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가 옆으로 눕자 이제 끝났거니 하고 리첼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틀려고 했더니 카일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그 바람에 몸을 반만 비틀었다. 또다시 그녀의 등에 탄탄한 카일의 가슴이 닿았다.
“?”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또 하다니.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진짜였어…?’
그만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나오기도 전에 또다시 견딜 수 없는 쾌감이 흘러나왔기에 리첼은 생각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대신 그녀의 입에선 교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목덜미에 카일은 그의 코를 묻었고, 와인의 향과 맛을 음미하듯 그녀의 향을 맡았다.
“달콤하군요.”
목덜미 이곳저곳에 그의 숨결이 닿자 리첼의 몸이 흠칫거렸고 저도 모르게 움츠리자 카일의 손이 그녀를 더욱 바짝 당겼다. 그의 혀가 목덜미에 닿자 리첼의 몸이 다시 움찔거렸다.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오자 쿡 하고 웃는 카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곳이 공녀님의 약점이군요.”
“무… 무슨 소리….”
리첼이 카일의 말에 반박하려 했지만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얕은 숨을 후 하고 불자 그녀의 몸이 또다시 흠칫했다.
그러자 카일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 목덜미 여기저기를 탐하기 시작했다.
온몸을 휩쓰는 폭풍 같은 쾌감에 밀려 리첼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카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에게 몸을 맡기며 본능에 충실히 따랐다.
귓가에 들려오는 불규칙한 숨소리, 허리를 다정하게 감싼 손, 땀으로 촉촉이 젖어 번들거리는 부드러운 피부와 등 뒤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근육.
그 모든 것이 정신없이 이어지는 카일의 움직임과 어우러져 리첼에겐 더욱 강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 그만….”
조금의 빈틈이 생기자 리첼은 그만하라는 말이 또다시 나오려 했지만 쾌락에 밀려 그 말들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다.’
결국 리첼은 이성적인 판단은 포기한 채 아직 소모되지 않은 욕망에 모든 걸 맡겼다.
이젠 리첼의 머릿속엔 오로지 쾌락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경이로운 감각에 취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또다시 절정에 접어든 후 리첼은 거친 숨을 쉬며 침대 위에 누웠다.
이제 끝났겠거니 했더니 갑자기 카일이 리첼의 몸을 세웠다.
“아, 안 돼!”
리첼은 일어나지 않으려 반항했지만 카일의 힘에 이끌려 몸이 세워졌고, 그와 마주 보며 앉았다.
“말씀과는 다르게 솔직한 몸이군요.”
카일의 손이 리첼의 예민한 곳에 닿았다. 몸은 머리의 지시에 반하여 계속 그를 원하고 있었다. 리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히, 힘들단 말이에요. 조금만 쉬어요.”
“이렇게 저를 계속 원하는데. 진심입니까?”
결국 머리보단 몸의 본능에 따라 리첼은 이미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카일의 목에 손을 감았고, 포기하는 듯 그의 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이번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예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카일은 이번엔 그녀의 말에 흔쾌히 수긍했다. 너무나 격렬한 움직임으로 지쳤기에 이번에는 조금 느긋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쾌감의 폭풍에 휘말리자 두 사람의 움직임은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려던 리첼의 이성은 날아가고 어느새 본능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 뒤로도 카일은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며 리첼의 몸에 구석구석 뜨거운 낙인을 찍으며 절정에 이르렀다.
카일과 새로운 기술로 사랑을 나눌 때마다 리첼의 안에선 더 큰 불꽃이 피어올랐다.
리첼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도,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에 그가 다가오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굴복하곤 오로지 카일에게만 모든 걸 열중하며 쾌감을 즐겼다.
하지만.
“이제 좀 쉬었으면….”
적당히 해야 할 것을. 무한히 흘러넘치는 그의 힘에 리첼은 이젠 진짜 몸이 버틸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절정에 오르자 몸은 온 힘이 빠져 연체동물처럼 흐물거렸고, 목도 약간 쉬어 버렸다.
마법이라도 쓰는 걸까. 분명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날은 이제야 어두워지고 있었다.
“많이 힘드십니까?”
“네. 이 이상 못할 것 같아요.”
넋이 나갈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기에 리첼이 이대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저런.”
그녀의 대답을 듣자 카일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기에.’
잠시 숨을 고르며 카일을 바라보았다. 불규칙적인 숨을 내쉬곤 있지만 그는 여전히 리첼만큼 힘들어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그의 몸은 팔팔했다.
리첼은 애써 그녀가 본 걸 외면하려 했다. 지금 그녀로선 이 이상 할 수 없었다.
“그, 그만 해요. 이제. 기력이 없어서 못 해요.”
그래서 리첼은 또다시 강조하듯 못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
리첼의 말에 카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의 옷을 들었다.
“?”
갑자기 이상한 그의 행동에 리첼은 일단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카일은 그 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침대 앞까지 걸어왔다.
“그 병은 뭐예요?”
의문의 병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대답 없이 병을 열어 마셨고, 마시자마자 리첼의 눈앞에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곧이어 리첼의 턱에 그의 손이 닿았고, 입술이 살짝 벌어진 사이 그의 입술이 닿았다.
“?!”
그 순간 그녀의 목을 타고 상쾌한 무언가가 흘러들어왔고, 몸 안에 어떠한 힘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놀란 눈으로 카일을 바라보자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대, 대체 무슨 짓을?”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 약을 드렸을 뿐입니다.”
“!”
리첼은 카일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기, 기력을 회복하다니요?”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팔을 잠시 움직였다. 분명히 힘이 빠져 들어올릴 수 없던 팔이 가볍게 들렸다.
리첼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 못 일어나겠다고 끙끙거릴 정도로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진 걸 느꼈다.
“흠흠.”
게다가 쉬었던 목소리도 어느새 평상시대로 돌아와 있었다.
“서, 설마?”
카일이 앞으로 다가와 가볍게 그녀를 들어 그의 품에 넣었다.
리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일을 쏘아보았지만 그는 그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의 입술로 그녀의 이마, 눈썹,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어떠십니까? 몸이 상당히 가벼울 텐데?”
“서, 설마 약을 챙겨오셨어요?”
“우연히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거, 거짓말!”
“공녀님께서 저를 덮칠 줄 제가 알 리가 없잖습니까.”
“….”
카일의 말은 맞긴 했다. 하지면 평소에 저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니. 그것도 이상했다.
“저런 약을 왜 가, 가지고 다니시는 건가요?”
“그냥 가벼운 기력 회복약일 뿐입니다만?”
카일은 리첼을 놀리듯 쿡 하고 웃으며 말끝을 올렸다.
‘마법사라더니. 하필….’
할 말이 없어진 리첼이 카일을 다시 쏘아보았으나 그는 여전히 능청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은 이렇게까지 안 했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제 모든 걸 하나하나 차근차근 알려드린다고. 제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있었는지 공녀님께서 몸소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마법으로 시간을 늘렸으니 우리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게 이 뜻이었어?’
평소보다 격하게 행동했기에 그게 그의 모습 전부일 거라고 리첼은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미소는 악마의 미소 같았고, 그가 주는 쾌락은 지옥에서 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