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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8화 (19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8화

    일주일 전,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스킬이 S랭크가 되며 비밀 온실 하나가 열렸다.

    시스템은 이때다 싶었는지, ‘세계수’라는 거창한 이름의 나무를 키우는 퀘스트를 들이밀었다.

    나름 세상의 앞날이 걸린 어마어마한 미션이었으므로 거절할 수는 없었다.

    물론 머리털 무성한 사람을 대머리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시스템이 왜 보잘것없는 인간의 힘을 빌리려 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희나는 미용사가 자기 머리를 못 자르는 것처럼 시스템도 자신과 관련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뭐, 그래도 시스템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할 퀘스트를 준 적은 없으니까.’

    희나에게는 이번 일 또한 힘들어 보여도 해낼 수 있으리라, 하는 믿음이 내심 있었다.

    ‘세계수 키우는 게 생각보다 더 까다롭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합리화를 하려 하자마자 허공에 시스템 알람이 반짝거렸다. 꼬마 세계수 관련 알림이었다.

    “아악! 나온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또 호출이야? 간다, 가!”

    희원이 커다란 한숨과 함께 온실 안으로 뛰어들어 갔고, 몇 분 후 추가 알림이 반짝거렸다.

    “뭘 더 어떻게 끌어안으란 거야!”

    “자장가는 무슨!”

    “자장…… 자장…… 우리…… 세계수…… 잘도…… 잔다…… 우리…… 세계수…….”

    이 광경에 희나는 방금 했던 생각을 잠깐 재고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이번 퀘스트, 해낼 수 있을까?’

    세계수 키우기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까탈스러운 취향의 세계수와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요구를 해 오는 진상 학부모 같은 시스템의 하모니는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세계수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비료가 필요했다. 그 말인즉슨…….

    “아이고, 바둑아. 괜찮아? 꽃잎 시들시들해진 것 좀 봐.”

    유기농 비료 분사기 역할을 하는 바둑이가 몸이 부서지도록 금빛 가루를 뿜어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철푸덕!

    바둑이는 ‘난 완전히 지쳤어요!’라고 말하듯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오색이는 그 옆에서 꼬물꼬물 기어 다니며 바둑이를 응원했다.

    「땡벌! 땡벌!」

    ……아마도 응원일 것이다.

    “어휴. 오빠랑 바둑이 둘 다 기력이 남아나질 않네.”

    희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농사꾼 하나와 농사꾼의 애완식물 하나를 바라보았다.

    ‘세계수는 아직 작은데…… 그 전에 사람 죽겠네.’

    겨우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작은 식물을 대체 언제 커다란 나무로 키워 낸단 말인가?

    그것도 보통 크기의 나무도 아니었다. 미리 보았던 환영에 의하면 보통 나무의 수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하지 않았던가!

    “이러다 세계수 다 키우기 전에 세상 망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희나의 투정은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 * *

    강진현은 희나가 타 준 블랙커피 한 잔을 들고 회의장 안에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와. 이제 정말 한 방울도 안 흘리네.”

    “텀블러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못 흘리는 거 아니야?”

    “아닌데. 안에 뭐가 찰랑거려. 그것도 꽤 수위가 높아.”

    다들 강진현이 커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한편, 강목현 인사팀장은 테이블 위를 두 번 두드리며 주의를 끌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하지 않습니까. 모두 집중하십시오.”

    그러는 강목현의 입꼬리야말로 티 날 정도로 뿌듯하게 올라가 있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건 모른 척하는 편이 나으리라.

    강진현이 착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규희 길드장이 불쑥 등장했다.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이 멤버로 모인 건 오래간만이지?”

    “추억이 아롱아롱 솟네요. 진현이가 저 구석에 앉아 응애응애 울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청룡 길드를 창립할 때 저는 이미 성인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본 적 없으시잖습니까.”

    “스무 살이면 젖병 무는 애지, 애. 하긴. 너는 배고프다고 응애응애 울었을 것 같진 않다. 배가 고프니 분유를 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얘기했으려나?”

    청룡 길드의 창립 멤버가 모여서인지, 사적인 이야기가 툭툭 튀어나왔다.

