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29화 (29/110)

05.

리첼을 먼저 찾아온 건 카일이었다.

“오늘도 수업에 안 들어오시기에 몸 상태가 괜찮은지 보러 왔습니다. 많이 좋아지신 걸 보니 다행입니다.”

“네. 내일쯤이면 평소대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병문안 와주셔서 감사해요.”

아직 일어나 걷기엔 무리였기에 침대에 앉아 그를 맞이했다.

“수업 마치고 잠시 들렸을 뿐입니다.”

리첼은 자신의 목덜미에 난 흔적이 그의 눈에 들어오도록 어깨를 괜히 앞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성직자가 될 몸이라 키스 마크에 대해 잘 모르나?’

너무나도 무덤덤한 반응에 카일이 키스 마크의 범인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리첼은 정신을 잃기 전 잠시 그와 있던 일을 떠올렸다.

몸이 무거워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댔고, 이마가 맞닿고….

속눈썹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다시 몸이 안 좋아지셨습니까?”

카일이 리첼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였고, 또다시 그의 이마가 그녀의 이마를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상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속눈썹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자 리첼의 심장 소리가 점점 커지며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깊고 검은 눈동자가 그녀의 마음을 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리첼은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눈치 없는 심장은 더욱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카일의 귓가에도 그녀의 심장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으려는 찰나에 다행히도 그의 이마가 멀어졌다.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푹 쉬시고 다음 수업 때 뵙겠습니다.”

“네….”

얼굴이 붉어진 채 리첼은 고개만 푹 숙이며 작게 대답했다. 그가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카일이 간 후 리첼은 누워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켰다.

[똑똑]

그러고 몇 분이 지나자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리첼이 일어나자마자 비아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펠릭스 님께서 오셨어요.”

“들어오시라고 해.”

키스 마크의 주인은 카일이 아니었으니 펠릭스가 분명했다.

‘그가 이 흔적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흐뭇한 미소라도 지으려나?’

펠릭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에 리첼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또다시 마음을 끄는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지난번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뵈러 왔지만 주무시고 계시기에 얼굴만 뵙고 돌아가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리첼 양이 다 나은 모습을 보고 싶어 이렇게 다시 찾아왔어요.”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들어오던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은 리첼의 목덜미를 향했다.

“이게 대체 무슨!”

환하고 웃던 얼굴은 어느새 눈썹 사이에 세 갈래로 주름이 잡혔다. 동시에 마치 불쾌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예상치도 못한 펠릭스의 반응에 리첼은 당황했다.

그녀는 얼른 손으로 흔적을 가리려다 손을 내렸다. 겉으로 내색해선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혹시라도 물어보면 벌레에 쏘였다고 대답하기로 마음먹곤 펠릭스의 반응에 놀란 척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하아…. 아닙니다.”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시선은 리첼의 목덜미를 향해 있었다. 여전히 불쾌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말은 즉, 목덜미에 흔적을 남긴 사람은 확실히 펠릭스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설마… 범인이 카일 사제라고?’

너무 놀랐지만 펠릭스 앞에선 티를 낼 순 없었다.

오늘도 그가 건네주는 장미꽃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지만 대화하는 내내 집중할 수 없었다.

펠릭스가 돌아간 후 리첼은 멀리 집 나간 정신을 다시 끌고 와서 오늘 있던 일을 되짚어 생각했다.

요새 카일 사제의 태도가 달라진 건 알고 있었다.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던 행동들이 혹시 의도한 것이란 말인가?

“아하핫.”

그토록 철벽을 치던 사람이 갑자기 유혹하듯 행동하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오면서도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그녀를 유혹하는 행동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냐. 이 흔적은 그냥 벌레 물린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었기에 그냥 두 사람 다 범인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몹쓸 몸은 머리를 배반했다. 언제 비틀거렸냐는 듯 리첼은 멀쩡히 일어설 수 있었고, 그대로 마차를 타고 신전에 갔다.

“대체 왜 그러세요?”

이상 행동에 놀란 비아가 뒤따라오며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카일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전에 있는 영애들의 시선을 쫓으니 멀리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진 않았지만, 직접 가서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당신이 맞나요? 대체 왜 그랬나요?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가요?’

목구멍까지 그 말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막상 몸이 움직여 신전에 왔건만 물어볼 수 없었다.

‘혹여나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결국 리첼은 그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노려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말이다.

“아직 열이 있나 봐요. 어서 가서 누우세요.”

비아는 리첼이 열이 나서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끌려갔다.

‘대체 왜 신전으로 간 거야? 어차피 내일 또 만날 텐데. 가서 묻지도 못할 거 왜 간 거야!’

정신을 차린 후 리첼은 자신의 행동을 자책했다.

‘대체 뭘 원하니?’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단지 ‘혼란스럽다’ 그게 지금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리첼은 펠릭스보다 카일에게 더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 * *

“오늘은 카일 사제님께서 바쁘셔서 제가 대신 왔어요.”

어찌 된 일인지 다음 수업 시간, 기다리던 카일 대신 성녀가 레녹스가를 찾아왔다.

‘누구 때문에 마음 편히 신전에 가지 못하는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레녹스가를 방문한 성녀의 얼굴을 보니 리첼은 화가 났다.

“카일 사제님께서 급한 일이 생기셨다면 오늘 수업을 안 하면 될 텐데 성녀님께서 직접 오셨다고요?”

카일 사제가 저 예의도 모르는 성녀에게 그의 일을 대신 맡겼을 리 없기에 쌀쌀맞은 말투로 물었다.

“네. 진짜예요.”

그러자 성녀는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리첼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진짜라고요? 진짜로?”

리첼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 같아 재차 물었다.

“저를 못 믿겠다는 건가요?”

재차 묻자 성녀는 짜증이 밀려왔는지 툴툴거렸다.

“네.”

그 즉시 짧은 답변이 들려오자 성녀는 당황스러워했다.

“내가 수업하러 왔다는데 왜 못 믿어요? 어쨌든 왔으니 난 무조건 수업하고 갈 거예요.”

그러다 이내 표정 관리를 하곤 수업하고 가겠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그럼 오늘 수업은 그냥 이만 끝내주세요.”

‘누가 너 따위에게 배운다고.’라고 말할 순 없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리첼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또다시 성녀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네.”

“….”

반복되는 대답에 성녀는 또다시 당황해서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려줄게요. 난 성녀잖아요.”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그녀는 이번엔 엉뚱한 핑계를 댔다.

“됐으니까. 일단 응접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내가 직접 알아볼 테니.”

이 이상 대화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리첼은 성녀를 응접실에 일단 안내한 후에 집사를 부르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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