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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58화 (58/110)

10.

새로운 목격자의 증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첼의 가슴도 철렁했다. 아마도 보라색 머리의 사제가 목격한 건 리첼, 그녀 같았다.

대신관은 또다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사실입니까? 혹시 그 여인의 얼굴은 확인했습니까?”

주교의 질문에 가장 마음이 떨리는 건 리첼이었다. 혹시라도 그녀를 목격했다면 그의 입에선 자신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정말 나를 본 게 맞을까?’

리첼은 걱정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이상함도 느꼈다. 그동안 사제가 목격한 사람과 관련해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리첼을 봤다면 바로 카일을 찾아가거나 대신관님을 찾아뵀을 것이다.

“아니요. 보진 못했습니다. 그냥 긴 드레스를 입은 발만 살짝 보았습니다.”

역시나 사제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의 증언을 듣고 나니 리첼은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그녀의 얼굴을 들킨 것 같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 성녀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저분이 목격했던 여인도 바로 저예요. 그날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냈어요!”

“!”

그녀의 엉뚱한 소리에 또다시 예배당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성녀님의 말이 맞다면 사제님과 성녀님은 신전에서 신을 모신 게 아니라 연애질을 했다는 말 아닌가요?”

“설마요. 성녀님의 거짓말이겠죠.”

“목격자까지 나왔다잖아요.”

주변에서 온갖 추측의 말이 들려왔고, 리첼은 성녀의 거짓 고백이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

성녀는 그녀가 직접 나서지 않을 걸 뻔히 다 알기에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끌어들이려 미리 선수를 친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리첼은 모두 앞에서 사실을 말하기 난감했다.

그녀라고 밝히기엔 그날 왜 신전에 몰래 들어갔는지부터 말해야 한다. 개구멍을 통해 몰래 들어갔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약 사건도 숨기고 싶었다.

잘못 말했다간 카일의 명예 회복은 불가할 수도 있었다.

“뭐야! 카일 사제님 요즘 언니와 가까워진 거 아니었어? 사제님이 언니를 두고 밤에 다른 여인을 안고 갔다는 말 난 도저히 못 믿겠어.”

레이나도 믿을 수 없었는지 놀란 눈으로 리첼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 여인이 나야.’

리첼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말할 수 없기에 대답 없이 난감한 표정으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사실이 아닐 거야. 걱정 마.”

리첼의 눈빛을 오해한 레이나는 되레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조용히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워낙 예배당이 시끄러웠기에 대신관의 말씀이 들리지 않자 주교가 일어나서 말했다. 그제야 예배당 안이 조용해졌고, 대신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일 사제님이 여인을 안고 가는 걸 목격했으면 내가 아니라도 바로 누군가에게라도 알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놀드 사제님?”

대신관은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아놀드 사제를 바라보았다.

“워낙 멀리서 보기도 했고, 사실 잠결에 잠시 방에 나왔는데 복도에 사제님이 지나가시기에 제가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왜 착각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동동 떠 있는 여성분의 다리와 치맛자락만 보였기에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 보니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라도 나서게 된 겁니다.”

아놀드 사제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고도 입을 다문 이유는 아마도 유령을 본 거라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카일 사제 혹시… 아놀드 사제의 말이 사실입니까?”

주교의 질문에 카일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사실입니다.”

카일이 말하는 순간 예배당은 더욱 시끌시끌해졌다. 한밤중에 그가 여인을 안고 간다는 걸 인정했고, 그게 성녀라니.

“말도 안 돼!”

“실망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꼬시는 건데.”

카일이 말이 끝나는 동시에 예배당이 다시 시끄러워졌고, 카일에게 향하는 비난의 말이 리첼의 귀에도 흘러들어왔다.

“언니….”

게다가 그녀를 바라보는 레이나의 눈빛은 안타까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신관은 역시나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카일 사제께선 성녀님을 안고 방으로 가셨습니까? 사제님께선 그럴 분이 아니란 걸 제가 잘 알고 있으니 믿을 수 없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신관은 카일이 그럴 리 없다고 확신이라도 하는 듯 그 사실을 격하게 부정했다.

“제가 안고 들어간 여성분은 성녀님이 아닙니다.”

카일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그 여인은 대체 누군가요? 왜 신전 안에서 한밤중에 안고 방에 가신 겁니까?”

“지금 자세한 사정은 지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관님께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빨리 말해요.”

“왜 숨기려고 하지?”

“당장 말해요.”

“무슨 관계에요? 솔직히 털어놓으세요.”

카일의 말을 들은 몇몇 신도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라는 외쳤다. 또다시 예배당 안은 시끄러워졌다.

리첼은 혼자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카일은 그녀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이대로 있다간 상황이 점점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건 뻔한 일이었다.

“카일 사제님!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해주십시오. 안고 가신 분이 누군지, 그리고 왜 안고 갔는지 이 자리에서 설명해주셔야 오해를 풀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주변 사제들도 나서서 카일에게 안고 간 여인이 누군지 밝히라고 했다. 일부는 답답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

하지만 카일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까? 카일 사제님은 아놀드 사제님께서 본 여인이 성녀님이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성녀님은 본인이라고 주장하시잖습니까? 성녀님이 아니라는 증거를 얼른 보이려면 그 여성이 누군지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어서 말씀하세요!”

참다못한 주교도 카일에게 말하라고 재촉했다.

“저 맞다니까요! 그날도 같이 밤을 보낸 게 맞다는데 왜 내 말을 안 믿어요? 사제님은 지금 여러 사람 앞이라서 부끄러워 부정하고 있을 뿐이에요!”

성녀는 계속 카일이 안고 간 여인이 본인이라고 우겨댔다.

“카일 사제님. 제발 지금 정확한 상황을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오히려 불명예스러운 오해를 받으실 겁니다.”

카일에게 외치는 주교의 목소리는 이제는 애원하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꼭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카일은 완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리첼은 자꾸 카일을 추궁하는 주교가 얄미웠다. 대신관 앞에서 따로 얘기해도 될 것을….

아마도 본인들도 궁금해서 이 자리에서 밝히라는 것만 같았다.

리첼은 계속 망설였다.

이대로 밝혔다간 사교계에 또다시 그녀에 관한 소문은 날개를 달고 많은 사람들의 귀에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밝히지 않았다간 아마도 카일의 명예가 실추될 것만 같았다.

대신관에게 따로 말해봤자, 이미 카일은 한밤중에 여인을 안고 방으로 들어간 남자라고 찍힌 낙인은 없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녀의 명예냐, 카일의 명예냐. 리첼은 선택해야만 했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언니 갑자기 왜 그래? 뭔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어?”

갑자기 리첼이 수상한 행동을 하자 이상하게 여긴 레이나가 물었다.

리첼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갑자기 일어나? 얼른 앉아!”

레이나가 다급하게 속삭였지만, 리첼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외쳤다.

“지금 다들 궁금해하는 그 여성 말이에요. 저예요.”

그 순간 예배당 안의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진 동시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리첼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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