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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217화 (21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외전 3화

    얼마 후, 오색이와 희나는 마주 보고 앉았다.

    「허심탄회!」

    오색이는 안테나를 뻣뻣이 세우곤 자기에게 전부 털어놓으라며 큰소리를 빵빵 쳤다.

    「누가 봐도 집주인 잘못 없을 무(無)」

    완전히 희나에게 편파적인 판정을 내려 줄 것이 뻔한 모습에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아니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일단 잘 들어 봐…….”

    요즘 희나의 고민은 아래와 같았다.

    “진현 씨 요즘 바쁜 거, 너도 잘 알지?”

    「뭐어? 바빠서 소홀?」

    오색이의 목소리…… 아니, 텍스트가 계단식으로 높아졌다. 희나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바빠서 절대 소홀해지지 않았어. 시간 나는 대로 데이트도 꼬박꼬박 하는걸. 진현 씨가 얼마나 다정한데!”

    「…….」

    “아니, 근데 말이지. 요즘 데이트 코스가 계속 똑같아.”

    오색이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안테나를 휘적거렸다.

    「그글 으쯔르그…….」

    하지만 희나는 오색이의 시큰둥한 반응을 무시하며 제 할 말을 계속했다.

    “요즘 계속 같은 식당만 간다? 장미차 마신 후로 우리 최대한 많은 맛집에 다녀 보기로 했거든. 그런데 벌써 네 번이나 같은 레스토랑에 들렀어. 장미차가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넋두리에 오색이가 동그란 머리통을 갸우뚱했다.

    「?」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한 모양이었다.

    「결론 → ! 간단 !」

    “생각해 보면 결론은 간단하다고? 뭔데?”

    「맛이 좋음 → 자주 가고 싶음 → 단골이 됨」

    「ㅇㅋ?」

    단박에 이해할 만한 아주 간결한 설명이었다.

    이에 희나는 잠시 충격을 받은 듯 입을 헤벌렸다.

    「집주인? 집주인? 응답하라! 응답하라!」

    희나는 반쯤 넋을 놓은 채 중얼거렸다.

    “……거기 음식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구나.”

    그러고 보니 요즘 강진현은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서 식사도 잘 안 했다.

    도시락을 싸 줄까요, 물어봐도 밖에서 알아서 먹겠다며 휙휙 나가기 일쑤였다.

    그저 아쉬워하며 넘겼던 일인데, 오색이의 지적에 맞추어 생각해 보니 상황이 이해가 갔다.

    ‘거기 음식을 먹으러 갔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서운한 건가?’

    혹은 배신감일까? 패배감, 혹은 실망감?

    이것들이 아주 조금씩 섞인…… 그러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주 오묘한 감상이었다.

    어쨌든 썩 좋지는 않은 기분이라는 건 확실했다.

    희나는 금세 기분이 가라앉은 까닭을 알아냈다.

    ‘언제나 진현 씨에게 내 음식이 가장 특별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나 봐.’

    사실 정상적인 미각을 가졌다면 강진현의 식성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무조건 희나가 만든 음식’이면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희나는 금세 풀이 죽었다.

    ‘나 은근 위선적이구나.’

    어깨가 아래로 한껏 처졌다.

    그와 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고 기뻐할 수 있었던 건, 희나가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 거다.

    ……라고 희나는 우울해하다, 고개를 팩 들었다.

    ‘아니, 그래도! 서운할 수도 있지!’

    마치 한눈팔고 있는 배우자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는 내가 최고라고, 내가 제일이라고 했으면서…… 다른 사람 음식에 홀려?’

    희나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언제는 밥 한 끼에 하늘의 별도 따다 줄 것처럼 굴더니!

    희나는 묘한 배신감에 잔뜩 시달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그래도 이거 가지고 삐치는 건 좀…… 그래.”

    희나의 마음속에서는 조금 서운할 만하긴 했지만, 이건 화낼 만한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었다. 강진현이 자신의 취향을 되찾은 거니까.

    “그래. 마인드 컨트롤을 하자. ‘나는 좀생이가 아니다. 내 마음은 아주 넓고 광활하다…….’”

    「집주인, 제정신?」

    「RU OK?」

    오색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혼자서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난리를 피우다 이제 영문 모를 말을 중얼거리기까지 하는 희나가 영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희나는 ‘그 레스토랑’에 대한 질투심을 잠재우느라, 오색이의 말을 눈여겨볼 겨를이 없었다.

    「♨비상♨」

    「♨비상♨」

    「♨집주인 오류♨」

    「♨집주인 오류♨」

    오색이는 콧김을 씩씩 뿜는 희나 옆에서 한참 동안 안절부절못하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 * *

    “아니야. 내가 과잉 해석했을 수도 있어!”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며칠 전, 강진현의 맛집 외도(?) 의심 사건으로 굉장히 기분이 들쭉날쭉했더랬다.

