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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나랑 맞춰 볼래요?-5화 (5/110)
  • 01.

    리첼은 몇 날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동안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그녀의 정신은 저 멀리 어딘가에 계속 한 곳에만 머물고 있었다.

    멀리 떠난 정신을 돌아오게 한 건 아드리안의 서신 한 통이었다.

    <엘시아가 나를 찾아오길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야.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지만, 아직 만남의 시간이 짧으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아. 다만 엘시아가 그날 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진 않을 거야. 우리에겐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깐.>

    아드리안과 엘시아는 정사를 나누기로 약속했고 아드리안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엘시아가 진짜로 그날 아드리안을 만나러 갈까?’

    리첼은 엘시아가 어떤 선택을 할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날이 되자 그녀는 아드리안이 지내고 있는 별장에 가보기로 했다.

    아마 안 올 확률이 높겠지?

    조신한 엘시아는 아드리안을 만나러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마차로 향했다. 어쩐지 평소보다 발걸음이 무겁다고 느껴졌다.

    * * *

    “대체 뭐 하시려고 그러나요?”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비아는 굳이 따라와 꼬치꼬치 캐물었다.

    갑자기 나무들만 무성한 엉뚱한 곳에 마차를 세우니 그녀가 이상하게 여길 만했지만 리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려.”

    단지 명령만 했다.

    별장과 거리가 약간 떨어진 곳에 숲이 있었고, 큰 나무들이 있었다. 커튼만 치지 않는다면 별장 안이 언뜻 보일 만한 거리였다.

    남을 엿보는 건 잘못되었지만 리첼은 그냥 엘시아가 왔는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나중에 물어봐도 되겠지만, 언제가 될지 몰랐다.

    일단 엘시아는 리첼이 아드리안과 아는 사이인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그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먼저 아는 척하며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드리안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지도 않았다. 더 비참할 것만 같았다.

    엘시아의 입에서 먼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참을성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 리첼은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잘 잡고 있어!”

    가져온 사다리를 길게 펴서 나무에 가까이 댔고 마부와 비아가 사다리가 흔들리지 않게 밑에서 단단히 잡았다.

    “갑자기 나무를 타다니 위험해요! 이럴 거면 기사님을 데리고 오시지 그러셨어요.”

    비아가 말렸지만 리첼은 그 손길을 뿌리친 후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올라갔다.

    입고 있는 드레스가 더러워져도 괜찮았다. 그냥 궁금하기도 했고,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 둘이 같이 있는지 확인만 하는 거야.’

    터질 듯한 심장을 억누르곤 멀리서 보이는 별장의 안을 바라보았다.

    “?”

    두 사람의 인영이 보이긴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반쯤 감은 눈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썼다.

    “!”

    별장 안이 좀 더 자세히 보이자 리첼은 너무 놀라 사다리를 손에 서 놓아버렸고, 그 순간 나무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엘시아가 왔는지만 확인해 보려 했건만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도 않은 채 서로의 몸을 얽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포효하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고 그는 거침없이 엘시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건 엘시아가 그 작은 몸으로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리첼은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너무 충격적이라 사다리에 닿고 있는 손과 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머리가 지금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절대 봐선 안 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만 같았다.

    아드리안에게 농담으로 엘시아의 마음을 빼앗고 싶으면 몸정부터 붙이라 했는데 이렇게 빨리 그들의 몸을 합칠 줄은 몰랐다.

    ‘조신했던 엘시아가?’

    리첼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그렇게도 몸이 이끌렸던 걸까?’ 하는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그녀는 겨우겨우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옷이 구겨지고 더러워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냥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괜찮으세요?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어디 아프신 것 같은데요?”

    비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 얼른 돌아가자.”

    리첼은 벌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며 대답했고, 이후 그들은 레녹스가로 돌아왔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조금 전 목격한 충격적인 그 잔상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착한 후에도 혼이 빠진 것처럼 그냥 터덜터덜 걷던 리첼은 그대로 비아에게 방까지 끌려갔다.

    방에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정신은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궁합이 잘 맞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나도 변할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엘시아가 느꼈던 감정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라버니가 한 여자에게 정착할 만큼, 그리고 몸가짐이 조심스러웠던 엘시아가 바로 빠져들 만큼, 그들에겐 마법 같은 이끌림이라도 있는 걸까?’

    남들이 다 아는 걸 리첼 자신만 모르는 것만 같았다. 생각할수록 속이 답답했다.

    “그래. 일단 그를 만나봐야겠어.”

    이 갑갑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선 펠릭스, 그가 필요했다. 그래서 리첼은 그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리첼은 혼자서 비밀 클럽을 찾아갔다. 펠릭스와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해선 역시 그곳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 남자를 만나면 운명처럼 끌릴까? 나도 엘시아가 느낀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가는 내내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도착해서 보니 펠릭스는 이번에도 역시나 어떤 여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은 그와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기에 리첼은 일단 멀리서 그를 지켜보기로 했다. 오늘 그녀의 파트너는 기사 프랭크였다.

    “괜찮으세요? 질이 좋은 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

    리첼의 시선이 펠릭스만을 향한 것을 눈치챈 기사 프랭크가 물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냐.”

    그가 보기에도 가벼워 보였는지 프랭크는 계속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나.’

    프랭크의 눈빛을 보자 갑자기 펠릭스와의 만남이 망설여졌다.

    “…몸이 잘 맞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잠깐의 망설임 끝에 리첼이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에 따라 이후 행동이 달라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프랭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흠흠. 그… 그런 걸… 지금 왜 물어보시는지요.”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결혼했으니 알 텐데? 혹시 부인과 안 맞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오늘 이곳에 이상한 목적으로 온 건… 아니죠? 보호 차원에서 따라왔지만 전….”

    프랭크가 당황하며 말을 돌렸고, 리첼은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하지 않은 채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하러 온 건 아니지만 그 대상을 찾으러 온 건 맞으니깐 말이다.

    “왜 말을 돌려? 부인과 잘 맞냐고 물었을 텐데?”

    원하는 말이 들려오지 않자 리첼이 재차 물었다.

    “그… 그건.”

    프랭크는 당황스러운 눈빛만 보일 뿐, 원하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아! 답답해. 그냥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게 낫겠어.”

    “잠… 잠깐….”

    프랭크가 붙잡았지만 리첼은 그의 손을 뿌리쳤고, 빠른 걸음으로 펠릭스에게 다가갔다. 그와 일단 말이라도 섞어본 다음에 결정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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