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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76화 (76/110)
  • 13.

    그제야 카일은 그녀가 말하는 바를 알았다.

    하지만 둘만의 비밀이라니…. 레녹스 공작도 알고 있고, 대신관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공작이 대신관에게 카일을 임시직이지만 사제로서 일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미모가 아깝다고 반대했었다.

    하지만 그가 여자들에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자,

    ―젊은 사람이 안타깝군요. 하지만 언젠가 몸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기도를 열심히 한다면 솔레아 신께서도 당신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실 겁니다.

    쓸데없는 말을 곁들이며 그를 견습 사제로 받아들인 것이다.

    대신 신전에서 가장 외진 방을 내주어 신전을 위한 마법이 담긴 물건을 만든다는 계약과 함께.

    이제 평화로운 시간은 끝난 건가.

    일단 비밀로 해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는 성녀를 보니 앞으로의 삶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성녀가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그가 사제로서 신전에 있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퍼졌고 신전을 방문하는 여인들의 수가 늘어났다.

    마법사로 인정받기 전에 조용히 살려고 견습 사제를 택했건만, 어째 일이 더 꼬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카일의 그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저 굶을 테니 그렇게 아세요!”

    성녀가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지 그녀의 교육 담당이 카일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카일 사제님도 신전에 들어오신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아직 견습이기에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제들이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싫어요.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이라 배우기 쉽지 않단 말이에요. 카일 사제님 아니면 더 못 배우겠어요. 그러니 그를 내 교육 담당으로 붙여달란 말이에요!”

    결국 대신관은 성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그가 그녀의 담당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카일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야 원. 내가 사제 얼굴 볼 면목이 없습니다. 미안해서 얼굴을 못 보겠습니다. 한 달만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딱 한 달만.”

    계속 연구하느라 바쁜데 교육까지 맡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대신관이 미안해하며 직접 부탁했기에 카일은 차마 그 제안을 거절할 순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교육 담당으로서 성녀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긴 했다.

    하지만 자꾸 꼬시려는 듯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더더욱 치가 떨렸다. 성녀는 그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사제님!”

    성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팔짱을 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그녀가 그를 부르기 전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사제들 사이에서도 저런 스타일의 성녀는 처음이기에 다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성녀님들은 성녀의 직위를 받고 나면 물러날 때까지 성녀의 역할을 충실히 하셨어요. 왜냐면 짧은 성녀 생활이 그들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 주니까요. 하지만 이번 성녀는 다른 것 같네요.”

    “맞습니다. 이번 성녀님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미래보단 현실을 중요시하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저러다 오래 하지도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는데 걱정이 없나 봅니다. 그렇게 되면 성녀로서 받은 혜택도 모두 뱉어내야 할 텐데요. 쯧쯧.”

    다른 사제들이 카일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말로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힘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카일이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을 무렵. 그에겐 또다시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우연히 마주친 분홍 머리의 여인이 그가 공작에게 준 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그 색이 변했다.

    ‘아마도 레녹스 공작가의 영애겠지.’

    목걸이를 의뢰한 사람의 딸이 그와 궁합이 맞다니….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믿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목걸이가 변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일단 그녀에게 전혀 끌리지 않으니 더더욱.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다른 여인들보단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여인들과는 무언가 다른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레녹스 공작과 행동이 비슷한 것도 다른 여인들과 달리 느껴지는데 한몫 거들긴 했다.

    엉뚱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감정에 솔직한…. 그냥 부전여전이었다.

    ‘얽혔다간 피곤할 것 같은 타입이야.’

    그래서 카일은 되도록 그녀를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가 볼 때 리첼은 그의 시선을 끌려고 신전을 들락날락하는 여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매일 그의 눈도장 찍으려 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실망이 컸기에 목걸이에 관한 건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신전에 매일 찾아왔던 여인들 몇몇은 애인이 생겼대요. 그 뭐라나? 공작가의 영애라는 그분, 리첼 님이라고 했나? 그분도 애인이 생겼대요.”

    성녀는 카일을 보러왔던 여인들에게 남자가 생길 경우 일일이 일러주곤 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그녀의 교육 담당인 그로선 귀를 닫아도 들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인들의 이름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으나 ‘리첼’이라는 이름이 또렷이 그의 귓가에 울렸다.

    ‘애인이라니?’

    목걸이 존재를 알고 있을 리첼이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보니 이상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카일은 속으론 리첼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왜냐면 그도 마음속으로 부정하곤 있지만 그녀에게 조금씩 몸이 끌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 냉대했다고 바로 사라질 관심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의아함을 느꼈다.

    카일은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레녹스 공작에게 준 목걸이가 오작동을 한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이걸 쓸 일이 생기다니….’

    카일은 레녹스 공작이 룩스 대륙을 떠나자마자 그에게 주었던 목걸이와 비슷한 목걸이를 만들었었다.

    다만 리첼이 가진 것은 목걸이를 쥔 사람의 상대를 알려준다면, 그가 가진 목걸이는 가까이 있는 물건 소유자의 궁합 상대를 알려준다는 점이 달랐다. 물론 그가 쓸 일은 평생 없을 거란 생각과 함께 솔로이 제국으로 가져올 때 챙겨온 물건이었다.

    신전 안에는 귀족 신도들 전용 초를 붙이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그들은 소원을 빌 때마다 그곳을 이용했다.

    그렇기에 신전 안 리첼의 초의 위치를 알고 있는 카일은 그녀의 초가 있는 방 안으로 목걸이를 들고 들어갔다.

    확인 결과 역시나 목걸이는 붉게 변해 있었다.

    ‘역시나 변하는데?’

    마음이 떠난 것처럼 행동하는 리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수많은 여인들이 그를 흠모했기에 자만심이 가득해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그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지만 리첼은 달라야 했다.

    ‘나 같은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나?’

    생각할수록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모질 게 굴었다고 하나 끌리는 감정을 바로 끊어낼 수 있던 걸까?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초를 바라보던 카일의 눈에 스치듯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분명 그 상대가 펠릭스라고 했던 것 같긴 했다. 펠릭스 메리오너스.

    카일은 별생각이 없이 그의 초 앞에 다가갔다. 두 사람의 초가 가까이에 있었기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무언가 인연이 있을 것 같다는….

    ‘설마?’

    카일은 목걸이를 리첼의 초에 대본 후 펠릭스의 초에 갖다 대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또다시 목걸이 색이 변한 것이다.

    그럴 리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마다 형태가 달랐다. 그렇기에 조금만 달라도 목걸이는 반응하지 않을 터였다.

    각각의 모양이 각자 제각각이고 다 다르니 평생 1명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맞는 짝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다.

    대신 만나기 힘든 만큼 목걸이를 본 사람은 몸으로 확인하기 전에 상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마법도 걸어 놨었다.

    카일은 서로 맞는 짝을 만나면 몸으로 끌릴 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걸어두었던 마법이었다.

    레녹스 공작이 바람기 많은 자신의 아들을 걱정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넣은 마법이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 경험해 보니 그런 마법 따윈 없어도 저도 모르게 몸이 이끌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리첼은 두 남자에게 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펠릭스는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날 만큼 리첼을 쉽게 유혹할 것만 같고, 그래서 그녀가 그에게 넘어간 것 같았다.

    이럴 순 없어.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리첼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뺏기기 전에 내가 먼저 빼앗아야겠어.’

    카일은 펠릭스에게 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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