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63화 (63/110)

11.

펠릭스의 목소리 선율이 눈물방울과 조화로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들렸고, 리첼의 마음은 약해질 것만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펠릭스가 더욱 오해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향하려던 손은 멈칫했다.

‘그에게 휘둘려선 안 돼.’

리첼은 도리질하며 혼미한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의 눈물을 보니 또다시 모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리첼은 그녀의 손 대신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펠릭스는 손수건을 받아 천천히 눈물을 닦았다.

‘내가 뭐라고 저리 눈물을 흘리는 거야.’

흠뻑 젖은 펠릭스의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만 같았다. 그와 계속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모진 소리를 해야 하는데….’

“알았어요. 일단 돌아가세요. 우리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요.”

하지만 리첼의 입에선 생각과는 다른 말이 새어 나왔다.

“다음에 연락 다시 기다리겠습니다.”

펠릭스는 저택을 떠날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대체 무슨 일이래요?”

비아가 방으로 들어오려다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았는지 놀란 듯 물었지만 리첼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남자의 눈물에 지고 만 것이다. 확고한 결심도 그의 눈물 앞에선 망설여졌다.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처음 봐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름답게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에 흔들리는 걸까.’

리첼은 자신이 남자의 눈물에 약한 줄 이제야 깨달았다.

* * *

펠릭스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마시지 않고는 이 힘든 밤을 지새우기 힘들 것만 같았다.

“뻥 뚫린 가슴을 채워줄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했건만.”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처럼 일을 빨리 끝냈어야만 했다.

하지만 리첼의 얼굴만 보면 그럴 수 없었다. 좀 더 소중히 대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진도를 빨리 뺐다간 도망갈 거란 불안감도 있었다.

들리는 소문으론 그녀의 오라버니가 여자를 밝히기에 리첼은 가벼운 남자는 싫어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조심스레 다가가야 한다고 펠릭스도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중간에서 그녀의 마음을 가로챈 것만 같았다.

분명히 리첼은 그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그 흐름이 멈추고 만 것이다.

‘내 계획이 어딘가 잘못되었던 걸까?’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 마크가 새겨져 있을 때 펠릭스는 범인이 누군지 눈치챘어야 했다.

남자는 사악한 놈이었다.

아마 리첼 근처에 접근하지 말라는, 그에 대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문제는 흔적을 남긴 남자를 펠릭스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사는 했건만 아직까진 오리무중이었다.

“제길….”

그는 탁자를 손으로 쾅 하고 내리치며 분노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거슬리는 이름은 하나 있긴 있었다. 설마 그 자식이라고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첼의 소문이 모두 그와 관련이 되어있었다. 그게 찜찜했다.

분명히 소문으로 들을 땐 여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사제를 꿈꾸는 사람이기에 그가 들은 소문이 맞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리첼의 마음이 그에게 순식간에 넘어간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리첼의 남자라는 걸 부정하고 싶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그가 아닐까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카일 스펜서.

만약에 그가 맞다면 소문과는 너무 다를 것이다.

착하긴 얼어 죽을. 온화한 미소는 개나 줘버려!

대놓고 자신의 것이라고 흔적을 남긴 사람이 그가 맞다면 그는 엄청난 소유욕을 가진 남자일 것이다.

‘그간 그에 대한 소문이 거짓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펠릭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잔뜩 취할 만큼 술을 마셨다.

술맛은 썼지만 그보단 그의 마음이 더 씁쓸했다.

일단 자신의 눈물로 리첼의 마음이 떠나가는 걸 일단 멈추게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을 다른 방안을 생각해야만 했다.

“베스….”

그는 주머니에서 로켓 목걸이를 꺼내 그 안에 담긴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이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은 한 번의 실패만 있을 뿐 두 번의 실패는 하기 싫었다.

그래, 아직 늦진 않았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아직은 리첼의 마음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 거라 펠릭스는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감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천하의 바람둥이란 소문은 이제 나와 어울리지 않아.”

여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얼마 만인지….

하염없이 술을 마시며 점점 취기가 더해가는데 펠릭스의 옆에선 그에게 익숙한 이름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귀를 쫑긋 세웠다.

리첼에게 어떤 관계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카일의 이름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 남자들은 엿듣고 있는 펠릭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놀랄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펠릭스는 듣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에 의아하면서도 입가엔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리첼의 마음이 빼앗긴 사람이 카일이 맞다면 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리첼이 자체 감금을 한 지 2주일이 지난 후 카일에게서 신전에 와 달라는 서신이 왔다.

“아직까진 신전에 가긴 껄끄럽긴 한데.”

그러나 카일이 불렀으니 리첼은 신전에 가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낮이 아닌 저녁 시간에 보자고 쓰여 있다는 것이었다.

리첼은 편하면서도 예쁜 은빛 드레스를 입었고, 망토를 둘렀다. 망토로 얼굴을 반 이상 가렸기에 멀리서 보면 그녀인지 모를 것 같았다.

분홍색 앞머리가 튀긴 했지만, 밤엔 잘 보이지 않을 것도 같았다.

“날이 저물고 나서 만나는 거니깐 괜찮겠지?”

리첼은 애써 그녀 편할 대로 생각했다.

신전 개방이 끝날 시간이 곧 다가와서 그런지 몰라도 신전 안에는 사람들이 많진 않았다.

리첼은 기사들에게 마차 안에서 대기하라고 한 후 카일이 미리 일러준 장소로 향했다.

그녀가 먼저 도착했는지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첼은 일단 인근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앉아서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하늘에 꽉 차 있는, 유난히도 별이 많은 밤이었다.

“와아!”

밤하늘에 무수히 흩어져있는 별빛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리첼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저녁엔 거의 신전에 와보진 못했기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혼자 보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쯤 맞은편에서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카일이었다.

그는 리첼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별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유난히 예뻐 보였다.

“밤하늘의 별빛이 천지에 내려앉은 것만 같아요. 내 손을 뻗으면 잡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리첼의 입가엔 밝은 미소가 배어 나왔다. 평소엔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에 감격과 흥분이 밀려왔다.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카일은 그런 그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늘 혹시 제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여주기 위해 저를 신전으로 부르셨나요?”

리첼은 하늘에 계속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오늘이 사제로서 제 마지막 날입니다. 당신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서 이 시간에 초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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