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7화 (7/110)
  • 02.

    리첼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엘시아가 오랜만에 레녹스가를 방문했다.

    가문 간의 계약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마르스와 약혼 중인 그녀는 현재 아드리안에게 끌리면서도, 두 남자 중 한 사람을 택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리첼은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드리안이라는 멋진 남자를 두고선 왜 고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문끼리 엮여 그녀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알면서도 그냥 엘시아가 부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얄밉기도 했다.

    “이제 네 마음에 솔직해지는 건 어때? 어물쩍거리다간 모든 걸 놓칠 수도 있어.”

    그래서 리첼은 엘시아의 정곡을 찌르며 괜히 화풀이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자 리첼은 그녀가 실제로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응원으로 시작한 마음은 이내 질투, 분노로 바뀌었다.

    그냥 미웠다. 엘시아의 모든 것이 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괜히 화풀이하는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미움의 감정이 더 컸다.

    ‘이대론 안 되겠어.’

    이대로 있다간 악한 마음이 리첼의 마음을 전부 잠식할 것만 같았기에 마음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리첼은 엘시아가 돌아가자마자 베르 신전으로 달려갔다. 울적한 기분을 신께 기도를 드리며 진정시키고 싶었다.

    “천천히 가세요!”

    뒤에선 비아가 소리쳤지만 리첼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 기도실로 가야겠다는 마음만이 찼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차에서 내린 후 급하게 달려가느라 앞에서 오는 남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만 남자의 가슴에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꺄아악!”

    예상치도 못한 단단한 힘에 밀린 리첼이 뒤로 넘어가기 직전에 상대방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부드러운 손길에 놀란 리첼은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바라보았고,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외모가… 조각상을 세워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마치 햇빛이 그에게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눈부신 햇살 아래 칠흑의 머리색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리첼에겐 그늘이 진 느낌이었다.

    그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따스한 햇살과 어울리는 남자였다.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 눈부셨다.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하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리첼은 그제야 남자가 사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신전의 사제인 모양이다.

    “괜찮으십니까?”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괘…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달려들어서….”

    리첼은 몸의 중심을 잡아 똑바로 섰고, 그제야 사제의 손이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힐끔힐끔 사제를 바라보았다.

    오늘 처음 보았지만 리첼은 그가 누군지 알 것만 같았다.

    눈처럼 하얀 피부, 블랙 오닉스를 박아놓은 듯한 까만 눈동자,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 훤칠한 외모가 그의 소개를 대신하고 있었다.

    요새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의 인물이자 그토록 연회장에서 다른 여인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애처로운 눈빛과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던 그 사제였다.

    스펜서 후작가의 차남 카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와 아드리안의 외모와 비교하는 이야기가 들릴 땐 리첼은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더 잘생겼을 거라며 인정하지 않았지만 막상 사제의 얼굴을 보니 그들의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의 외모가 아드리안에 견줄 정도로 빼어나다고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소문대로 사제로 있기에 아까워 보이기도 했고, 많은 여성들이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계속 멍하니 서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사제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목걸이 색이… 변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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