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레녹스 공작이 리첼을 넌지시 자신의 서재로 불렀다.
“네.”
“어쩌다가 그런 일에 끼어들게 된 거니?”
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목걸이가 그에게 반응했어요. 그래서 제 마음을 알고 싶어서 잠시 친해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봉변을 당할 줄이야….”
말을 하면서도 리첼은 마음속 한구석이 허전함을 느꼈고, 동시에 스스로가 비참했다. 꼭 불륜을 저지른 것만 같은 불쾌한 기분이었다.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물한 목걸이가 네게 스트레스를 줄 줄은 몰랐구나.”
상당히 놀랐는지 레녹스 공작의 눈썹 한쪽이 살짝 올라갔다.
“역시 오라버니 같은 남자는 만나면 안 되나 봐요.”
리첼은 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바람둥이도 한 여인에게 정착할 수 있다고 믿은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너를 위해 다른 여인들을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나는 오히려 점점 그에게 호감이 생기는구나.”
하지만 레녹스 공작의 입에선 뜻밖의 말에 흘러나왔다.
“네?”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놀란 리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지.
곰곰이 생각하니 아버지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위로가 되면서도 마음엔 와닿지 않았다.
“루이스와 그 남자를 동일시하지 않길 바란다. 다른 사람이란다. 게다가 네 오라비를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구나. 지금은 진심으로 한 여인에게만 몸과 마음을 바쳤으니 말이야.”
아버지의 말씀대로 두 사람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감정이란 그렇게 바로 정리되지 않았다.
‘바람둥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한 계속 찜찜하다는 감정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라버니와 여인들의 분쟁을 두 눈으로 겪고선 치를 떨었는데, 똑같은 일을 겪는다면 리첼은 이 이상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펠릭스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호감이 가는 정도의 감정 상태에서 리첼은 치정 싸움에 끼어들긴 싫었다.
‘이대로 과연 괜찮을까?’
리첼은 펠릭스와의 만남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펠릭스를 생각만 해도 떨렸던 가슴은 이젠 그를 떠올리기만 차갑게 식었고, 그에게로 점점 향하던 저울의 움직임 또한 멈추어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