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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9화 (199/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9화

    강진현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태평양에 있는 SSS급 던전이 3개월 후에 열릴 예정이다. 그래서 던전 토벌 멤버로 나서게 되었다……라는 어마어마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희나의 낯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트, 트, 트리플 S 던전이라고요? 엄청나게 위험한 거잖아요!”

    “괜찮습니다. 각 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헌터들을 모아 국가 연합으로 토벌대를 이룰 겁니다.”

    “하지만 S급 던전도 쉽지 않은데 SSS급 던전 초행이라니요!”

    던전 몬스터의 종류도, 속성도, 환경도 몰랐다.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 강진현이 걸어 들어간다니!

    ‘동료 되는 사람들이 아무리 유능하면 뭐 해? 삐끗하면…….’

    삐끗하면, 개죽음당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희나도 알았다. 위험한 던전이기에 가장 뛰어난 헌터인 강진현이 가야 한다는 걸.

    ‘하지만……! S급 헌터라고 위험에 처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 다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던전에 들어갔다가 진현 씨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해?’

    강진현은 희나의 소중한 연인이었고, 가족이었다. 절대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진현 씨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

    알게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는 희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 눈물이……!”

    강진현은 희나의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떠나기 전날 말해 주면 어떡해요?”

    “미안합니다, 희나 씨. 진작 이야기했어야 했는데…… 희나 씨가 슬퍼할 게 무서워 말하지 못했습니다.”

    강진현은 쩔쩔매며 희나의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너무 위험해요……. 진현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는 슬퍼서 어떻게 해요?”

    “걱정하시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약속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어 주세요, 희나 씨.”

    희나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수십 가지 생각이 슬픔, 염려, 서운함, 애정 등등 수많은 감정과 뒤섞여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두 연인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오랜 침묵이 흐른 후, 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저는 진현 씨가 강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예.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말뿐인 약속에 안심할 수 없어요. 진현 씨가 노력한다고 위험이 비껴가는 건 아니잖아요.”

    “…….”

    날카로운 지적에 강진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희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진현 씨.”

    “예. 희나 씨.”

    “저도 진현 씨 따라갈래요.”

    “……네?”

    희나의 선언에 강진현이 숨을 들이켰다. 그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나, 의심하는 듯 귓바퀴를 문질렀다.

    “잘못 들은 거 아니에요. 진짜고, 진심이에요. 저도 진현 씨 따라가고 싶어요.”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

    “잠시 제 말부터 들어 주세요.”

    희나가 흥분한 강진현의 말을 끊어 냈다. 평소답지 않은 단호한 어조였다.

    “말도 안 되는 고집 부리는 거 아니에요. 진현 씨 따라 던전 들어간다는 뜻도 아니고요. 그랬다간 괜히 짐만 될 거란 사실, 잘 알고 있어요.”

    희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강진현의 어깨에 머리를 꾹 기댔다.

    “게이트 열리기 전까지 모여서 훈련한다면서요? 3개월이나요. 그동안 진현 씨 옆에서 상태 관리 도울게요. SSS급 던전은 위험한 곳이니까 최상의 컨디션으로 들어가야죠.”

    석 달 동안 훈련한다는 뜻은 석 달 동안 희나의 손길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상태로 던전에 입장하다니…….’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다.

    희나는 전투를 도울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최상의 상태일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었다.

    “길드장님께도 당장 연락드릴게요. 아마 허락해 주실 거예요.”

    희나의 일은 길드의 두 S급 헌터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따지자면 권한 밖의 일은 절대 아니었다.

    “위험합니다.”

    “던전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위험하겠어요? 어차피 던전에 입장하는 헌터들만 거기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게이트 바깥에는 대응팀이나 보조팀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랬다. 던전 공략에는 전투 헌터들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유사시를 대비한 대응팀도 필요했고, 의료팀, 언론팀, 보조팀 등등 수많은 사람이 게이트 바깥을 지켰다. 희나는 지금 그 인원에 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강진현은 재차 희나의 합류를 말렸지만,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위험한 일이 있어도 저는 ‘홈 스위트 홈’ 능력이 있으니 도망가면 돼요.”

    결국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바깥 낌새가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곧바로 도망가는 겁니다. 약속입니다.”

    “알았어요. 누구보다 빨리 꽁무니 뺄 테니까, 진현 씨야말로 조심해요. 진짜 위험한 건 게이트 바깥에 있을 제가 아니라 던전에 입장할 진현 씨인 거, 알죠?”

