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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26화 (226/228)
  • 던전 안의 살림꾼 외전 12화

    최근 희원은 강목현을 통해 중장비 농기구들을 구입했다.

    커다란 크기 때문에 어찌하나, 했는데 생각 외로 쉽게 해결됐다.

    입구 문제는 큰 문을 상상하여 여니 해결되었다.

    그리고 잠시 ‘홈 스위트 홈’ 구조를 바꿔 중장비를 곧바로 유리 온실로, 유리 온실에서 쌍둥이 던전으로 옮겼다.

    약간의 수고로움과 검은 달팽이 반휘의 지독한 욕설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혼자 하는 것보다 백배는 빠르게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땅도 훨씬 넓게 쓸 수 있고요. 이번 소출은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희원이 농사일로 탄탄해진 가슴을 탁탁 쳤다.

    요즈음 희원은 농작물 대량 재배에 부쩍 재미를 붙였다.

    덕분에 청룡에선 희원의 농작물 전담 부서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청룡은 요즘 특수 식품 사업에까지 손을 뻗으며 기세를 높여 가는 중이다.

    공간이 완전히 안정화된 이후, 4년이 지났다.

    현재 전 세계 던전의 5할 가까이가 비활성화된 상태고, 이 속도대로라면 아마 5년 이내에는 모든 던전을 비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득이 있으면 무엇인가 잃는 편도 있는 법.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 건 좋았으나, 던전 토벌로 수익을 올리던 수많은 길드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수많은 길드가 사라졌다. 하지만 시대에 흐름에 올라타 영리하게 변화를 꾀한 축도 있었다.

    청룡도 그 축에 끼었다. 각성자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세상에 융화되었다.

    희원의 특수 작물 유통도 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덕분에 희원은 숨 쉴 때마다 통장에 돈이 쌓여 가고 있었다.

    ‘이렇게 돈이 많은데 일에 미쳐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게 아깝네…….’

    한숨을 폭 내쉴 때였다. 희원이 중대 발표를 했다.

    “너희 결혼하면 나는 이제 정말 따로 나가 살려고.”

    “뭐어? 어디로?”

    “쌍둥이 던전에 있는 홈 스위트 홈으로 갈 생각이야.”

    “뭐야, 지금도 일주일에 절반은 거기서 보내잖아.”

    희나는 핀잔하며 오빠를 흘겼다.

    희원은 툭하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반휘의 홈 스위트 홈에서 시간을 보냈다.

    ‘온실 문만 열면 곧바로 집에 돌아올 수 있는데, 굳이 거기서 지낼 건 뭐람?’

    한편, 희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예전엔 절반이었다면, 이젠 일주일 전부를 거기서 보내겠다는 거지.”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습니까?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진현도 희원의 결정을 만류했다.

    이에 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희, 설마 결혼해서도 지금처럼 살 건 아니지?”

    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왜?”

    지금은 강진현과 희원이 1층에서, 집주인인 희나가 2층에서 지냈다.

    물론 한집에서 사는 만큼 별 의미 없는 구분이긴 했지만, 정해진 생활 반경은 그랬다.

    “야! 결혼하면 너희 둘이 같이 살아야지! 결혼하면 너흰 부부라고, 부부!”

    희원이 땅땅 못 박았다.

    “나는 신혼부부 사이에 낀 방해꾼 되고 싶은 생각 별로 없다.”

    “희원 형님은 방해꾼이 아닙니다.”

    “알아, 알아. 그래도 동생 내외랑 같이 사는 건 내가 좀 그렇다, 이 말이지. 그냥…… 너희 합가하면서 난 옆집으로 이사 가게 된 거라고 생각해.”

    이때다 싶었는지 희원이 덧붙였다.

    “참고로 너울이는 바깥에 집 얻어 줬다. 너희 결혼하면 독립하기로 했어.”

    “뭐? 누구 마음대로?”

    “걔는 인간 세상이 재밌다고 바깥에 나가서 정착할 거란다.”

    “아직 인간 세상에 익숙하지 않은데?”

    “익숙하지 않기는. 벌써 3년이나 배웠잖아. 이제 사고도 잘 안 쳐.”

    “하지만 아직 어린걸!”

    “걔 속알맹이엔 몇천 년도 더 묵은 악마가 들어 있다는 거, 잊진 않았지?”

    “알긴 아는데…….”

    희나는 섭섭했다.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는지 희원이 허허 웃었다.

    “집 나가도 우린 가족이야. 한솥밥 먹었던 게 사라지진 않는다고.”

    맞는 말이다. 희원이, 너울이 집을 나가도 희나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알겠지? 아무튼 당장 집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의 준비는 해 두라고.”

    “으응.”

    희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상견례를 빙자한 가족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계속되었다.

    * * *

    “야! 너희 결혼한다며?”

    우민아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회사 복도였으므로, 사람들이 듣고 수군거렸다.

    “뭐야, 아직 둘이 결혼 안 했어?”

    “나는 결혼했다에 10만 원 걸었는데, 젠장.”

    “지난번에 인사팀장님도 안 했다고 말했잖아.”

    “나는 그게 뻥인 줄 알았다고!”

    ……면전에서 듣기엔 좀 민망한 얘기들이었다.

    희나는 그 말들을 못 들은 척 고개를 스슥 돌렸다. 그리고 킬킬 웃는 우민아를 사무실로 끌고 갔다.

