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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73화 (73/110)
  • 12.

    4일 후 물건을 팔러 나갔던 스승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왔다.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네게도 좋고 내게도 좋은 일이 있을 게야.”

    스승의 수상쩍은 미소는 카일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들어오게나.”

    스승의 말에 그들의 집에 한 여인이 쭈뼛거리며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그가 물건을 팔러 갔을 때 봤던 첫 여자 손님이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스승의 집에 여인이 찾아오다니.

    “?”

    카일은 의아했지만 내색하진 않고 고개만 까딱거리며 그 여인을 무시하려 했다.

    “서비스 상품도 주시고…. 제게 마음 있는 것 맞죠? 우리 만나볼래요?”

    하지만 그 여인은 카일에게 뜬금없이 만나보자는 황당한 제안을 했다. 게다가 서비스 상품을 주었다고 마음이 있다고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덤으로 물건을 얹어주는 게 아니었는데….’

    카일은 그녀에게 덤을 준 것을 후회했다.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단골손님이라 생각하고 드린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여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여인이 상처받은 얼굴을 하든 말든 그와는 상관없었다.

    여인이 가까이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카일은 그 손길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쑤, 쑥스러워서 그럴게야. 아하하.”

    방 밖에선 흐느끼는 소리와 스승이 여인을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이 끝이 아닐 거야.’

    앞으로 피곤한 일이 생길 것만 같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역시나 그 뒤로 다른 여인들도 그를 만나기 위해 스승의 집에 방문했다.

    스승이 갑자기 오지랖 부려서 수상하다고 여겼건만…. 카일은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스승은 여성들에게 소개비를 받고 그를 팔아넘긴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카일은 스승이 시장에서 오는 시간을 피해 마법사 전용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망토를 써서 못 알아봤는지 종종 그에 대한 험담이 들려왔다.

    “그 노인네 밑에서 노예로 있는 그 자식 고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누가 그래?”

    “누구긴 누구야. 그 노인네가 말하고 다니던데 뭘.”

    “얼굴만 뻔지르르하더니 속 빈 강정이었네.”

    “….”

    카일은 가게 안의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곤 할 말을 잃었다. 평소보다 술이 더욱 달게만 느껴졌다.

    “왜 그런 녀석에게 여자들이 줄을 서는 거야? 젠장. 노친네에게 소개비만 주면 그 자식을 소개해 준다던데? 여자들은 얼굴만 잘생기면 고자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가?”

    “에이. 고자가 아니니깐 달라붙겠지.”

    “그 자식은 남자들의 적이야. 얼른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으면 좋겠네.”

    “그러게 말이야.”

    역시나 카일이 짐작한 대로 그의 스승은 돈을 받고 여자들을 데려온 것이다. 그의 추측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진실이 와전되어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도 들리니 카일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대체 누가 고자라는 건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음대로 지껄이라지.’

    차라리 고자라고 소문이라도 났다면 여인들이 찾아오지 않으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다.

    카일은 혼자 속을 달래며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가 이미 고자라는 소문이 퍼질 대로 퍼졌는데도 카일을 찾아오는 여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대체 왜….’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마도 스승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여인들을 꼬셨을 것이다.

    ‘저 늙은이를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군.’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다면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마법도 거의 배우기도 했고, 스승 몰래 스승이 적어놓은 마법 관련 기록도 거의 다 베껴가기 때문이었다.

    스승이 그를 노예로 데려온 만큼 카일도 그를 이용할 대로 이용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타인의 밑에서 일할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 카일은 입이 가볍고 돈만 밝히는 제 스승을 떠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 *

    어느 날 술에 취한 스승이 만취 상태인 누군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집에 돌아왔다.

    평소 여성들 말고는 함께 온 이가 없기에 카일은 의아하며 데려온 자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째서인지 몰라서 남자의 낯이 익었기에 카일은 자신을 기억을 되새겼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남자는 연회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누었던 솔로이 제국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제국 내 귀족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황제의 동생 레녹스 공작이었다. 여행을 좋아해서 대륙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날 줄 꿈에도 몰랐다.

