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219화 (21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외전 5화

    잘생긴 얼굴과 우월한 신체 조건이 있다면 어울리지 않을 옷은 없다.

    그런고로, 셰프복을 입은 강진현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근사했다.

    정말이지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아니, 이게 아니라!’

    희나는 고개를 붕붕 도리질했다. 또 강진현의 미모에 홀려 현실을 잊어버릴 뻔했다.

    양 뺨을 챱챱 때리고 강진현에게 물었다.

    “진현 씨,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레스토랑의 낮은 조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강진현의 귓바퀴가 붉게 달아올랐다.

    “오늘은 제가 희나 씨만의 셰프입니다.”

    “예?”

    “그러니까 희나 씨가 드실 음식을 책임질 예정입니다.”

    “예에?”

    희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너무 놀라시는 것 아닙니까?”

    강진현은 작게 웃으며 붉어진 귓가를 가볍게 문지른 후, 희나 앞에 놓인 플레이트를 손짓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첫 번째 요리입니다.”

    강진현은 유려한 말솜씨로 오늘의 전식을 소개했다. 진짜 셰프 같았다. 그러면서 말미에 덧붙였다.

    “제시간에 맞추어 내왔어야 했는데, 마지막에 불의의 사고가 벌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더 늦어진다는 연락도 못 드렸네요. 불찰입니다. 미안합니다.”

    그쯤 되어서야 희나는 헤, 벌려 두었던 입을 움직일 수 있었다.

    “진짜요? 이걸 진현 씨가 만들었다고요?”

    희나는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바닷가재로 만든 샐러드로 보였으며, 굉장히 섬세하게 플레이팅되어 있었다.

    ‘엄청나게 근사하잖아!’

    라면 정도나 간신히 끓이는 실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들어 낸 걸까?

    희나는 포크를 들어 바닷가재 샐러드를 입안에 넣었다. 강진현은 몹시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쥔 채 희나의 입을 바라보았다.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킨 희나가 가장 먼저 내뱉은 건 감탄 어린 환호였다.

    “……와! 정말 맛있어요.”

    모양만 근사한 게 아니었다. 샐러드의 맛도 대단했다. 희나가 좋아하는 맛만 한데 모아 둔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을 전하자, 강진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다행입니다. 이곳 메뉴 중에서 희나 씨의 입맛에 맞았던 재료와 맛을 중심으로 구성을 짰습니다.”

    “아, 그래서 툭하면 여기로 데이트 온 거구나…….”

    그제야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의심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가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어.’

    얼떨떨한 표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강진현이 부연 설명을 했다.

    “총괄 셰프가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식칼이라고는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사람을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았죠.”

    강진현과 반갑게 인사하던 셰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형 단골을 잡은 가게 주인의 함박웃음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임시 제자를 맞이하는 스승의 인자한 웃음이었다니.

    ‘죄송해요, 셰프님.’

    요사스런 손맛을 가졌다며 속으로 몇 번이나 욕한 게 미안해졌다.

    ‘식칼 한 번 제대로 쥐어 본 적 없는 S급 헌터를 가르치느라 고생이 많으셨겠구나.’

    더불어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진현 씨가 요즘 계속 늦게 들어오고, 일 없는데 일 있는 척 바쁜 척했던 건 다 이거 때문이었군요?”

    강진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인사팀장 강목현까지 연루된 완전 범죄가 발각되었다는 것이 내심 충격인 듯했다.

    “……일 없는데 일 있는 척한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인사팀 가서 일정 알아봤거든요. 텅 비어 있는 게, 제가 월초에 받았던 일정표랑은 완전히 다르던데요? 인사팀장님이 손 좀 써 주셨나 봐요?”

    강진현이 끙, 신음했다.

    “눈치채셨을 줄이야……. 많이 당황하셨겠군요.”

    “당황하고말고요! 아니, 사실 진현 씨한테 화까지 났다고 하면 많이 놀랄 거예요?”

    “예에?”

    강진현의 낯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나? 희나 씨를 좀 더 기쁘게 해 드리려고 그랬던 건데…… 완전히 잘못 짚었군. 이를 어쩌지? 나 때문에 희나 씨가…….”

    중얼중얼, 이러다 제자리에 털썩 무릎까지 꿇을 기세였다. 희나는 헐레벌떡 연인을 달랬다.

    “아니, 아니, 아니. 진정해요. 내가 상황을 완전히 오해해서 그래요.”

    “오해라면?”

    “진현 씨가 내 음식에 좀 질렸나 싶었거든요.”

