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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40화 (40/110)
  • 07.

    “그런 불순한 마음으로 약을 사용한단 말인가요?”

    그래도 여전히 성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성녀님께선 제게 비슷한 약을 먹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사제를 이용해서 말입니다.”

    “설마 그때 독을 먹고 쓰러졌던 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성녀의 입을 통해 대략적인 사건을 알았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네. 제가 쓰러져 공녀님께 도움을 받던 그 날이 성녀님의 약을 먹은 날이었습니다. 공녀님께서 제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으실까 난감했는데 다행히 묻지 않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말하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차마 물어볼 수 없었어요.”

    어떻게 먹였나 궁금하긴 했는데 어린 사제를 이용했다니… 성녀의 집요함에 리첼은 치가 떨렸다.

    “그 일과 관련해서 성녀님은 어떤 처벌도 받을 수 없나요?”

    “제가 대신관님께 말씀을 드린다면 처벌받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대체 왜요?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이러다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할 거 아니에요?”

    화가 나 피가 거꾸로 솟을 것만 같았다. 성녀가 저지른 죄를 숨기려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어린 사제님께서 혹시라도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죄책감을 가지실 것 같아 걱정됩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카일은 어린 사제 걱정을 했고, 성녀는 그런 그의 약점을 알기에 일부러 어린 사제를 이용한 것 같았다.

    혹시라도 어린 사제에게 피해가 갈까 봐 카일이 대신관님이나 다른 사제들에게 그녀가 저지른 일을 말하지 못할 거라는 걸 말이다.

    “게다가 저 때문에 신전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도 껄끄럽고, 성녀님과 관련해서 소문이 나는 걸 제 스스로 원치 않아서 숨겼습니다. 다쳐서 레녹스가에서 도움받은 사실을 끝까지 숨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때 이미 인사 다 받았는걸요.”

    말이 분란을 일으키기 싫다는 거지 본심은 카일의 말은 그냥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다는 말로 들렸다. 특히 성녀 관련해서 말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내게 완전히 넘어올 거야.

    성녀의 그 말에 찜찜함을 느꼈지만 그건 그녀의 기우였던 모양이다.

    힐다의 마음이 일방통행이라는 걸 알게 되자 고소하다는 생각이 든 리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서로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나니 두 사람 사이에 말소리가 없어졌고, 각자 말없이 차를 훌쩍였다.

    차라리 말을 더 이어나갔으면 좋았으련만. 눈앞에 보이는 남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또다시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힐 것만 같았다.

    그의 손길과 입술은 부드러웠고, 그의 몸은 단단했으며… 리첼은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이성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자꾸만 지난밤이 떠올라 그녀는 이성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왜 나 혼자만 안달 나는 것 같지?’

    동시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카일의 모습을 보니 괜히 심통이 났다.

    ―저는 좋았습니다. 공녀님은 아니었습니까?

    그런 말까지 해놓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하긴 그에게 그날은 그저 하룻밤으로 끝날 일이겠지.’

    상대방의 호의에 리첼은 그녀 혼자만 불순한 감정을 가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밤 그의 새로운 모습을 혼자만 독점해서 기뻤건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지난밤 제게 좋았다고 말씀해놓곤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 아닌가요?”

    그래서 리첼은 넌지시 그날 일을 입 밖으로 꺼냈다.

    카일이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특히 그의 표정이 또다시 야릇하게 변하는 걸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온화한 미소는 사라졌고, 대신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수업 시간 내내 제 입술만 바라보셨던 분의 입에서 나올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카일의 말에 리첼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그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챌 줄은 몰랐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수업 열심히 들은 사람에게. 사제님이야말로 제 입술만 바라보는 것 같던데요. 뭘! 그렇게 제 몸이 마음에 들으셨나 봐요?”

    사실 카일의 시선은 리첼의 입술을 향하진 않았다. 그건 그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당황한 리첼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공녀님께서는 남성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놓곤 그렇게 도발하시면 안 됩니다.”

    일부러 내리깐 목소리와 함께 카일은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제가 대체 뭘 도발했다는 건가요?”

