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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30화 (30/110)
  • 05.

    응접실에 혼자 남겨지자 성녀 힐다는 그곳을 나왔다. 그러곤 2층을 향해 살금살금 올라갔다.

    저택의 사람들은 다들 바쁜지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리첼의 방이 어딘지 알 수 없었기에 그녀는 청소하느라 열려있는 방을 한 번씩 확인했다.

    ‘공작가의 자녀들이 몇 명이었지?’

    방이 여러 개라 어느 방을 들어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래서 열심히 청소하는 침대 방 가운데 리첼의 분위기와 가장 비슷한 방을 찾아보려 했다.

    조심스레 방을 하나씩 살펴보니 화려한 다른 방들과 다르게 리첼의 이미지와 비슷하게 깔끔한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방인가?

    [똑똑]

    힐다가 그 방의 문에 노크했더니 일하던 하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찾던데요?”

    “리첼 님께서요?”

    묻지도 않았는데 멍청한 하녀는 그곳이 리첼의 방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가 방에서 나가 계단 밑으로 내려간 것을 확인한 후 힐다는 잽싸게 문을 닫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카일은 어느 날 갑자기 레녹스가에서 공녀들을 가르친다며 외출하기 시작했다.

    신전의 규칙상 견습 사제는 아직 누군가를 가르쳐선 안 된다고 정해져 있었다. 하루 잠깐 가르치는 건 가능했지만 이렇게 매주는 불가했다.

    그러니 갑자기 카일이 공작가 집안을 자주 오가며 공녀들을 가르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가 힐다의 전담 교육을 맡게 된 경위도, 원래는 안 되지만 그녀가 박박 우겨서였다. 눈물을 보이자 대신관님이 힐다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니 카일이 갑자기 레녹스가를 드나들게 된 건 아마도 리첼, 그 계집애가 대신관님을 협박한 것이 분명했다.

    ‘사제님은 저런 계집에겐 절대 관심 따윈 없을 거야.’

    힐다는 자꾸 자신의 신경에 거슬리는 리첼을 볼 때마다 기분이 거북했다.

    물론 레녹스가엔 공녀가 여럿 있으니 카일이 그녀와 1대 1로 만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설마 이 방에 들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겠지?’

    힐다는 천천히 방을 살펴보며 이것저것 살피기 시작했다.

    남몰래 방을 뒤지는 건 정말 재미난 일이었다. 특히나 귀족의 방을 말이다. 그녀는 이곳저곳을 뒤져보며 카일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서랍장 칸마다 열어보곤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확인했다. 혹시 약점이라도 될 만한 것도 있는지 확인도 할 겸 말이다.

    그러다 그녀의 눈에 시선을 끄는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투명한 목걸이였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힐다는 주변을 살핀 후 얼른 목걸이를 품 안에 넣었다. 다행히 그때까지 하녀는 방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원하는 물건을 찾은 그녀는 다시 살금살금 1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갔다 와요?”

    응접실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볼일을 마치고 온 리첼과 마주쳤다. 수상한 짓을 했다는 걸 눈치라도 챘는지 의심의 눈초리가 힐다를 향하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핑계를 댔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지 화장실이란 말에 리첼의 표정이 굳어졌다.

    * * *

    “역시.”

    리첼이 신전에 서신을 보내 알아본 결과, 역시나 카일은 자신의 대타로 성녀를 보낸 적이 없었다.

    “카일 사제님께서 급한 용무가 생기셔서 오늘 못 온다고 서신을 보내셨다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누군가 가로챈 것 같습니다. 신전에서 서신 담당하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레녹스가로 보내는 서신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보내려던 서신을 성녀가 중간에 가로챈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이젠 도둑질까지 하네. 대체 무슨 꿍꿍이야.”

    상황을 파악하자 그제야 리첼은 응접실에 성녀를 혼자 두고 나온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녀를 혼자 두는 건 어째 불안했다.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내 집에서조차 불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니….”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응접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리첼은 어딘가 갔다가 돌아오고 있는 성녀와 마주쳤다.

    “어디 갔다 와요?”

    “잠시 화장실에.”

    화장실이라고 말하면서도 성녀의 얼굴은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른 사람같이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진짜예요?”

    리첼은 의심의 눈초리로 성녀를 바라보았다.

    “왜 자꾸 날 안 믿어요? 너무 불쾌해서 못 있겠네. 나 이만 신전으로 돌아갈 거예요!”

    아까 가라고 할 땐 가지도 않던 사람이 잡을 새도 없이 갑자기 쌩하고 가버렸다.

    ‘이상해. 역시나 성녀를 두고 자리를 비우지 말았어야 했어.’

    수상한 그녀의 행동을 보니 성녀를 혼자 둔 게 후회가 되었다.

    ‘설마….’

    리첼은 얼른 자신의 방으로 가서, 청소하고 있는 하녀에게 물었다.

    “혹시 누가 내 방에 들어왔니?”

    “아까 성녀님이 아가씨께서 부르신다고 하셔서 내려갔는데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찾다가 다시 방에 왔어요. 아가씨 만나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뭐?”

    눈빛이 불안하더니 역시나 성녀는 수상한 짓을 하고 간 것 같았다. 설마 방을 뒤지기라도 한 건가.

    “청소는 일단 나중에 해줄래? 나 찾을 물건이 있어서 그래.”

    하녀를 내보낸 후 혹시나 하는 찜찜함에 서랍 이곳저곳을 뒤져보았다.

    “어?”

    항상 제자리에 두었던 목걸이가 보이질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곳에 뒀었나?’

    이곳저곳을 뒤져보았건만 궁합을 알려준다는 목걸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리첼은 이마를 찡그린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날이 밝자마자 리첼은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성녀와 싸운 소문의 부끄러움보다는 자신의 물건을 훔쳐 간 분노가 더 컸다.

    “성녀님은 어디 계시죠?”

    성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지나가던 사제를 붙잡고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

    “지금은 기도실에 계실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첼은 안내해 준 기도실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뒤에선 비아가 그녀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허겁지겁 따라왔다.

    기도실에 도착하니 때마침 성녀가 다른 사제들과 함께 기도실을 나오고 있었다. 그들 중 카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성녀는 눈이 마주쳤는데도 모르는 척 지나가려 했다.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그러겠지.’

    리첼은 언짢은 표정으로 지나가는 성녀의 팔을 붙잡았다.

    “성녀님, 잠시 이야기 좀 나눌까요?”

    “무… 무슨 이야기요?”

    그러자 그녀는 말을 버벅거렸다. 리첼과 마주치는 눈동자는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 어제 레녹스가에 왔을 때 제 물건 가져가셨나요?”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전 목걸이에 손댄 적도 없는데.”

    리첼은 물건이라 말했지만 성녀는 목걸이라 대답을 했다. 그렇다는 건 그녀가 목걸이를 가져간 건 기정사실이었다.

    “목걸이라고 한 적 없는데 어찌 알았어요?”

    리첼이 비웃듯 물었다.

    “그, 그냥 귀, 귀금품 중 하나라 새, 생각했을 뿐이에요.”

    목걸이라는 말에 놀란 성녀는 또다시 말을 버벅거렸다.

    “어서 돌려주시죠?”

    “모른다니깐요?”

    돌려달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며 살짝 흔들었지만 성녀는 모른 척했다.

    “어제 내 방 왔다 간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그런 적 없어요.”

    “발뺌하지 말고 주시죠? 내 방 청소하는 하녀가 당신을 내 방에서 봤다는데요?”

    성녀가 계속 시치미를 떼자 리첼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주변 사제들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다.

    지난번에도 싸웠던 둘인데 이번에도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난감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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