    “크흠. 결혼할 예정인 건 맞는데요, 좀 조용히 얘기해 주실 순 없었나요……?”

    의자를 빼 앉으며 입술을 내밀자 우민아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왜? 비밀 연애도 아니고. 거기다 다들 너희 이미 결혼한 줄 알고 있었다고! 잘못된 사실을 정정해 줬을 뿐이야.”

    아주 당당했다.

    “그나저나 언론엔 어떻게 알릴 거야?”

    우민아가 대뜸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결혼 사실을 알리는 친필 편지라도 써서 올려야 할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우민아는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다.

    “너는 강진현 걔가 연예인, 아이돌인 줄 아니?”

    “팬클럽 보면 거의 그 수준이던데요. 생일마다 전광판 걸리는 규모 봤어요? 그거 이길 만한 아이디어 짜는 게 얼마나 힘든지…….”

    희나는 남모를 고충을 털어놓으며 턱을 괬다. 우민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별생각 없을걸. 강진현 걔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몇 년이나 끼고 다녔는데…….”

    “음.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희나는 강진현이 공식 석상에 반지를 끼고 갔을 때 벌어졌던 소동을 떠올렸다.

    ‘기자들도 진짜 많이 붙고, 인터넷에서도 많이 시끄러웠지.’

    하지만 청룡의 깔끔한 대응, 강진현의 노코멘트에 소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여기까지 떠올린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지난번 열애설 났을 때랑 비슷하게 대처하면 될 것 같네요.”

    희나도, 강진현도 과한 관심은 사절이었다. 그러니 ‘상대는 일반인 여성으로 좋은 인연으로 맺어져 앞으로 함께하려고 한다’ 정도의 언론 보도가 괜찮을 듯했다.

    “진현 씨가 자필 편지를 써야 하나 고민한 것 외에는 다 정했어요. 결혼식은 아는 사람들만 불러서 할 거고, 그 외에는 외부에 알리지 않는 걸로요.”

    “온 길드에 소문날 정도로 요란하게 연애한 것치고는 비밀스럽게 구네?”

    “모르는 사람한테까지 알려서 슈퍼스타 되고 싶을 정도의 관심 종자는 아니거든요!”

    “크하하, 그래?”

    우민아는 무엇이 그리 웃긴지 희나의 등을 팍팍 치며 신나게 웃었다.

    그리고 한참을 떠들다 자리를 뜨기 전, 은근히 귀띔했다.

    “뭐 하나 도착하면 내가 보낸 걸로 알아 둬. 결혼 선물이야.”

    “어? 결혼 선물이요?”

    희나가 고맙다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우민아는 휙 하고 사라졌다.

    “그럼, 잘 써라!”

    대체 뭘 잘 쓰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 *

    강진현이 예쁘게 포장한 상자 하나를 희나에게 건넸다.

    “집 앞에 있었습니다. 택배는 아닌데, 수신인이 희나 씨라고 쓰여 있어서요.”

    희나는 고개를 퍼뜩 들어 상자를 보았다. 상앗빛이 도는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세련된 자주색 리본. 굉장히 공들여 포장한 듯했다.

    “아. 민아 언니가 보낸 건가 보다.”

    “우민아 헌터 말입니까?”

    “네. 결혼 축하 선물 보냈다고 했거든요. 이게 그건가 봐요.”

    상자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소파 옆자리를 팡팡 쳤다.

    “진현 씨도 이리 와요. 언니가 우리한테 준 선물이니까 같이 구경해요.”

    희나와 함께하는 일인데, 강진현이 거절할 리 없었다. 그는 흔쾌히 답했다.

    “좋습니다.”

    희나는 예쁘게 묶은 리본과 포장지를 풀어냈다.

    ‘뭘까? 크기나 무게를 봐선 무기 같은 건 아닌 듯한데.’

    희나는 예전에 우민아가 집들이 선물로 살벌한 식칼을 주었던 걸 기억했다.

    하지만 이건 그보다 좀 가벼웠다.

    ‘액세서리이려나? 아니면 인테리어 용품?’

    잔뜩 궁금해서 상자 뚜껑을 벌컥 열었다.

    “와!”

    희나는 감탄하며 상자 내용물을 구경했다. 짙은 남색의 커플 파자마였다.

    “예쁘네요! 엄청 보들보들하고요!”

    “잠옷을 희나 씨와 함께 맞추어 입다니……. 이게 바로 부부…….”

    강진현은 묘하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또 남모를 포인트에 꽂힌 듯했다.

    희나는 부스럭거리며 잠옷을 펼쳐 강진현의 몸에 대보았다.

    ‘역시, 잘 어울려.’

    희나는 저 얼굴이라면 뭐든 안 어울리는 게 이상하다는 팔불출적 사고를 하며 우민아의 선물을 정리했다.

    “이런 건 생각도 못 해 봤는데, 되게 기분이 좋네요. 언니가 참 사려 깊……”

    사려 깊다, 는 말을 채 끝내기 전이었다. 잠옷 사이에서 무엇인가 툭 하고 떨어졌다. 작은 천 뭉치였다.

    “이게 뭐지?”

    희나는 그것을 들어 살폈다. 그러자 이내 시스템 상태 창이 떴다. 던전 부산물로 만든 아이템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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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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