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50화 (50/110)
  • 08.

    “잠시 좀 쉴까요?”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카일은 휴식을 취하자고 제안했다.

    그 말을 기다렸던 리첼은 고개를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하던 일을 하니 힘들었지만, 그의 눈치를 보느라 쉬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카일이 혼자 오려던 걸 그녀가 부탁해서 같이 왔으니 말이다.

    리첼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허리를 펴려던 순간 허리만 감전된 사람 마냥 찌릿 저려왔다. 누군가 허리에다가 무거운 쇳덩이를 던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얏.”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으며 리첼은 반만 몸을 세웠다. 그 사이에 카일은 바구니 안에서 꺼낸 담요를 바닥에 펼쳤고, 그 위에 바구니를 놓은 다음 그도 구두를 벗고 앉았다.

    “평소에 잘 안 하던 자세로 오래 앉아계셔서 그런가 봅니다. 일단 제 앞에 앉으십시오.”

    “앞이라고요?”

    리첼이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이 아니라 앞이라니.

    잘 펴지지 않는 허리를 겨우 세워 일단 카일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가 봐도 힘들어 보였는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리첼은 그의 손을 잡고 그 앞에 겨우 앉았다. 카일이 뒤에 있다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따뜻한 체온이 등에 닿는 것만 같아서 심장 고동 소리는 점차 빨라졌다.

    카일의 손은 리첼의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어깨를 지나 앞으로 하나씩 보냈다. 그의 살갗이 턱에 살짝 닿았는데도 리첼의 몸은 떨렸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셔서 힘드셨을 테니 어깨 안마를 해드리겠습니다.”

    카일이 그녀의 어깨에 뭉친 근육들을 조금씩 풀어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옷감 위로 전해지는 그의 서늘한 냉기에 리첼은 어깨를 움찔했다.

    단지 손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몸 안에 열기가 점점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 차가웠냐는 듯 카일의 손이 닿는 곳마다 개운하면서도 뜨거웠다. 마치 그녀의 열기가 그에게로 이동한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은 점차 어깨에서 날개뼈 부근, 그리고 그 아래 허리까지 천천히 내려왔다. 뭉쳤던 부분을 풀어주니 시원함을 느끼며 리첼은 저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허리의 근육을 풀어주자 굽었던 허리가 점차 펴지는 기분이었다.

    “꺄아.”

    하지만 갑작스러운 옆구리 공격에 리첼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휘었다.

    “갑자기 찌르면 어떻게 해요?”

    고개를 돌리며 항의하듯 카일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긴장하셨는지 몸이 굳어있어서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옆구리에 자극을 가해봤습니다. 이제 허리가 완전히 펴진 걸 보니 괜찮아지신 것 같군요.”

    리첼은 잠시 그를 노려봤다.

    긴장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그녀가 놀라는 걸 보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괜히 심통이 났다.

    “그럼 사제님도 긴장 좀 풀어야겠는데요?”

    짓궂은 미소와 함께 리첼의 손가락은 카일의 옆구리를 향해 돌진했지만 그전에 카일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치사하게 힘으로 막기에요?”

    옆구리에 손이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꼼짝하지 않았다.

    “놔요. 놓으라고요!”

    리첼은 더욱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카일의 손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리첼의 몸이 흔들리며 옆으로 휘청거렸다.

    “꺄아!”

    리첼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카일의 왼손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쌌고, 오른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녀를 내려다보는 놀란 듯 보이는 흑안과 마주쳤다.

    “….”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뿜어내는 열기가 공기의 흐름을 끈적하게 바꾸는 것만 같았다.

    서로를 마주 보는 시선이 얽히자 리첼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먼저 카일의 뺨에 닿았고, 그녀의 입술이 카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뒤이어 그의 입술도 서서히 다가오며 두 사람의 입술이 살며시 포개졌다.

    감촉을 음미하듯 카일의 입술은 리첼의 말캉한 입술을 부드럽게 짓눌렀고 여린 자극이 작은 흥분으로 밀려왔다.

    달콤한 감촉을 더욱 느끼고 싶어 카일의 목에 손을 감았다. 그러자 숨을 빼앗으려는 듯 그의 혀가 리첼의 입안으로 들어와 자극하며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서로의 혀가 뜨겁게 뒤엉킨 채 카일의 팔에 안겨 반쯤 누워있던 리첼은 서서히 일어났고, 카일과 마주 보며 앉은 후 그녀는 양손을 다시 그의 목에 감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혀를 강렬히 얽었다. 점점 몰아치는 자극에 이성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정신이 아찔해질 때쯤 야트막한 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카…일….”

    그리고 그 무렵,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어머낫!”

    쾌락에 취해 마비되었던 이성이 다시 돌아오자 리첼은 놀란 눈으로 얼른 그와 떨어졌다.

    “주, 주위에 누, 누군가 있는 것 같아요!”

    리첼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을 했다.

    누군가에게 지금 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데이트만 생각했지, 몸의 대화까진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일의 열기가 닿을수록 이전에 느꼈던 쾌락이 떠올라 리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본능에 몸을 맡겼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니 리첼은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고 얼굴이 점차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뒤에서 카일이 그녀의 목을 살며시 감싼 것이다. 안아주는 그의 팔은 따뜻했다.

    곧이어 그녀의 정수리에 그의 입술이 가볍게 내려앉았고, 또다시 눈가에 촉촉한 감촉이 살짝 닿았다 떨어지더니 귓가에 감미롭고도 향기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날도 어두워졌으니 이만 내려가도록 할까요?”

    “네. 이, 이만 돌아가요. 늦은 것 같아요.”

    리첼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그의 입술이 닿았던 귀를 손으로 막으며 말을 더듬었다.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그는 왜 야릇하게 하는 거야!’

    얼굴이 또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카일의 행동 때문에 타인에게 야릇한 장면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민망함은 어느새 잊어버렸다.

    카일은 피식 웃더니 또다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그들이 앉아있었던 담요를 덮고 자리를 정리했다.

    카일의 말에 주문이라도 걸려있는 것처럼 그 말을 듣자마자 리첼의 몸은 굳어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시선만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드레스 입으셔야 할 텐데요?”

    리첼이 계속 멍하니 카일만 바라보고 있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그녀는 카일이 조금 전 정리하며 조심스레 접어놓은 자신의 드레스를 들어 주섬주섬 천천히 입었다.

    옷을 다 입자 리첼은 깨달았다.

    결국 그들은 약초를 캐는 시간보다 몸을 겹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몸이 뜨겁다 못해 불타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리첼은 카일의 손을 잡고 숲에서 내려왔지만 올라갈 때 느꼈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와! 많은 약초를 가져오셨네요. 대단하십니다.”

    프랭크의 칭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또한 카일이 건넨 인사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고개만 까닥거리며 멍하니 마차에 올랐다.

    이후로 레녹스가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아가 방에 들어온 것 같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리첼의 귓가엔 카일의 목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기에 잠을 자지 못한 채 밤새 뒤척였다.

    리첼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인해 잠을 자지 못한 건 난생처음 겪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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