    강목현 인사팀장이 다시 한번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사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참고로 강진현 헌터는 어릴 때 아주 귀엽고 예의 바른 아기였습니다.”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지만, 강목현 인사팀장의 눈빛이 워낙 서늘하여 다들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규희 길드장이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추억 팔이나 하려고 여러분을 따로 불러 모은 건 아니야.”

    “그럼 무슨 일입니까? 누가 기밀 유출이라도 했답니까? 스파이 찾기 놀이?”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내 선에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지.”

    어지간해선 여유롭게 풀어져 있어야 할 길드장의 입매가 딱딱히 굳어 있었다.

    “한 시간 전, 정부 공문이 내려왔다. 태평양 SSS급 던전이 석 달 후 활성화될 예정이다.”

    “예? 그건 활성화되는 데 빨라야 2년 정도 걸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론적으로, 여태까지의 예측대로라면 그랬지.”

    실제로 그에 맞춰 SSS급 던전을 공략할 국가 연합 팀을 꾸려 위험에 대비할 예정이었다.

    김규희 길드장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 공간 불안정도가 여러모로 요동쳤다는 사실은 들어 알고 있겠지?”

    제법 빠른 속도로 증가하던 불안정도가 주춤한 건 요 몇 개월 사이의 일이었다.

    단순하게만 본다면 새로운 던전 생성 속도가 늦추어졌으니 잘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원인을 모르니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연구자들은 그 까닭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쁜 몇 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런 내용 따위가 아니지.’

    김규희 길드장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복잡한 가설들을 흩어 치웠다.

    지금은 그들의 이론이 중요한 때가 아니었다. 맞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어제, 태평양 부근의 불안정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 이번에도 까닭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라면 적어도 석 달 후에 SSS급 던전 게이트가 열릴 거라는 사실이야.”

    그녀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던전 토벌팀은 국가 연합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선 대형 길드의 상위 티어 헌터 위주로 인원을 차출할 거다.”

    “대형 길드의 상위 티어라고 하면…….”

    “그래. 강 헌터에게 소환장이 날아왔어. S급이라 필수 징집 대상자야. 그리고 추가로 A랭크 이상의 전투 각성자 열두 명을 더 뽑아서 보내야 하지.”

    “음.”

    강진현은 눈을 내리깔았다.

    위험한 전장에 나서는 건 두렵지 않았다. SSS급 던전이 태동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맞닥뜨려야 할 일이었다. 그 시기가 조금 더 빠르게 다가왔을 뿐이다.

    다만…… 그의 마음에 파문이 이는 건, 온전히 희나 때문이었다.

    ‘희나 씨가 걱정할 텐데. 이걸 어떻게 이야기한다……?’

    강진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할 희나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 * *

    SSS급 던전은 인류가 처음 맞는 초고난도의 던전이었다.

    심지어 첫 입장이었다. 100퍼센트 방비를 해도 부족할 판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적의 정체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은 토벌팀의 강력한 무위와 팀워크였다.

    즉, 최대한 빠르게 토벌팀을 모아 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강진현에게도 긴급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네? 이번 주에 떠난다고요? 이번 주는 던전 공략 일정 없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희나는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한다……?’

    강진현은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아직까지 희나에게 사정을 털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별일 아니라고 안심시키고, 평소처럼 다녀오면 될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더 숨겨서는 안 돼. 희나 씨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게, 희나 씨. 이번에 중요한 일에 파견되게 되었습니다.”

    “진현 씨가 하는 일이야 다 중요한 일이죠.”

    빙그레 웃으며 답해 주는 희나의 모습에 강진현의 심장이 미어졌다.

    거기다 일이 끝날 때까지 희나와 헤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니 눈앞이 절로 캄캄해졌다.

    ‘심지어 석 달 넘게…….’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석 달이었다. 전략을 짜고 훈련하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희나를 못 보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니 빠듯하기는커녕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희나 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듣고 있어요.”

    “한동안 해외 파견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 해외 파견을요……. 좀 급하게 가네요?”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그게, 조금 긴데요…….”

    “일주일? 보름? 한 달?”

    “최소 석 달에서 넉 달 정도…….”

    “아하……?”

    부드러운 강진현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던 희나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석 다아아알? 최소 석 달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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