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저도 성녀님이 싫지만 대신관님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답니다.”
힐다는 다시 카일을 데려오라고 떼를 썼지만 제라드에겐 통하지 않았다. 벽과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약을 몰래 먹이려다 실패했을 때도 카일은 말없이 넘어가 주었기에 힐다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카일이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밤늦게 방에 찾아간 것이 그의 심기라도 건드린 모양이었다. 어젯밤 힐다는 그를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다.
“싫다고 몇 번 말해요?”
떼써서라도 얻어낸 카일의 교육 담당이기에 힐다는 이번에도 제라드가 싫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다.
“싫다고 하시면 이젠 어쩔 수 없군요. 그동안 남자들만 있는 공간에서 불편하셨죠? 그렇다면 잠시 수도원에 가는 건 어떠십니까? 수녀님들이라면 같은 여성이라 저희 남자 사제들보다 성녀님을 이해해주며 더 잘 가르쳐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제라드는 들어주기는커녕 더욱 황당한 말을 지껄였다.
“나보고 수도원에 가라고요?”
힐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 무례한 행동이 사라질 때까지만요.”
“….”
수녀원으로 가면 카일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질 테니 힐다는 어쩔 수 없이 제라드 사제에게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모르십니까? 평민 출신이었던 저도 알고 있던 것을. 쯧. 대체 부모님께 교육을 받긴 한 겁니까? 대신관님께서 성녀를 뽑을 때 잠깐 딴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저 냄새나는 아저씨의 교육은 엄격했고, 힐다에게 상처 주는 말만 퍼부었다.
평민 출신이라더니 제라드는 어디에다가 예의를 밥 말아 먹은 것 같았다. 공손히 그녀를 대우해 주던 카일과는 천지 차이였다.
제라드의 교육을 받으며 힐다는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는 걸 참았다.
이후로 힐다는 제라드의 수업을 받기 싫어 도망치려 했건만 그는 그녀가 있는 곳을 어떻게든 알아내서 끌고 가 그날의 교육을 마무리 지었다.
‘이럴 순 없어.’
예배 끝나고 힐다는 카일을 따로 불러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잠시 얘기 좀….”
그러나 카일은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대체 왜?’
그녀를 사랑하면서 왜 외면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솔직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거지? 그의 행동이 변한 건 제라드의 짓이 분명해. 그가 카일 사제님에게 나를 무시하라고 명령했을 거야!’
힐다는 분노가 치밀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결국 최후로 남겨놓은 방법을 써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 방법까진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