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언니. 요즘 이상해.”
“내가 뭘?”
“요즘 사제님에 대한 마음이 떠났나 봐? 매일 듣던 수업도 잘 안 들어오고. 피―.”
리첼이 수업을 자꾸 빼먹자 레이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 보기 부끄러워 시선을 피한 걸 카일이 싫어져서 일부러 피하고 있다고 말이다.
“오늘은 수업에 들어갈 거야.”
레이나의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리첼은 수업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레이나가 카일에게 어떤 엉뚱한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부끄러운 감정보다 더 컸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듣는 내내 리첼은 이전과 같은 눈으로 카일을 바라볼 수 없었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지난밤의 일이 떠올라 도저히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꾸만 그의 시선을 피했다.
대신 저도 모르게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촉촉하고도 달콤한 감촉이 떠올랐기에 리첼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정원에서 차를 마시려 했건만 밖에선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일과 눈을 마주 볼 자신은 없었지만 이대로 그를 그냥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레이나와 리리스가 다른 볼일이 있다고 하자,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 단둘이 있으니 카일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지난번에도 보셨다시피 리첼 님의 방은 응접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부담 없이 들어가셔도 돼요. 차는 금방 내올게요.”
비아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부담이 줄었는지 그는 리첼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다만 비아의 말에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건 리첼의 몫이었다. 숙녀의 방을 응접실과 비슷하다고 말하다니….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앞에 놓인 자스민 차를 마시며 카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그날 기도실 앞에서 성녀님과 다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닐 테고. 밤늦게 공녀님께서 신전에 몰래 들어왔다는 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맞습니까?”
리첼은 들고 있던 찻잔을 입에 대려다 잠시 멈칫했다. 목걸이를 돌려받기 위해 신전에 몰래 들어갔다가 우연히 성녀가 하는 소리를 엿들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사실 저도 궁금했어요. 카일 사제님과 성녀님의 관계 말이에요. 어떤 사이기에 성녀님께서 약까지 몰래 준비를 하셨는지….”
리첼은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그녀의 물음에 카일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성녀님의 교육 담당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카일은 그다음 말을 하려다 멈췄다. 조금은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편히 말씀하세요.”
리첼은 그가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다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사실 이전에 제가 다른 대륙에 머물렀을 때 잠시 알던 사이이긴 했습니다. 제가 베르 신전의 견습 사제가 되면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긴 했는데, 성녀님께선 그걸 운명이라고 느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녀님께서 제게… 조금 집착하시는 것 같습니다….”
‘서로 알던 사이라니?’
리첼은 그의 말을 듣고 놀랐다.
성녀가 자꾸 카일이 운명의 상대라고 외치고 다닐 땐 헛소리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으니 인연이 있다고 생각할 만했다.
리첼 그녀도 실제로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펠릭스와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자 경계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그에게 끌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