과의 얘기는 빼고 펠릭스와 궁합이 맞다고 그를 부추겼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포기하는 마음이 쏙 들어가고 다시 자신감이 들 테니깐 말이다.
그러니 펠릭스는 리첼이 계속 거절해도 굴하지 않고 자신 있게 계속 들이대는 중일 것이다.
“보아하니 사실이군요. 그 말을 듣고 당신과 있던 일들을 되돌아 생각해 봤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당신이 제게 접근하려 했던 걸 느낀 적이 있었죠. 그리고 저도 모르게 당신에게 자꾸 끌리는 걸 부정할 수가 없더군요.”
“….”
펠릭스의 말이 사실이라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줘요. 우리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운명.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운명일지는 몰라도 인연은 아니었다.
‘차라리 모든 사실을 말하는 편이 나으려나?’
리첼은 목걸이 색이 변한 이는 한 명이 아니라는 걸 펠릭스에게 말해야 하나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