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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5화 (195/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5화

    희나는 경악했다.

    ‘이대로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는 거잖아?’

    한우섭의 말에 따르면, 한국도 3년이면 다른 나라처럼 심각한 헌터 부족 사태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던전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뜻이었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는 관리하지 못하는 구역이 점점 많아질 테고, 한국처럼 작은 데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나라는…….

    ‘……큰일이겠는데.’

    각성자가 막 생겨나기 시작한 10년 전, 게이트 초창기 못지않은 혼란이 도래할 것이 분명했다.

    세계 연합이나 정부 차원에서 그때를 대비하여 준비를 하고 있다지만, 그 계획이 얼마나 유효할지도 의문스러웠다.

    희원은 한참 동안 희나의 설명을 듣다 결론지었다.

    “계속 평화롭게 살고 싶으면, 뭔가를 하라는 뜻이네.”

    “예. 불확정도 증가 추이를 보면…… 최소 한 달에 던전 두 개 이상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강진현의 설명에 오색이가 추임새를 넣었다.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이대로라면 오색이의 말대로 정말, 바빠질 예정이었다.

    * * *

    꽤 심각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대로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헌협 회동이 끝나자마자 가지고 있는 공간의 씨앗을 모두 심어 생장시켰고, 안정화했다.

    다행스럽게도 등급 낮은 던전들이라 희나와 강진현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 이건 공략 불가능하겠는데.”

    희원이 던전 정보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원덕삼이 넘긴 파일에는 이번에 공략해야 할 던전의 포인트가 강조되어 있었다.

    [트윈 보스!]

    보스 몬스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한쪽 보스 처리 후, 한 시간 이내에 나머지 보스를 처리해야 함.]

    그렇지 않으면 남은 보스가 처리한 보스를 부활시킨다고 했다.

    일종의 타임 리밋이 걸려 있는 던전인 셈이다.

    “제가 빠르게 움직이면 됩니다.”

    강진현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지만, 금세 그의 의견은 기각됐다.

    “이거 봐요. 트윈 몬스터 사이의 거리가 400km나 된다고요. 진현 씨가 비행기가 되지 않는 이상 한 시간 컷은 불가능해요.”

    “맞아. 400km면 대충 서울에서 부산 사이 거리 정도 돼. 차도 못 하는 걸 사람이 어떻게 하냐?”

    “그건…… 그렇군요.”

    천하의 그라도 물리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으음. 어쩐담? 지금은 잠깐 미뤄 둔다고 해도, 언젠가는 클리어해야 하는 던전인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솔직히 모든 던전을 솔로 플레이로 해결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물론 인간 네비게이션인 희나가 강진현의 등에 업혀 있으니 엄연히 말해서 솔로 플레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진현 씨 무력에 비교하면 내 힘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아무튼, 오늘 같은 특수한 공간적 한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불거질 문제였다.

    희원이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젠 정말 외부인을 들이는 수밖에 없으려나?”

    “저는 반대입니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진현 씨, 언제까지 이렇게 우리끼리만 끙끙거릴 순 없잖아요?”

    “이대로 던전 안정화에서 손을 떼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황이 위험해지잖아요. 지금이야 괜찮다 치더라도, 나중에는 던전 브레이크도 많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요.”

    “희나 씨는 청룡 길드의 요직에 있는 데다, 제가 곁에 있지 않습니까? 안전할 겁니다.”

    이에 희나는 허리에 두 손을 얹었다.

    “그럼 지금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은 물 건너가게 되는 건데도요?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퇴근하고, 같이 밥 먹고, TV 보고…….”

    “하지만.”

    강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희나의 안전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그 스스로 떠올렸다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겁한 생각인 걸 알았다.

    강한 힘을 가진 이상 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무엇보다 소중한 상대가 생기니 그게 잘 안 됐다.

    ‘사람들을 지키려다 희나 씨가 위험해진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러나…….

    “알겠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죠.”

    하지만 강진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강진현은 희나가 만들어 준 작고 안락한 세상으로도 족하지만, 희나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희나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좋아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다.

    상대를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그가 사랑하는 것 또한 지켜야만 했다.

    * * *

    해서, 가장 먼저 이 ‘비밀 결사’에 스카우트된 사람은 바로 우민아였다.

    희나와 각별한 사이이기도 했고, 희나의 ‘홈 스위트 홈’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민아를 불러다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한 날, 희나가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이랬다.

    “야! 너희 동거 중이었냐!”

    “……네?”

    “아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이거이거, 아주!”

    “어,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닌데요!”

    “이희나! 강진현! 아닌 척, 뒤로 콩깍지는 다 까고 있었겠다?”

    “아아아아니에요!”

    “아니긴! 표정 보니까 거짓말하는 거 딱 보이는구먼!”

