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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75화 (75/110)
  • 13.

    카일이 솔로이 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어찌나 빨리 퍼졌던지 많은 여인들이 그를 보기 위해 스펜서가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들락거리는 영애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에휴.”

    괴로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카일은 혼자 괴로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타는 속을 혼자서 위로하고 있었다.

    “여기서 또 보는군. 걱정이 있어 보이는데. 같이 앉아서 술 마셔도 되겠나?”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들자, 레녹스 공작이 그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레녹스 공작은 그의 앞에 앉았다.

    “여인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카일은 공작에게 그의 속마음을 내비쳤다.

    “어허. 잘생긴 것도 문제가 되는군. 그렇다면 마법사로 인정받기 전에 잠시 사제가 되는 건 어떤가? 소개장은 내가 써줄 수 있네.”

    레녹스 공작은 카일이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했다.

    “솔로이 사람들은 모두 솔레아 신을 믿긴 하지만 제겐 성직자만큼의 믿음도 없고 성력도 없습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네. 신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편히 생각하게나. 내가 대신관님께 잘 말씀드리면 흔쾌히 받아주실 게야. 다만 정식 사제로는 안 되고 일단 견습으로는 가능할 테지. 그러다 황제 폐하의 허가가 나면 그때 마법사로 인정받으면 되지.”

    신전의 사제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금녀의 공간이라 저녁엔 남자들만 있다는 게 흥미를 끌었기에 사제 따윈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카일은 공작의 말에 이끌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네의 마법도 도움이 될 터이니 내가 대신관님께 잘 말해놓겠네.”

    그리고 공작의 말대로 카일은 견습 사제로 일하는 걸 허락받았다. 마법과 성력은 한 끗 차이였기에 허락받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사제로 인정받은 후 카일은 신전에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사교계에선 그가 또다시 여행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그는 당분간 사제로서 일과 연구를 병행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카일이 사제가 되고 나서 7개월 후, 그동안 비어있던 성녀의 자리가 채워진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이어 신전에 온 성녀를 소개받았다.

    “어머나?”

    성녀는 그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하도 그의 주변에 스쳐 지나간 여성들이 워낙 많았기에 카일은 그녀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특색 있는 외모도 아니었고, 여리여리한 몸은 흔했으니 말이다.

    “카일 님. 이렇게 뵙네요? 오랜만이에요. 룩스 대륙에서 보고 또다시 뵙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룩스 대륙에서 보다니?’

    카일은 그제야 그녀가 룩스 대륙에서 스승이 그에게 소개해준 여자들 중 한 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네. 성녀님 반갑습니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었기에 카일은 적당히 인사를 하고 그의 일을 하러 가려 했다. 그런데.

    “잠시만요.”

    성녀가 그를 멈춰 세웠다. 그리곤 그녀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대라고 손짓했다. 남들이 들어선 안 될 비밀을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를 나누고 싶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 입에서 이상한 소리라도 나올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카일은 몸을 숙였다.

    “전 카일 사제님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의 귀가 가까워지자 성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비밀?’

    카일이 의아한 듯 바라보자,

    “제가 지켜드릴게요. 후훗. 솔로이 제국에선 카일 님과 저 둘만의 비밀이잖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인데 보면 볼수록 우리의 인연의 끈은 긴 것 같아요.”

    그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둘만의 비밀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들을까 봐 일단 그 역시 그녀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가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법을 쓴다는 건 비밀까진 아니었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기에 지금 밝히나 나중에 밝히나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입장에선 일부러 숨기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성녀가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 손짓했다.

    카일이 그녀의 입가에 자신의 귀를 갖다 대자, 그녀는 귓속말로 소곤소곤 알려주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큭. 저는 움직이지 않는 당신의 하반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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