    “여어!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인연이군 그래. 자네 스펜서 후작가의 차남 아닌가? 여전히 잘생겼군.”

    카일이 먼저 인사하기 전에 레녹스 공작이 먼저 그를 알아보곤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술에 취한 공작은 인사를 대강 받고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카일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그는 혼자 지껄였다.

    “장남 녀석이 이 여자 저 여자 건들고만 다니고 결혼할 생각이 없네. 그러다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이 줄줄이 나올까 봐 걱정이네.”

    “아이고. 아들이 바람둥이야? 걱정이 많겠네.”

    공작의 말을 들은 스승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자네 마법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들의 바람기를 고칠만한 마법 없나? 그거 찾으러 여행 중이네.”

    스승은 레녹스 공작에게 자신이 마법사라고 밝힌 것 같았다.

    “우리 이제 친구 하기로 했잖나. 그리고 자네. 스펜서 가문의 차남! 마법이 깃든 물건 잘 만든다던데? 좀 도와주게.”

    게다가 카일도 마법사라고 말한 듯 보였다. 스승은 입이 가볍더니 처음 본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까지 한 모양이다.

    “내 아들은 말일세. 성격은 어미를 닮아 점잖긴 한데 재미가 없어. 그런데 왜 그리 여자들이 달라붙나 몰라. 어이. 자네도 여자들이 꽤 달라붙겠는데? 힘들겠어.”

    레녹스 공작과는 처음 이야기를 나눴지만 카일은 그가 꽤 독특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난 말이야. 아들보단 역시 딸들이 좋네. 그 아이들을 놀리는 게 내 삶의 낙이야. 혹시 얼굴이 궁금하나? 나랑 판박이라네. 아하하하.”

    게다가 공작은 가족 사랑이 대단해 보였다. 그 사랑 방식이 남들과 조금 달리 보였지만 말이다.

    그는 엉뚱하고 말이 많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 같았다.

    ‘그러니 공작이라는 사람이 일은 내팽개치고 아들을 고쳐준다는 명목하에 머나먼 룩스 대륙에까지 왔지.’

    하소연을 하는 공작의 모습을 보며 카일은 고개를 저었다. 공작의 아들은 그와는 완전 상반된 입장이었다.

    “내 제자와는 정반대군.”

    고민을 다 들은 후 입이 싼 스승은 레녹스 공작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그의 비밀을 말해 버렸다. 카일은 그제야 스승 앞에서 입을 잘못 놀린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룩스 대륙에서 소문이 나도 그는 어차피 솔로이 제국으로 돌아가면 끝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솔로이 제국 사람, 특히나 그와 같이 수도에 사는 귀족을 우연이지만 만나고 만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제국에서 소문이 퍼질지 몰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뭐? 얼굴이 아깝네. 아하하하. 자네도 짝을 찾으면 해결될 게야.”

    놀랄 것이라 생각한 레녹스 공작은 예상외로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과 관계없다는 시답잖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가 소문을 퍼뜨릴 것 같지 않자 카일은 잠시나마 안도했다.

    “그 있잖나. 사랑의 묘약? 그런 거 만들 수 있나? 루이스가 한 여자만을 바라볼 수 있게 말일세.”

    “사랑의 묘약을 만들어줄 순 있지만 약인지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추천은 하지 않네. 나중에 애가 안 생길 수도 있어서 말일세.”

    카일은 묘약을 만든 적 없었지만, 스승은 그 약을 만들어본 적 있는지 정색하며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스승이 귀족에게 부작용이 있는 줄 모르고 약을 지어주었다가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살짝 흘린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스승은 돈에 집착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럼 안 되지. 그렇다면 약이 아닌 다른 건 어떻겠나? 그래. 마음을 꽉 잡을 수 있는 무언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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