    ……얼결에 교제 사실을 들켜 버린 데다가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반응이 돌아와 당혹스럽긴 했지만, 우민아는 상황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긴. 범상치 않은 스킬이라고 생각은 했다. 너희 오빠 스킬도 그렇고……. 땅 한 뙈기 없는데 어디서 막 농산물을 재배해서 오는 게 수상하다고는 했는데…… 던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을 줄이야.”

    그녀는 뺨을 살살 긁으며 생각에 빠졌다.

    “거기다 이 특이해 보이는 직업군엔 어느 정도 시스템의 안배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데요, 저희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우민아는 흔쾌히 대답했다.

    “당연하지. 네 부탁도 들어주고, 세계 평화도 지키고. 일석이조네.”

    * * *

    트윈 보스 던전을 안정화하고 나자마자 우민아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이왕 던전 토벌할 거면 구색은 맞춰야 하지 않겠어? 팀원 더 영입하자.”

    이번에도 강진현은 반대했다.

    “안 됩니다.”

    우민아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애당초 나를 데려온 이유도 너희 둘만으로는 던전 공략에 한계가 있어서인 거잖아. 하지만 사람 하나 더 추가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하지만 언니는 A급 헌터고, 언니 덕분에 던전도 깼는데요?”

    “그거야 던전 등급이 낮으니까 힘으로 몰아붙인 거고.”

    “으음.”

    “던전은 ‘팀’으로 공략하는 거야. 공격을 방어하고, 적을 공격하고, 후방 지원하고…… 이 모든 사이클이 유기적으로 딱딱 맞아 돌아가야 한다고.”

    “그러니까 언니 말은 앞으로 계속 던전 공략을 할 거면 주먹구구식으로 뚫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팀이 필요할 거라는 얘기죠?”

    하지만 강진현의 의지는 아주 굳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우민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 비밀은 나눌수록 불안해진다는 거.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팀원을 늘리건 안 늘리건 부담해야 할 위험은 같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팀 구성을 봐 봐. 너랑 나, 희나. 이렇게 셋이고, 그중 희나는 전투계가 아니지. 비상사태라도 일어나 봐. 가장 위험해지는 건 희나라고.”

    결국, 비밀을 엄수하는 대신 전투 중 안전을 포기하느냐, 전투 중 안전을 택하는 대신 비밀 엄수를 다소 포기하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내 생각에는 비밀 잘 지킬 만한 팀원을 영입하는 편이 더 낫거든. 알잖아? 전투 중에 사람 죽는 건 한순간이야.”

    우민아가 턱 끝을 까닥거렸다. 태연한 표정으로 하기에는 꽤 살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말은 꽤 설득력 있었다.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진현이 고집을 꺾고 희나를 바라보았다.

    “희나 씨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래. 어쨌든 이 프로젝트 중심은 너희 남매니까, 너랑 너희 오빠 생각이 먼저지.”

    희원은 선뜻 대답했다.

    “나는 찬성. 전투 중에 사람 잃을 확률이 더 높으니까. 뭐든 안전이 최고지.”

    「※안전제일※」

    가만히 대화를 구경하던 오색이도 진지한 궁서체로 안전제일을 외쳤다.

    희나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 마음을 정했다.

    “저도 민아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비밀 엄수 문제는 좀 더 2차적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희나까지 찬성하니, 이제 남은 건 멤버 영입뿐이었다.

    * * *

    길고 긴 토론과 은근한 간 보기, 약간의 고집과 회유 끝에 ‘세계 평화 프로젝트’ 던전 공략팀의 멤버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희나, 강진현, 우민아 이렇게 세 사람에 김수나, 정수원, 이정화, 권준용, 권다혜, 권환웅. 이렇게 여섯이 더해졌다.

    참고로 이 여섯은 모두 지난 ‘좀비 던전’ 게이트에 같이 휘말려 각성한 인물들이었다.

    A급 탱커인 김수나.

    B급 환각술사인 정수원.

    B급 수계 능력자인 이정화.

    A급 식물 테이머인 권준용.

    S급 버퍼인 권다혜.

    B급 힐러인 권환웅.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전 경험은 일천하나, 그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굉장한 인재들이었다.

    거기다 이들은 희나 남매와 강진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큰 고마움을 품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믿을 만했다.

    다만, 권다혜와 권환웅의 나이가 열네 살, 열 살로 어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으나…….

    “도울 수 있다니까요!”

    “안 끼워 주면 친구들한테 다 말해 버릴래요!”

    “야! 권환웅, 그건 좀 오버지!”

    “그래도. 나도 여기 끼고 싶단 말이야…….”

    S급 버퍼인 권다혜와 B급 힐러인 권환웅이 이렇게까지 생떼를 쓰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어휴. 어린애들은 안 되는데…… 어쩌다가.’

    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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