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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25화 (25/110)

04.

[똑똑]

“저… 황녀님께서 방문하셨는데요?”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는지 갈색 머리 하녀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녀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카일은 조금 전 그의 생각을 부인했다.

‘비밀이라더니 황녀까지 오다니….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신뢰가 깨졌다고 생각이 들자 점점 기분이 불쾌해지는 것만 같았다.

“일단 조용히 있어 주세요. 아마도 그냥 제 얼굴을 보러 왔을 거예요. 돌려받을 것도 있고 말이에요.”

그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리첼은 작은 소리로 변명하곤 방 밖으로 나갔다.

“뭐야? 뭘 숨기고 있는 거야?”

황급히 문이 닫히자마자 밖에서 황녀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여기선 그렇고, 일단 서재로 가요.”

혹시라도 그가 들을까 봐 난감했는지 리첼은 그녀를 다른 장소로 유인하려는 듯했다.

“어머, 목걸이 돌려주려고 왔는데 왜 그래? 이거 정말 효과 좋던데? 이젠 네 오랜 첫사랑 잊기도 성공했니? 목걸이라면 잊게 해줄 텐데.”

오랜 첫사랑… 목걸이… 효과… 카일의 귓가에 세 단어가 또랑또랑하게 들렸다.

“가서 말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리첼은 대화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황녀를 끌고 가려는 듯했다.

“왜? 누가 있어? 설마 아드리안? 그런데 그는 이제 약혼했다면서? 너 이젠 진짜 포기하는 거지? 그렇지? 아니면 두….”

황녀의 입이 막혔는지 읍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얘기하자고요.”

리첼의 목소리만 들어도 난감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황녀가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만났기에 카일은 밀리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다만 레녹스가와 황실이 친인척 관계라더니 역시나 두 사람의 성격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약간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아드리안…?’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브라이트웰 백작가였던가. 카일은 그와 인사를 나눈 적 있었다.

‘공녀님께서는 오랜 기간 그 남자를 짝사랑을 했던 걸까?’

그 순간 카일은 미안한 감정이 울컥 올라왔다. 그동안 그녀를 오해했다.

언제나처럼 그에게 불순한 감정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여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그녀에게 냉대하게 대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혼자 착각한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오랜 짝사랑이라니…. 카일은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그는 즉시 상처를 치료하려던 손을 멈추었고 그 손을 그대로 감아 주먹을 꽉 쥐었다.

* * *

말도 없이 찾아올 줄이야.

싱긋 웃고 있는 밀리아를 보며 리첼은 한숨을 푹 쉬었다.

가뜩이나 빌려 간 목걸이를 약속한 기한 내에 돌려주지도 않다가 만나기 곤란할 때 무턱대고 찾아올 줄은 꿈에 몰랐다.

게다가 방 안까지 들리도록 카랑카랑한 목소리 때문에 난감하기까지 했다.

‘하필이면 사제님이 방에 있는데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하다니….’

아무리 친하다지만 황녀의 입을 막는 건 결례였지만 리첼은 그녀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비밀이라고 했잖아요!”

밀리아의 입에서 손은 뗀 대신 그녀의 손을 억지로 끌고 가며 리첼은 조용히 속삭였다.

“뭐 어때. 여긴 다들 들어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뿐인데? 그리고 빌린 물건도 돌려주러 왔는데 대접이 왜 이래?”

리첼의 항의에 밀리아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리 서신이라도 보내줬으면 이렇게 놀라지나 않죠.”

“리첼, 너 놀라는 얼굴 보려고 말없이 왔지. 방 안에 꿀단지라도 숨겨 놓은 거야 뭐야. 수상한데? 왜 나를 이렇게 어색하게 끌고 가는 것 같지?”

남들 앞에선 품위 있고 우아한 척하지만 리첼의 앞에선 본모습 그대로 보이는 밀리아였다.

“수, 수상하긴요. 그나저나 목걸이는 일주일만 빌리기로 해놓고선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네요?”

리첼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방에 대한 의문점이 커지기 전에 말이다.

“나에게 맞는 사람 찾기란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 네가 두 명이나 만났다기에 쉽게 찾을 줄 알았지.”

다행히 그들의 화제는 리첼이 원하는 대로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래서. 만나긴 만났고요?”

“응.”

대답과 함께 얼굴이 점차 붉게 달아올랐다.

“표정을 보아하니… 벌써 일까지 치르고 참으로 빨리도 돌려주네요. 약혼자도 있는 분이 그래도 돼요?”

“약혼이야 깨면 되지. 난 그 사람과 다시 약혼할 거야.”

“그래도 돼요? 황실에서 결정한 약혼인데도 그게 가능해요?”

“운명의 상대라 괜찮아. 내 전 약혼자도 이해해 줄 거야.”

원하는 사람과 막무가내로 약혼한다는 말에 리첼은 어이없는 듯 밀리아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밀리아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있잖아. 난 그를 보자마자 운명의 상대라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저 남자 내 거다! 라고 할까나 그런 느낌이 왔는데 넌 그런 거 안 느꼈니?”

리첼은 그런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운명의 상대라고 느낀 건… 아드리안이었으니까.

“첫눈에 반한 건 아니고요?”

“그, 그런가?”

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몸의 끌림은 있던데? 상대방에게 목걸이가 반응한 순간 더더욱 끌림을 느꼈어. 넌 어때?”

리첼이 그동안 몸의 이끌림도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걸 밀리아도 똑같이 느꼈던 모양이었다.

“사실 저도 몸의 끌림을 느끼긴 했어요.”

“넌 상대가 둘이니깐 어때? 둘에게서 같은 마음이 느껴져, 아니면 어느 한 명이 더 끌려?”

“…아마 둘 다?”

리첼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면 끌렸다가도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식었다.

마치 그녀의 심장은 이 남자 저 남자 재가며 변덕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생각할 땐 아마 상대방도 네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말이야.”

“아….”

리첼은 자신의 감정만 생각했지, 상대방이 같은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건 아닐 거예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리첼은 밀리아의 말을 부정했다.

펠릭스는 여러 번의 우연한 만남 끝에 친해졌고, 카일은 처음부터 그녀에게 적대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밀리아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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