    ‘함께 차를 마시려고 내 방에 초대한 것뿐인데….’

    리첼은 그를 도발할 생각 따윈 없었다. 단지 카일의 표정이 변화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계속해서 보이는 건 그의 굳은 얼굴과 담담한 말투였다.

    “저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아니면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라뇨. 제가 그런 걸 할 리가 있나요? 뭐가 무섭다고요. 사제님이야말로 뭐가 무서워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저는 겁 안 나요.”

    리첼은 순진했고, 그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지기 싫은 반발심 때문에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자 갑자기 카일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대로 리첼의 손을 붙잡고 벽으로 밀쳤다. 기대했던 그의 이상야릇한 눈빛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피― 겁 안 난다고요.”

    리첼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섰다.

    그러자 그 순간 카일이 그녀의 턱을 붙잡곤 그대로 자신의 입술을 내렸다.

    기대했던 부드러운 키스가 아니라 맹렬히 삼킬 것 같은 강렬한 키스가 쏟아졌다. 남자의 혀가 그녀의 혀를 쫓았다. 그를 피해 도망치려 했건만 붙잡혔고, 그대로 휘감겼다.

    뜨거운 감촉이 물밑 듯이 밀려오자 오싹한 감각이 온몸에 솟구쳤다.

    리첼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너무 강렬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몸 안에 야수의 본능을 숨겨 놓고 있다가 이제야 드러낸 것만 같았다.

    구석에 몰려 겁에 질린 어린 양처럼 그 순간 리첼은 두려움을 느꼈다.

    짓눌리도록 격하게 그의 가슴을 손으로 억지로 밀어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격렬히 저항하는 그녀의 양손을 붙잡혔다.

    손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단단한 손아귀 힘에 밀려 손을 움질일 수 없었다. 리첼은 어쩔 수 없이 카일이 하는 대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저항하면 할수록 카일은 더욱 강압적으로 밀치고 들어왔고, 결국 그녀 안을 완전히 차지해 버렸다.

    저항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을 기세였기에 리첼도 어느새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고 그를 받아들였다. 점점 몸 안이 저리고 뜨거워졌다.

    하지만 격렬한 키스가 계속될수록 몸이 버티기 힘들었다. 힘이 풀리며 목이 꺾이려는 그 순간 카일의 입술이 떨어졌다.

    “자… 잘못했어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리첼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제야 그녀는 제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맹렬한 기세를 보니 그녀가 무엇을 자극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난밤 부드러웠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내가 알던 그가 아니야.’

    이 이상 카일을 자극해선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를 자극할수록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잘못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그러니 나쁜 학생은 벌을 받아야겠지요?”

    하지만 리첼의 사과에도 카일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끼고 있는 장갑을 벗었다.

    그냥 벗으면 좋으련만 검지 끝을 입으로 살며시 물곤 그대로 장갑을 뺐다.

    ‘왜 장갑을 요염한 모습으로 벗는 거야….’

    그 모습이 어찌나 관능적으로 보이던지 몸이 떨려왔다.

    “아… 아뇨. 괜찮아요. 저 다 뉘우쳤어요.”

    거절하려 했건만 카일은 손으로 리첼의 치마를 거칠게 잡아 올렸다.

    카일이 리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재밌다는 듯 씨익 웃었다.

    다시 내려온 풍성한 치마를 들어 올린 후 카일은 그녀에게 잡으라는 듯 살짝 흔들었다.

    리첼의 두 손으로 치마를 들자, 카일은 그녀의 속옷을 벗겼고, 그의 손은 또다시 그녀에게로 파고들었다.

    “제발… 애태우지 말고…….”

    카일은 그녀를 놀리며 그 반응을 즐기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그의 장난에 놀아나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의지와는 다르게 안달 난 듯 자꾸 비비 꼬이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사정해도 카일은 미소만 지을 뿐 여전히 그녀를 가볍게 자극할 뿐이었다.

    “제가 벌을 준다고 했지 쾌락을 드린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는 음흉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치…사해.”

    리첼이 카일을 노려본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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