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55화 (55/110)

10.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오후 예배 시간.

신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예배당에는 사제들이 먼저 가서 예배 준비를 했고, 시간에 맞춰 신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힐다는 맨 앞줄에서 다른 사제들과 함께 앉아있다가 그녀의 기도 시간이 되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솔로이 제국을 위한 기도를 드리곤 했다.

힐다는 그녀가 기도하는 그 시간을 택했다. 보는 눈이 많을수록 그녀에겐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성녀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드디어 자신의 순서가 되자 주교의 부름을 받은 힐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앙으로 걸어 나와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원래는 앉아있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그녀는 기도가 끝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힐다가 움직이지 않자 다른 사제들이 난감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들어가라는 눈치를 주었다.

힐다는 눈치를 주는 사제들의 눈빛을 외면한 채 대신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중앙에 서서 의아함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는 그를 향해 힐다가 입을 열었다.

“대신관님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힐다의 말에 예배당 안이 시끄러워졌다.

제 할 일을 마치고 들어가야 할 성녀가 돌아가지 않고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당연할 터였다.

“다들 잠시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 잠시 성녀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죠.”

대신관은 성력으로 만든 확성기로 모두에게 말한 후 힐다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제게 따로 말씀드려도 될 텐데 이렇게 예배 시간에 급하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시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자 힐다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신관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파문시켜주세요. 저는 이제 성녀 자격이 없어요.”

성녀의 폭탄 같은 발언에 예배당 내부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난감한 표정과 함께 대신관은 서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성녀님.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난처한 모양인지 그는 힐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양쪽 벽에 배치되어있는 성기사들에게 눈치를 보냈다.

‘대체 왜 나를 내보내려 하는 거야?’

성기사들에게 끌려나갔다가는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을 수도 있었다.

다급한 마음이 든 힐다는 대신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저는 순결을 잃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카일 사제님과 연인 관계니깐요. 그러니 저를 파문시켜주십시오. 그가 저를 덮….”

성기사 중 한 명이 쏜살같이 달려와 힐다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소용이 없었다.

예배당이 워낙 넓어 그녀의 목소리를 모든 사람이 들을 순 없었지만, 앞쪽에 앉아있던 사제들과 그들 뒤에 앉아있던 신도들의 일부가 그녀의 말을 들었다.

힐다의 말은 신도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여성들의 탄식 소리와 함께 외마디소리가 들려왔다.

예배당이 시끌시끌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힐다는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든 말든 신경 쓰진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소문이었다. 사실과 상관없이 성녀와 카일 사제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언질을 하고 나면 소문은 꼬리를 물고 물어 그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안내할 것이다. 더 과장돼서 말이다.

그러면 아무리 카일이 그 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은 있었을 거란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었다. 그저 한순간의 재미. 그걸 원했다. 그녀는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는 완전히 내 것이 될 거야.’

게다가 자꾸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감추려는 카일에게 힐다는 모두의 앞에서 그의 속마음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기도 했다.

사실 카일에게 흠집이 남을 수 있기에 소문을 내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겼지만,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거부하려는 그를 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힐다의 충격적인 고백에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엔 카일 사제가 그만둘 예정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 이야기를 듣자 힐다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낸 소문과 한데 묶여서 성녀 때문에 카일이 사제직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동시에 퍼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대신관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필 자신이 대신관으로 있을 때 이런 일이 터지는가 싶은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성녀가 중간에 그만두거나 쫓겨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혜택이 워낙 크기에 감히 포기할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대신관으로 있는 신전에서 성녀와 사제의 불건전한 소문이 나버렸으니 그로선 최악의 상황일 터였다.

대신관이 그동안 잘해줬기에 힐다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일이 처음부터 그녀를 받아줬으면 대신관님께 따로 조용히 말씀드렸을 것이고,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테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미안한데 나를 위해 고생해줘요.’

성녀는 미안한 눈빛으로 대신관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입에선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성녀님의 말씀이라면 믿어야 하지만 말뿐이라 믿기 어렵군요. 혹시 증인이 있습니까?”

그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증인까지 찾고 있었다.

“저와 카일 사제님이 증인인데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대신관의 황당한 요구가 어이없었지만 힐다는 당당히 말하며 카일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가 이제 그의 마음만 밝히면 이제 상황 끝이었다.

“그럼 카일 사제님,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대신관의 말에 카일이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그가 나오자 예배당 안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성녀님 말씀이 모두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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