    * * *

    희나는 문제없이 SSS급 던전 토벌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길드장은 희나의 동행을 쌍수 들고 환영했다.

    ‘그래. 이 팀장이 같이 가서 돌봐 주는 편이 가장 좋지. 권다혜 헌터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해 놓도록 할게요. 아무래도 전투 나가는 강 헌터 챙기는 게 우선이니까.’

    참고로 S급 버퍼인 권다혜는 이번 SSS급 던전 토벌에 나서지 않았다.

    능력은 뛰어났으나, 큰 전투에 참가하기엔 경험도 일천하고 나이가 너무 어린 터라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저기가 주둔지인가 보네요.”

    희나는 갑판 난간에 기댄 채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섬을 손가락질했다.

    게이트가 태평양 섬에 있는 터라 일행은 배를 타고 이동했다. 비행기를 타기에는 이착륙 장소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작다고 말해서 울릉도 생각했는데, 비교도 안 되게 크네요.”

    희나는 키득거리며 바다 너머 보이는 육지를 슬쩍 살폈다.

    섬 곳곳에 컨테이너로 지은 숙소가 보였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던전 게이트를 숨긴 섬이었지만…… 무시무시하다기보다는 활기찬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오신 헌터들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일행은 하선하자마자 숙소를 안내받았다.

    한국에서 온 인원은 전투 헌터와 후방 보조 팀원을 합쳐 약 60명가량 되었다.

    ‘한국에서만 60명이니,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오면 섬이 터져 나갈지도 모르겠는데?’

    대충 50여 개국가량이 참여했다고 하니, 다 합치면 몇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공간에 와글와글 모이게 된 셈이다.

    거기다 보통 사람도 아닌 헌터들이다. 무슨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관리자급으로 보이는 이들의 표정이 비장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 들어갑시다!”

    숙소는 국가별로 배정이 되었고, 4인 1실이었다. 희나는 다행스럽게도 우민아와 같은 방에 배정되었다.

    우민아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룸메이트는 김희수, 한유미라는 이름의 A급 헌터였다.

    우민아는 김희수, 한유미와 이미 안면이 있는 듯했다.

    ‘하긴. 민아 언니는 청룡 길드 공략 총팀장이기도 하고, 워낙 성격이 좋으니까.’

    희나와도 만난 지 겨우 두 번 만에 언니, 동생 하고 편한 사이가 되지 않았던가?

    “안녕하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는 전투계는 아니고요, 후방 보조 인원으로 따라왔어요.”

    희나는 꾸벅 인사를 나누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어! 저 희나 씨 해외 뉴스에서 본 적 있어요. 이렇게 만나니까 되게 신기하네요. 잘 부탁해요!”

    다행스럽게도 김희수와 한유미 또한 우민아처럼 성격이 쾌활했다. 문제없이 합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오전까지는 각자 자유 시간이니까 시간 알아서 보내고. 나는 일이 있어서 자리 비우마.”

    우민아는 무어라 투덜거리며 숙소를 나섰다. 관리자급은 또 따로 모임이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희수, 한유미도 숙소 주변을 둘러보겠다며 자리를 떴으므로 방 안에는 희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희나는 2층 침대 두 개와 캐비닛이 빠듯이 차 있는 숙소 내부를 둘러보았다.

    굉장히 급하게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네 명이 욕실 하나를 함께 써야 한다는 걸 빼면 딱히 환경이 열악하진 않았다.

    공간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물품이 다 새것에, 고급 제품이었다.

    ‘하긴. 상급 헌터들은 다 부자니까.’

    까다로운 헌터들의 불만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으음……. 그나저나, 좋다. 해외에 놀러 온 것 같네.’

    날씨는 조금 습했지만 화창했고, 창밖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여길 보면 오빠 걱정을 좀 덜어 줄 수 있을 텐데.”

    희나는 캐리어를 뒤적이며 희원의 성난 얼굴을 떠올렸다.

    ‘진현이는 그렇다 쳐도 너까지 거기 갈 필요는 없잖아!’

    대뜸 몇 개월간 최상급 던전 근처로 떠나 있겠다고 하니,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두 반려 생명체마저 희나의 결정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애당초 오색이는 외박에 예민한 유교달팽이였고.

    「장기외박 결사반대!」

    바둑이마저 바닥에 드러누워 버둥버둥 떼를 썼다.

    어찌어찌 억지 허락을 받아 내긴 했지만, 출발 시간이 워낙 빠듯해 희원과 제대로 화해도 못 하고 온 게 마음에 걸렸다.

    폭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마저 정돈하는데, 짐 속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어?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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