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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38화 (38/110)
  • 06.

    이윽고 카일이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그를 덮고 있던 이불이 들썩대며 바닥에 떨어졌고 그의 단단한 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른 편인데도 근육으로 꽉 찬 그의 몸을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씩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리첼은 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곧바로 시선을 돌렸지만, 자꾸만 시선이 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곁눈질로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지난밤 어떠셨습니까? 지금 저를 흡족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던 걸 보니 만족하신 것 같습니다만.”

    카일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놓고 물어볼 줄 몰랐기에 리첼은 잠시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 아니었나요?”

    카일은 그녀의 풀어헤친 머리끝을 살짝 잡고 만지작거리다 그대로 그의 입술을 지그시 내렸다.

    “저는 좋았습니다. 공녀님은 아니었습니까?”

    “아… 저….”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그의 집요한 시선에 리첼의 몸이 묘하게 움찔거렸다.

    민망해서 대답을 미루려고 하다가 문득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 여긴 어딘가요?”

    그래서 황급히 말을 돌렸다.

    “여긴 신전 내 제 개인 거처입니다.”

    “아….”

    그 짧은 시간 내 카일이 그녀를 밖으로 데려갔을 리 없었다. 그제야 리첼은 신전 안에서 그와 어젯밤 같이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 어쩌다 보니 그들은 신성한 공간인 신전 내에서 일을 치르게 된 꼴이었다.

    “괜찮습니다. 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주의하면 됩니다.”

    자꾸 뭐가 괜찮다는 건지. 리첼은 카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어제 방 밖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요?”

    많은 것들이 걱정되었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어젯밤 방 안에서 났던 신음 소리였다. 교성을 크게 지른 것 같기도 하고…?

    “걱정 마십시오. 공녀님의 신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확신에 차면서도 짓궂은 미소와 함께 카일이 대답했다.

    신음 소리라는 말을 듣자 간밤의 일이 떠올라 리첼의 얼굴은 서서히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황급히 일어나자 그의 손에 잡혀있던 머리카락이 스르륵 풀렸다.

    “새벽 예배 시간이 끝나면 신도들이 몰려나올 겁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거의 잠을 주무시지 못하셨을 텐데 댁에 돌아가셔서 푹 쉬십시오.”

    “사제님은 새벽 예배 나가지 않아도 괜찮나요?”

    “저는 어제저녁 기도를 담당했기에 새벽 예배는 나갈 필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가 혼자 기도를 한다는 걸 알고 성녀가 그를 노렸었지.’

    어젯밤에 하도 많은 일이 일어나 리첼은 어제 일어난 일인지 그제 일어난 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카일에게 물어볼 게 몇 가지 있었지만 어차피 또 볼 것이기에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행히 신전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기에 리첼이 어디서 나오든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신전을 나가려 하자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첼 님!”

    기사들이 밤새 기다린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간밤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킬까 민망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몸은 괜찮아지셨습니까?”

    프랭크가 물었다.

    “응. 난 괜찮아. 보다시피 멀쩡해.”

    마부가 어제 일어난 일을 기사들에게 전한 모양인지 그들은 리첼의 몸 상태만 걱정할 뿐 다행히 다른 건 물어보는 것이 없었다.

    “다행입니다. 어찌나 걱정했던지.”

    프랭크가 괜히 눈물 흘리는 시늉을 했다.

    “별일 없을 거라 했잖아.”

    어젯밤 별일은 있었지만 리첼은 일단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딱 잡아떼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오후 카일이 수업하러 레녹스가를 찾아왔지만 지난밤 부족한 잠을 자느라 리첼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녀와 비슷하게 밤새 거의 잠을 자지 못했을 텐데도 평소와 같이 생활하는 그를 보니 대단하다고도 느껴질 정도였다.

    몸이 닿았으니 전보다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지만, 생각할수록 부끄럼이 밀려와 리첼은 카일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뒤로 두 번 정도 리첼은 차마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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