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리첼과 비아가 차를 마시자 펠릭스가 빈 의자에 앉았다.
눈치 없이 그는 인사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인사만 하고 가면 또다시 자주 마주치는 건 운명이 아닐까 흔들릴 수도 있을 테지만 그의 행동은 조금 과하다고 느껴졌다.
“우리가 인연이 깊긴 깊군요. 이렇게 자주 만나다니.”
게다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깐. 이제 그만 말씀하세요.’
겉으론 내색하지 못한 채 리첼은 속으로 대답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인연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직접 말로 자주 들으니 인연을 부정하고 싶은 거부감도 들기도 했다.
그래서 우연히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리첼의 마음은 점점 식어갔다.
고백을 받고, 대답을 미룬 상태라 아직 그의 얼굴을 보기 어색했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펠릭스와 일상 대화를 하는 건 불편했다.
펠릭스는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리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펠릭스도 그녀의 감정을 눈치라도 챘는지 그는 지난번처럼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했다.
“와아. 예뻐요.”
비아는 여전히 아름다운 꽃을 보며 흥분했지만 리첼은 아니었다.
‘장미 향기의 효능이 떨어진 지 언젠데.’
리첼은 이젠 장미 향 따윈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몸의 기억력은 짧았다. 그녀가 느낀 더 강렬한 자극이 펠릭스와 있던 감각을 모두 지워버리고 만 것이다.
리첼의 몸이 기억하는 향은 솔잎 향이었다.
펠릭스와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몸 안에 남아있던 향마저 없어지기 전에 그녀가 먼저 카일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펠릭스를 마주치는 횟수가 늘수록 더욱 카일이 생각나다니.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