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204화
희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장기 토벌은 두 달 안에 마무리하는 게 정상이라는데…….”
얼굴은 걱정으로 잔뜩 수척해진 채였다.
온실에서 나온 희원이 희나를 일으켜 세웠다.
“진현이잖아. 별일 없을 거야. 신경 좀 가라앉혀.”
그러는 희원의 낯 또한 수심 가득했다. 희나가 어쩔 줄 모르니, 애써 의연한 척하는 것이었다.
한솥밥 먹던 가족이 벌써 2개월째 소식이 없는데, 속이 타지 않을 리가.
희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소식이라도 알고 싶은데.”
희나에게는 던전 어디든 통할 수 있는 ‘홈 스위트 홈’ 현관문이 있었다. 이를 통해 강진현이 진입한 SSS급 던전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던전 등급 빼고는 아는 게 없으니, 찾아갈 수가 없어!’
희나에게 필요한 건, 던전의 내부 조건이었다.
등급을 아는 것만으로는 해당 던전으로 향하는 문을 열 수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특정할 수 있어야 문을 열었을 때 그와 비슷하기라도 한 던전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다가 보고 싶어’ 하고 생각하면, 바다와 관련된 던전이 하나 나타나는 것처럼!
대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문을 열면 랜덤한 던전이 나왔다.
“안 되겠어. 불안해. 한 시간만 더 해 봐야겠어.”
“섬으로 돌아가 봐야지. 사람들이 찾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몇 시간은 안 찾을 거야. 우울하니까 낮잠 잘 거라고 이야기해 뒀거든.”
희나는 희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SSS급 던전을 특정해 찾아낼 수 없는 상황에서 희나가 선택한 방법은, ‘나올 때까지 열어 보기’였다.
정보상 원덕삼을 통해 던전 등급을 측정하는 데 쓰는 간단한 아이템도 구했다.
물론 말만 간단했지 그 가격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은 또 벌면 되는 일이었다. 희나는 그동안 모은 돈을 아이템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현관문을 연 희나는 작은 보석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도 아니네.”
흐린 노란색인 걸 보아, 이번에 나온 곳은 C급 정도 되는 던전이었다.
‘아마 SSS급 던전이면 색깔이 시뻘게지다 못해 과부하가 걸려 버릴지도 모릅니다. 요 아이템은 S급 던전까지만 커버할 수 있거든요.’
원덕삼은 이 아이템이 뭐든 이상 반응을 보이는 곳이 바로 SSS급 던전일 것이라고 말했다.
희나는 원덕삼의 설명을 되뇌며 열었던 문을 쾅, 닫았다.
“희나야…….”
희원은 그런 동생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누구라도 말려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건만, 희나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SSS급 던전 안으로 떠난 지 오래였다.
* * *
희나가 실의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세계수는 차곡차곡 성장했다.
자란 건 세계수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를 돌보던 희원도, 바둑이도 성장했다.
지지부진하게 오르지 않던 희원의 랭크가 A로 올랐다.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자라지 않던 바둑이도 한 뼘이나 더 컸다.
“우리 바둑이, 훤칠해진 것 좀 봐.”
희원의 칭찬에 바둑이는 봉오리를 수줍게 벌렸다. 꽃잎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다. 하지만 희원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이고, 예뻐라.”
희원은 바둑이를 쓰다듬으며 생닭 한 마리를 내놓았다.
“바둑아, 생식이 몸에 좋대.”
대체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이상한 건강 상식을 식물형 몬스터에게도 적용하려 하는 듯했다.
바둑이는 가리는 것 없는 착한 반려식물답게 희원이 내온 생닭을 한 마리 꿀꺽 삼켰다.
봉오리 안에서 아드득, 아드득,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역시 이 또한 희원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너도 요즘 고생이 많다. 세계수한테 비료 뿌리다 쓰러지겠어, 우리 바둑이.”
잎사귀 잎맥을 조물거리며 바둑이를 격려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둑이의 몸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윽, 눈부셔!”
빛이 완전히 잦아들고 나서야 희원은 바둑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아기가…… 많이 컸네?”
그렇지 않아도 2m쯤 되었던 키가 거의 두 배가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어림잡아 4m 정도는 되려나?’
커진 건 키뿐만이 아니었다. 줄기도 탄탄해졌고, 잎사귀도 훨씬 튼튼해졌다. 봉오리도 어지간한 동물은 꿀꺽 삼킬 수 있을 만큼 커다래졌다.
