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41화 (41/110)
  • 07.

    “꺄아!”

    방심하고 있던 차에 몰려온 자극에 리첼은 저도 모르게 작은 소리를 냈다.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리첼은 또다시 카일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곧이어 밀려오는 강렬한 전율이 온몸을 덮쳐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항의할 수 없었다.

    치마 끝을 잡은 손을 더욱 꼭 쥐며 계속 몰아치는 자극을 참아내려 했다.

    하지만 몸 안에 자극이 가해질수록, 열기가 가득 찰수록 쾌락의 꿀로 흠뻑 젖었고, 카일의 손은 더더욱 거침없이 그녀를 희롱했다.

    계속되는 자극으로 인해 어느 순간 온몸이 부르르 떨 정도로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관통했고, 방 밖으로까지 들릴 정도로 교성이 나오려 했다.

    “읍!”

    그 순간 카일의 손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다행히 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고, 들숨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의 절정을 느끼자 그의 손은 리첼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벌은 이 정도로만 할까요?”

    카일은 다시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이대로 끝낸다고?’

    리첼이 아쉬운 듯 카일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애태우듯 행동하는 것만 같았다.

    “제가 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카일은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 자극해놓곤 끝이라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맹렬히 키스를 해놓곤, 장난스레 자극하다 끝이라니…. 마치 약만 올리다가 끝낸 느낌이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어.’

    이미 쾌락을 알아버린 리첼의 몸은 이대로 끝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카일은 진짜 여기서 끝내려는 것처럼 장갑을 손에 끼려 했다.

    재빨리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장갑은 다시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리첼은 온 힘을 다해 잡은 손목을 끌어 그의 몸을 벽에 밀어붙였다.

    작은 힘에 움직일 그가 아니지만 카일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고, 일부러 그녀의 행동을 모르는 척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겠다고요?”

    행동과는 달리 카일의 몸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리첼의 손은 서서히 그것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무덤덤한 표정과 달리 자신에게 반응하는 솔직한 그의 몸이 귀여워 보였기에 리첼은 참을 수가 없었다.

    “….”

    카일은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재밌다는 듯 리첼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여전히 그녀가 원하는 야릇한 미소가 나오지 않았다.

    ‘그 미소를 다시 보고 말 거야!’

    리첼은 제 손으로 천천히 그의 상의를 올리곤 바지 지퍼를 내렸다.

    ‘꿀꺽.’

    막상 마주하게 되자 자신이 없어졌지만, 용기를 내서 손을 뻗었다. 그의 뜨거운 열기가 손에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몸은 점차 불에 덴 것처럼 더더욱 뜨거워졌고, 리첼의 몸도 조금씩 움찔거렸다.

    카일의 희미한 미소는 어느새 그녀가 원하던 야릇한 표정을 변해 있었다. 단지 느끼는 모습만 보는데도 그 안에 녹아드는 것만 같았다.

    “그… 그만.”

    어느 순간 갑자기 카일이 다급한 듯 리첼을 막으려 했지만, 리첼은 그의 요청을 듣지 않았다. 그 바람에 그녀의 드레스는 순식간에 더러워지고 말았다.

    난감한 얼굴을 하며 카일이 손수건을 꺼내 닦으려는 순간 리첼은 그를 막았고, 그녀의 손을 그의 목에 감았다. 다음 진도를 나가기 위해서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선 욕망으로 가득 찬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리첼은 치마를 올려 그대로 그와 몸을 겹치려던 그 순간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차!’

    리첼은 그제야 카일와 함께 있는 이곳이 그녀의 방임을 깨달았다.

    곧바로 옷을 단정히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드레스에는 그가 남긴 흔적이 남아있었다. 리첼이 손수건을 꺼내려는 순간 비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라? 제가 방해라도 했나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리첼은 비아에게 일단 등을 지며 말했다.

    “잠시 할 얘기가 안 끝나서.”

    “아…. 제가 눈치 없이. 이따 다시 올게요. 두 분이서 마저 일 보세요.”

    비아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문을 닫았다. 허둥대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리첼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제야 지금까지 자신이 한 짓을 깨달았다.

    ‘분위기에 취해 무슨 짓을 한 거야? 카일 님이 자극하지 말라고 했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의 본능을 흔들었고, 쾌락에 취해 그를 덮치려 했다. 리첼의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이 카일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드레스를 닦고 있었다.

    “드레스는 갈아입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야릇한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카일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괜찮아요. 멈추라고 할 때 안 멈춘 제 잘못이죠. 드레스야 많으니 갈아입으면 돼요.”

    전에는 부끄러워 내뱉을 때마다 망설이던 말이 이젠 자연스레 나왔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카일도 잠시 이성을 잃었던 걸까.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그럼 다음 수업 시간에 또 봬요.”

    리첼은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하지만.

    “…공녀님.”

    갑자기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른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부르는 카일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기에 주변 공기가 무거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리첼이 이상한 기분이 든 채 되물었다.

    “아쉽게도 가르침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오늘도 얼굴을 뵙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만나서 다행이군요.”

    카일의 갑작스러운 사직 통보에 리첼의 눈이 토끼마냥 동그래졌다.

    “가, 갑자기 왜?”

    벌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벌리며 물었지만 저도 모르게 말을 버벅거렸다.

    이젠 레녹스가에서 그를 볼 수 없다니….

    카일이 레녹스가로 오지 않으면 리첼은 신전에 가지 않는 이상 그와 만날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제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급하게 관두게 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게다가 오래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카일은 이렇게 무책임하게 빨리 그만둘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무언가 이상했다.

    “설마. 사제 일을 그만두나요?”

    리첼의 말에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몸은 이제 사제가 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순결의 서약을 맺기 전이니 아마도 스스로 관두는 것일 터였다.

    그와 있던 꿈같이 황홀했던 순간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잔혹한 현실만이 남은 기분이었다.

    “예. 조만간 신전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호, 혹시 저 때문에 그만두는 거 맞죠?”

    리첼은 괜히 미안해졌다. 타인의 꿈을 짓밟고 그녀 스스로만 쾌락을 좇은 것 같아 부끄럼도 밀려왔다.

    “공녀님 탓이 아닙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래도….”

    “공녀님 때문이 아닙니다.”

    리첼이 미안해하는 걸 아는지 부담 느끼지 말라며 카일은 그녀의 탓이 아니라고 계속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리첼은 카일이 저택을 떠나기 전 리리스와 레이나를 불러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란 걸 알려주었다.

    “선생님 덕에 리리스는 신학에 재미 붙었단 말이에요. 계속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리리스가 아쉬운 듯 그의 바지를 붙잡았다.

    “리리스! 사제님께서도 개인 사정이 있으실 테니 이렇게 떼를 써선 안 돼.”

    레이나가 카일에게서 리리스를 떼어내며 말했다.

    리리스가 아쉬운 눈물을 흘리자 그가 그녀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음엔 수업 대신 리리스 님을 뵈러 레녹스가를 방문하겠습니다.”

    “약속했어요! 꼭 저를 보러 놀러 와야 해요.”

    카일의 말에 리리스는 언제 울었다는 듯 눈물을 멈추곤 해맑은 미소와 함께 그의 품에 안겼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카일이 저택을 떠날 때까지 리첼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괜히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 자책했다. 그녀 때문에 그가 꿈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약이란 걸 미리 알았기에 해독제라도 가지고 갔어야 했는데…. 때늦은 후회를 해봤자 이미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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