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51화 (51/110)

09.

진짜로 일주일 가까이 되어서야 성녀 힐다는 감금의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조용히 열심히 기도만 드리면 조금은 봐줄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일주일이나 있기 싫어 진짜 온 마음을 바쳐 기도했지만 주교님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만 볼 뿐 예정일보다 빨리 내보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힐다가 계속 애원하자 그제야 7일이 되는 날 아침 대신 6일째 되는 날 저녁에 꺼내주었다.

“성녀님께서 열심히 기도하셨기에 예정일보다 빨리 문을 열어드립니다. 저녁 예배부턴 참석해 주십시오.”

‘고작 반나절 일찍 열어줘 놓곤 왜 저리 생색을 내?’

속으론 씩씩거렸지만 겉으로 티를 낼 수 없기에 온화한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방에서 나왔다.

감금의 방에 갇힌 결과 그녀는 6일 동안 카일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디 있지? 빨리 보고 싶다.’

나오자마자 힐다는 카일부터 찾았다. 매일 보다가 요 며칠 얼굴 보지 못했다고 그사이에 스트레스가 쌓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제들 식사 시간 겸 개인별 기도 시간이었다. 말이 기도 시간이지 기도를 드리거나 개별 자유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사제들은 대부분 자신의 방을 청소하거나 빨래를 했고 카일도 이 시간엔 대부분 그의 방에 있었다.

[똑똑]

힐다는 곧장 카일의 방으로 갔다. 몇 번의 노크를 했는데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대체 어디를 간 거지?”

그녀는 신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잠시라도 그의 얼굴을 봐야지 조금은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성서의 내용은 그녀에겐 아직 버거웠고, 어려웠고 지겨웠다. 그의 얼굴을 보고자 그 어려운 내용을 배우는 걸 버티며 성녀가 되었건만 요새 뜻대로 되지 않아 힐다는 불만이 가득 쌓인 상태였다.

“혹시 카일 사제님 어디 가셨는지 아나요?”

아무 곳에서도 카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힐다는 지나가던 사제를 붙잡아 그의 행방을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보이질 않으신 것 같은데요?”

서로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신전에서는 그의 행방을 아는 사제는 없었다.

‘아침부터 보이지 않다니?’

힐다는 그 말을 듣자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말 걸긴 싫었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지나가던 신도들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바구니 들고 신전 밖으로 나가신 걸 보긴 봤어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요.”

여러 명에게 물어봐서 겨우 카일의 행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물어본 이 중 한 사람이 그의 모습을 본 모양이다.

‘평소 신전 밖으로 나간 적도 없는 사람이 나갔다고?’

이상하게 여기며 그녀는 신전 밖으로 나갔다.

곧 저녁 예배 시간이라 그리 멀리 나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신전 앞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약초라도 캐러 간 건가?”

아침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건 그가 약초를 캐러 간 걸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약초를 캘 땐 날 밝을 때 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오곤 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아직도 카일이 신전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아직 숲에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구니를 들고 갔다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다는 숲속 깊이 들어갔다.

그가 진짜로 약초를 캤다면 마중이라는 핑계로 카일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약초 캐는 곳은 숲 깊은 곳에 있기도 하고 길이 복잡하기도 했기에 힐다도 혼자서는 가보지 못하고 카일을 따라 몇 번 갔던 것이 다였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따라 그녀는 숲속 언덕을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괜히 이 복잡한 숲속을 왔다고 후회하려던 그때였다.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 인기척이 들리다니. 힐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히 불안했다.

‘설마?’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잎을 조심스레 치우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그곳에선 카일의 무릎 위에 안긴 리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이 또렷이 힐다의 눈동자 안에 담겼다.

‘아니야. 지금 뭔가 잘못되고 있어. 그럴 리 없어. 이건 꿈이야!’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그녀는 현실을 부정했다.

지난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믿어왔다. 그날 밤 그들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이다.

리첼이 그녀에게 말한 건, 괜히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거짓말을 한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괘씸했기에 머리채까지 잡았건만.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처음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움직임은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너무 화가 나 무의식적으로 발로 풀을 찼고, 힐다가 낸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듯 그들은 곧바로 떨어졌다.

‘더 빨리 찾았어야 했는데.’

카일이 어디 있는지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좀 지체했다.

조금만 더 빨리 찾았으면 그들이 그런 짓을 벌이기 전에 막을 수 있었다. 그 점이 그녀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다만 두 눈으로 확인했어도 아직도 믿을 순 없었다.

‘그가 날 배신할 리 없어. 잘못 본 걸 거야.’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을 마음속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힐다의 얼굴은 점차 구겨지기 시작했다.

* * *

포르투나 광장에 있는 디저트 가게 야외 테라스에서 리첼은 비아와 함께 느긋하게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이렇게 종류별로 다 먹다간 살쪄요. 아가씨.”

“괜찮아. 먹고 열심히 뛰어다니면 돼.”

리첼의 말에 비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는 그때였다.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그들의 테이블에 누군가 앉았다. 약속한 사람이 없기에 잠시 놀랐건만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성녀 힐다였다. 그녀는 먼저 여유 있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네요.”

말 섞기 싫었지만 보는 눈이 많은 장소에서 대놓고 무시할 순 없었기에 리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날 이후로 처음 뵙나요? 성녀님께서 신전 밖에 어쩐 일로 나오셨나요? 드문 일인데.”

“….”

먼저 질문을 던졌는데 성녀는 그녀를 노려보기만 할 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먼저 인사할 땐 언제고 또 시비 걸러 온 건가?’

피곤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좋게 물어봤으면 대답 좀 해주시죠? 대답 안 해주실 거면 그만 일어나주시면 감사하겠네요. 보다시피 전 아가씨와 둘이서만 디저트를 먹는 중이라서 말이에요.”

이를 악물며 리첼이 말하려는 순간 비아가 그녀보다 먼저 말했다.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모든 걸 망쳤어요.”

말없이 리첼의 노려보던 성녀의 눈빛이 번뜩이더니 그녀는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리첼은 성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기에 일단 비아에게 잠시 그녀와 자리를 이동하겠다고 일러뒀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조용한 곳 가서 이야기 나누죠?”

리첼의 말에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걸어가자 성녀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지만 비아의 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리첼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뒤를 돌아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걸음도 덩달아 멈추었고, 그녀의 시선은 리첼을 향했다.

“제가 뭘 망쳤다는 거죠?”

리첼은 아까 하다만 이야기를 이어서 물었다.

“왜! 그날 하필이면 날 방해하러 왔어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그는 내 것이 됐을 거란 말이에요!”

성녀는 다짜고짜 엉뚱한 소리를 내뱉었다. 아마도 그녀는 약 사건을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카일 사제님은 물건이 아니에요. 그리고 약으로 그의 몸을 빼앗았어도 마음이 당신을 향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당신 것이 된다는 말이에요?”

성녀의 ‘내 것’이라는 말에 흥분한 나머지 리첼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보고도 몰라요? 그의 마음은 내게 향해 있다고요! 그런데 감히 내게서 그분을 빼앗아가려 해요? 당신도 약으로 그를 꾀어내고 있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약이라니요?”

“내가 둘이서 약초 캐러 가는 것도 봤는데 모른 척할 거예요? 약물에 취해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서 당신이 그를 괴롭히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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