    ‘별거 아닌 일인데 너무 휘둘리지 말자.’와 ‘잘된 거지! 다행이야!’와 ‘아니 그래도 이건, 아악……!’ 이 세 가지 생각 사이에서 풍랑 앞 돛단배처럼 휘둘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며칠 지나서 마음을 안정한 후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몇 가지 정황만으로 넘겨짚어 과잉 해석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그래. 진현 씨가 그 레스토랑을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거기 음식을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잖아?”

    물론 매번 다른 메뉴를 시키고 희나와 무엇이 가장 맛있었는지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그 일대 지역이나 레스토랑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지.”

    그래, 그렇군.

    희나는 스스로의 냉철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기다 진현 씨의 외식이 그 레스토랑과 연관 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단 한 톨도 없어!’

    모두 심증일 뿐이었다.

    즉, 사실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란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희나는 강진현을 미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희나가 S급 살림꾼이라 해도, 육체 능력이 극에 달한 S급 헌터의 기감을 피해 가기는 어려웠다.

    그런고로, 희나는 치트를 사용했다.

    “정말로 이거 해 주면 디즈니랜드 데려가 주는 거다? 거기, 미국에 있는 큰 데로?”

    집에서 뒹굴대며 텔레비전 보는 전설급 보스 몬스터를 동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꼭 데려가 줄 테니까, 기척 좀 잘 지워 줘. 들키면 안 데려갈 거야.”

    “지금 쥐꼬리만큼밖에 안 남은 마력 쥐어 짜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 나 얼굴 창백해진 거 안 보여?”

    “고마워. 우리 너울이 착하다.”

    “흥, 내가 이런 칭찬을 좋아할 줄 알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사실이다. 더 해 줘.”

    “그래, 그래. 대단한 우리 너울이.”

    “엣헴.”

    희나는 너울을 어르고 달래며 강진현을 따라 움직였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강진현은 허공을 휙휙 뛰어가는 대신,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움직였다. 덕분에 미행하기 쉬웠다.

    “아저씨, 저기 저 앞에 가는 택시 따라가 주세요. 눈에 안 띄게, 몰래요.”

    택시 기사는 한껏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했다. 내심 굉장히 신나 보였다.

    “그런데 손님, 앞에 누가 탔는지 물어봐도 돼요?”

    기사의 은근한 물음에 희나는 입을 열었다.

    “남자 친구가 한눈파는 것 같아서…… 확인하러 가요.”

    “저런! 아주 썩을 놈이구먼!”

    희나가 말을 멋대로 생략한 탓에, 강진현은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 버렸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제가 괜히 헛다리 짚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더더욱 들키지 말아야겠군요!”

    택시 기사는 잘못된 착각을 한 채, 눈에 불을 켜고 강진현이 탄 차를 미행했다.

    20여 분 정도 차를 타고 갔을까? 강진현이 탄 차가 멈췄다.

    희나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정차한 장소가 익숙한 동네였던 탓이다.

    ‘여긴 레스토랑이 있는 곳인데…….’

    희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지폐를 한 움큼 잡아 기사에게 넘긴 후, 택시에서 내렸다.

    ‘아니야. 그냥 이 근처에 볼일이 있을 수도 있어. 여긴 예쁜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은 곳이잖아. 잡지 인터뷰가 잡혀 있을 수도 있지.’

    희나는 이번 달 강진현의 스케줄표를 확인해 봐야겠다 생각하며 종종걸음 쳤다.

    하지만 5분 후, 한 조각 남은 희망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강진현은 익숙한 듯 골목을 이리저리 지나 작은 가게에 도착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몹시 세련되게 꾸민 건물이었다.

    희나는 저곳을 아주 잘 알았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강진현과 저곳에 갔으니까!

    저긴, 외국에서 유학하고, 유명 호텔에서 조리장을 맡았던 유명 셰프가 냈다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르 블랑’이었다.

    ‘내 의심이 사실이었다니!’

    희나는 마음속으로 손수건을 물어뜯었다. 가슴속에서 질투가 타올랐다!

    내 남자가, 다른 사람의 음식과 밀회한다!

    “야, 마법 뚫리겠다……. 눈빛 좀 어떻게 해 봐.”

    너울이 희나를 진정시키지 않았더라면, 레스토랑은 이글거리는 눈빛 때문에 불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후, 하, 후, 하.”

    희나가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사이, 레스토랑의 문이 열렸다.

    셰프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강진현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둘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레스토랑 안으로 사라졌다.

    희나는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저 남자가 진현 씨를 꼬여 냈구나!’

    어쩐지 음식 맛이 범상치 않더라니. 불여시 같은 손맛을 가진 셰프인 게 분명했다.

    “오. 이거 좀 재밌는데? 드라마에서 많이 봤어. ……근데 상대가 남잔데? 이게 바로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거야?”

    희나는 너울이의 이상한 추측을 단호하게 잘라 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

    “내 손맛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

    희나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오래오래 레스토랑을 노려보았다.

    ‘내 마음은 넓고 광활하다’라고 외쳤던 과거는 완전히 잊은 지 오래였다.

    던전 안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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