때맞추어 시스템 창이 바둑이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 광경을 구경하던 오색이도 기쁜 듯 안테나를 삐쭉삐쭉 흔들었다.
「최 종
진 화」
더불어 팝업이 우수수 떠올랐다.
바둑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 때 받았던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랭크 업했다.
“바둑아. 우리 둘 다 엄청나진 것 같다, 그치?”
희원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생식이 효과가 있긴 한가 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끊어 낸 건 시스템이었다.
문구에 희원은 벌컥 반발했다.
“뭐? 그동안 우리가 했던 건 뭔데?”
“그냥 훈련이 아니라 똥개 훈련이겠지!”
바둑이도 못내 억울한지 허공을 향해 위협적으로 으르르, 봉우리를 벌려 보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늘 그렇듯 뻔뻔했다.
……이러니 어쩌겠는가? 랭크 업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온실로 달려갈 수밖에.
* * *
손에 쥐고 있던 보석이 점점 뜨거워졌다. 희나의 심장이 두근, 뛰었다.
그리고 이내…….
아이템이 파사삭,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났다. 깜짝 놀랄 법도 한데, 희나는 놀라기는커녕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함쳤다.
“여기…… 여기야! 찾았어!”
흥분 섞인 외침에 온실에서 노가다를 뛰고 있던…… 아니, 세계수를 돌보던 희원이 뛰쳐나왔다.
“무, 무슨 일이야?”
“오빠! 찾았어!”
“뭐를?”
“내가 찾을 게 뭐가 있겠어? 던전! SSS급 던전 말이야!”
희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뻗어 문밖의 풍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누런 모래 먼지가 가득한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저기가 트리플 S급 던전이라고?”
희원은 조금 의외란 듯 현관에 다가가 바깥을 관찰했다.
하늘이 흐리고, 공기가 굉장히 좋지 않아 보인다는 걸 제외하면 별것 없어 보였다. 몬스터도 없었다. 바람 소리가 거센 것 외에는 아주 조용했다.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랬지만…….
“……조금 김빠지는데.”
희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SSS급 던전이면 좀 더 대단한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거든.”
엄청나게 춥거나, 엄청나게 덥거나, 아니면 말도 못 할 정도로 끔찍한 괴물이 우글우글하거나…… 어쨌든 뭔가 극한의 환경일 것이리라 생각했다.
희나의 생각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야. 이 정도면 던전 환경 때문에 힘들 일은 거의 없었겠어.”
그러면서 던전 밖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갔다.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를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을 좀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 희나를 향해 희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희나야, 네가 불안해해서 그동안 말을 안 했는데, 이제 어쩔 생각이야?”
“어…….”
“던전에 쟁쟁한 헌터들이 수천 명이나 들어갔고, 몇 달째 못 돌아오고 있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란 생각, 안 들어?”
“오빠 말은 잘 알아들었어.”
희나도 희원이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비전투계 각성자에 불과한 희나가 던전에 들어가 봤자,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희원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나도 진현이가 걱정돼. 민아 씨도 걱정되고. 하지만 우리 둘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일단 던전과 연결되는 통로를 알아냈으니, 외부에 능력을 밝혀서라도 사람들을 구출……”
사람들을 구출하려는 시도를 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비상! 비상!」
시뻘겋고 커다란 글씨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오색이였다.
「99.99% 99.99% 99.99% 99.99% 99.99% 99.99% 99.99% 99.99% 99.99% 99.99%」
「0.01% 0.01% 0.01% 0.01% 0.01% 0.01% 0.01% 0.01% 0.01% 0.01% 0.01%」
그와 동시에 오색이가 정신없이 영문 모를 숫자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오색아?”
의아해서 오색이를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빨리! 집으로! 들어와!」
경고 문구가 떠올랐고, 몸이 붕 떠올랐다. 전신의 솜털이 모두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희나는 섬뜩한 깨달음을 얻었다.
‘뚫렸구나.’
99.99%의 확률을 뚫고, 안전 구역의 보호가 깨졌다.
“희나야!”
희원이 뛰쳐나와 희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희나는 이미 너무 높은 곳에 있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오……!”
오빠, 하는 말을 채 끝낼 틈조차 없었다.
허공에 떠오른 희나의 몸이 혼탁한 보랏빛 기운에 휩싸여 사라졌다.
“희나, 희나야……?”
희원은 황망한 낯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