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6화 (6/110)

01.

펠릭스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거리며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

그런데 그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지난번엔 가볍게 접근하던 그가 이번엔 리첼을 보자마자 갑자기 가만히 서서 아무 말 없이 몇 초 동안 그녀를 빤히 바라만 보았다.

‘혹시 그도 나와 맞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라도 한 걸까?’

다른 여인들에게 접근했을 때와는 다른 펠릭스의 반응에 리첼은 기대감으로 설레었고, 잔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잔을 흔들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안녕….”

“오! 아름다운 여성이시여. 오늘 당신의 미모에 제 눈이 멀 것만 같아요. 눈이 부셔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군요.”

펠릭스가 칭찬하는 말을 건넸지만, 그건 리첼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그냥 지나쳤고 뒤에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남겨진 리첼의 말은 혼자 허공 속을 맴돌았다. 흔들리던 잔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달콤한 말로 여성을 꼬시는 펠릭스와 얼굴이 붉어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리첼은 그녀와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 여성은 설레서 붉어졌다면, 리첼은 모욕감을 느껴서 붉어졌다.

펠릭스에게 대놓고 무시당할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히 모든 여자들에게 수작을 걸었고, 지난번에도 내게도 다가왔었는데…. 대체 왜?’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고 동시에 자존심도 상했다.

분한 마음이 들자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리첼의 눈은 다시 펠릭스를 쫓기 시작했다. 먼저 말이라도 걸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를 쫓아 이곳저곳 두리번거리자 밖으로 나가려는지 펠릭스의 뒷모습이 보였다.

리첼은 놓칠까 봐 허겁지겁 그가 사라지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오니, 펠릭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첼은 다시 두리번거렸다.

“!”

그 순간.

달빛만이 은은히 비추는 조용하고 적막한 공간 속에서 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남자와 여자의 신음소리가 동시에 귓가에 들려왔다.

‘설마?’

리첼은 건물 옆, 소리가 들리는 수풀 속으로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갔다.

슬며시 나뭇가지를 거둔 후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자, 펠릭스가 방금 전 이야기를 나눈 여인과 함께 있었다.

마치 경계선이 그어진 것처럼 두 사람의 공간만 농염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리첼은 눈에 보이는 참담한 광경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수치심을 느낀 몸이 파르르 떨렸다. 부끄러운 나머지 울고 싶어졌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리첼은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어느새 뒤따라 나온 프랭크가 다가왔다.

“이런 곳에 있다간 더 안 좋은 일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얼른 돌아가는 것이 어떨지요?”

두 사람을 봤는지 저택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얼굴이 붉어진 채 몸이 굳은 리첼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다른 사람들의 애정행각을 목격하는 데 익숙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괜찮으십니까?”

대답이 없자 프랭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리첼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가엔 눈물이 핑 돌았다.

차인 건 아니었지만 차인 것만 같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상했다. 그리고 비참했다.

‘나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날이 갈수록 피부 결도 고와지고 어딘가 요염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한 엘시아가 부러웠다. 첫사랑과 마음이 통한 그녀가 부러웠고, 점점 아름다워지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래서 리첼은 그들과 비슷한 감정이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비록 사랑하는 이가 아닐지라도 궁합이라도 맞는 사람에게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냥 궁금했다. 그뿐이었는데….

인생이 제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자 리첼은 모든 행운을 엘시아에게 빼앗긴 것만 같았다.

목걸이만 해도 그랬다. 엘시아는 좋아하는 사람과 궁합이 맞더니, 리첼은 마음에 들지 않은 남자와 궁합이 맞았다.

찝찝하긴 했어도 이야기라도 나눠 볼까 용기를 냈건만 그 남자에게 비참한 상처만 받고 말았다.

왜 나만! 왜 신께서 나한테만 이렇게 모질게 대하시는 거야. 엘시아는? 왜 모든 행운이 엘시아에게 가냐고!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리첼은 엘시아가 점점 미워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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