    이번엔 강진현이 놀랄 차례였다.

    “어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게 된 겁니까!”

    어찌나 당황했던지, 그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커다랬다.

    “희나 씨의 음식에 질리다뇨!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억울합니다!”

    희나는 입술을 불퉁 내밀었다.

    “하지만 요즘 계속 내가 차려 준 밥도 잘 안 먹으려고 하고, 외식만 했잖아요. 르 블랑에만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면서…….”

    그 몰래 뒤를 밟아 행선지를 확인했다는 사실은 쏙 숨기기로 했다.

    희나의 대답에 강진현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그런 식으로 보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갑갑해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얼굴 마주칠 시간도 없고.”

    애매한 기밀 작전 때문에 오해로 사이가 벌어질 뻔했다고 생각하자 눈앞이 아찔했다.

    강진현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제가 크게 잘못했군요. 앞으로는 무엇이든 희나 씨에게 보고하고 일을 벌여야겠습니다.”

    “아니, 꼭 그럴 필요는…….”

    희나는 슬쩍 강진현을 만류했다. 오해는 오해고, 솔직히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은 건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강진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해로 희나 씨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기다 희나 씨 음식에 질리다니……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질렸을지도 모른다고 오해받은 건 희나의 음식인데, 그는 자기가 모욕받은 것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엄청난 순정이었다.

    강진현은 희나에게 차근차근 정황을 설명했다.

    희나의 장미꽃차를 마시고 미각을 둔화시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음식 맛을 볼 수 있게 되니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 줄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동안 제가 희나 씨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건 조리가 간단한 라면 정도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번 기회에 좀 더 그럴싸한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무려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배웠다고요?”

    희나는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요리 생초보가 내리기엔 대단한 결단이었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결심이었다.

    ‘장미로 만든 차를 무한정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의 잃어버렸던 권리를 만끽하는 데 쓰기도 아까울 텐데, 그 좋은 기회를 희나를 위해 사용했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도 기뻤다.

    흐물흐물 풀린 희나의 얼굴에 강진현이 은근히 자기 자랑을 내비쳤다.

    “여기 셰프 말로는 제가 영 재능이 없는 편은 아니라는군요.”

    “그럼요. 진현 씨가 어떤 사람인데.”

    “그렇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살림꾼의 연인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희나는 파닥파닥 손부채질을 했다.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기 위해서였다.

    “……진현 씨, 낯간지러운 소리 하는 데는 선수라니까.”

    이내 강진현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고, 연이어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희나는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눈으로 보기에도, 혀로 맛보기도 즐거운 음식들이었다.

    칼질부터 시작해 플레이팅까지 모든 순간 강진현의 손길이 닿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진현 씨가 내 음식을 먹을 때 이런 기분일까?’

    한 번도 먹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건 의외로 굉장히 설레는 행위였다.

    희나는 부른 배를 통통 두들겼다. 어느새 본식이 다 끝나고 후식이 나올 차례였다.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내던 참이었다.

    강진현이 후식 접시를 들고 걸어 나왔다. 어찌나 조심스럽게 굴던지, 디저트가 설탕 공예라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 강진현은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단정한 셔츠와 바지를 입은 채였다.

    ‘하긴. 계속 셰프복 입고 데이트할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그것도 좀 색달라서 멋지긴 했지만.’

    속으로 키득키득 웃는 사이 디저트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희나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오밀조밀, 귀여운 디저트였다.

    알록달록한 과일 퓌레와 함께 초콜릿으로 만든 자그마한 구가 놓여 있었다. 초콜릿 공은 탁구공보다 조금 더 큰 크기로, 금가루가 작게 뿌려져 있었다.

    “와. 이건 뭐예요?”

    이번에도 강진현이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밀입니다. 어떤 디저트인지는 희나 씨가 직접 깨서 확인해 보십시오.”

    장난스러운 어조에 호기심이 솟았다.

    “초콜릿 공 안에 뭔가 근사한 걸 숨겨 놨나 봐요?”

    “그렇습니다.”

    대답이 제법 자신만만했다.

    “대체 뭐길래 진현 씨가 이렇게 자랑스러워할까……?”

    희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디저트 스푼을 들었다. 스푼 옆 날로 구를 톡톡, 두들기자 초콜릿에 쩌적 금이 갔다.

    파사삭.

    이내 작은 초콜릿 공이 부서졌고, 강진현이 꽁꽁 감추어 놓은 디저트가 나타났다.

    그건, 동그란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과…….

    “……반지?”

    던전 안의 살림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