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안의 살림꾼-194화 (194/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4화

    희나는 앞뒤 정황을 조근조근 설명했다.

    외부에서 온 손님이 코피를 흘리고 있어서 도와준 후,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도시락까지 먹이고 보냈다고.

    이야기를 다 들은 강진현의 눈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렇군요. 희나 씨가 위험에 빠진 사람 하나를 구하셨네요.”

    “좋은 얘길 하는데 표정이 왜 그렇게 슬퍼요?”

    “아닙니다. 희나 씨의 고운 심성에 감탄하는 중입니다.”

    “도시락 때문에 그래요? 진현 씨 몫을 다른 사람한테 줘 버려서 미안해요. 조금 있다가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요.”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약속하니, 그제야 슬픈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느껴지는 건…… 콩깍지 때문인 걸까?

    희나는 슬쩍 주위를 살피곤 쪽, 하고 강진현의 뺨에 입을 맞췄다.

    강진현이 붉어진 뺨에 손을 올렸다.

    “아.”

    희나의 입술이 닿은 부분이 물감이라도 푼 것처럼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쩐지 순진한 청년을 희롱한 기분이 들어 민망한 웃음을 지으려는데,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희나를 불렀다.

    “희, 희나 씨.”

    “네. 진현 씨, 장난이 과했죠? 미안……”

    강진현은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머지 한쪽도 마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다 못해 몹시 기꺼운 요청이었다.

    달콤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강진현은 몹시 아쉬운 표정으로 시계를 살폈다.

    “이 뒤에 일정이 있어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희나는 으음, 하고 신음했다. 연인과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강진현 또한 그러한지, 미간을 옅게 찌푸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희나 씨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반가운 제안에 눈을 번쩍 떴다.

    “저도 가도 돼요?”

    “예. 팀장급 이상 참가 가능한 일정이니, 희나 씨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럼 저도 갈래요.”

    “지루할 수도 있는데요.”

    “뭐, 진현 씨 보려고 가는 건데요. 거기다 혼자 사무실 있는 것도 지루하고요.”

    거침없는 대답에 강진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진현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200명가량 수용 가능해 보이는 세미나실이었다.

    커다란 화면에는 ‘XXXX년도 던전 활동 현황과 그 분석’이라는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이 떠 있었다.

    그중 희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글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어라? 발표자가 한우섭 씨네?’

    제목 아래에 박힌 ‘차석 연구원 한우섭’이라는 직위와 이름이었다.

    ‘아하. 아까 세미나 한다고 급하게 나갔는데, 그게 이거였나 보구나.’

    아까 우연히 도와주었던 사람을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진현 씨, 발표자 말이에요. 제가 아까 말했던 그 사람이에요.”

    강진현에게 슬쩍 귀엣말하니 그가 힐끗 단상을 바라보았다.

    한우섭은 목이 타는지 연신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컥, 하고 물을 뿜어냈다. 사레라도 걸린 듯했다.

    그 모습에 마저 속닥였다.

    “무대 공포증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강진현도 그런가 봅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한우섭의 기침이 멈추자마자 조명이 꺼지고,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희나는 강진현 옆자리에 얌전히 앉아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 * *

    소고기 뭇국을 무슨 막걸리처럼 시원하게 들이켠 후, 희원이 국그릇을 탁 내려놓았다.

    짝짝짝!

    놀라운 기예에 바둑이가 열띤 박수를 보냈다.

    희원은 그런 바둑이의 머리통, 아니, 봉오리를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돼.”

    “내 말이. 솔직히 진현 씨도 같은 내용 들었다고 안 했으면, 절대 안 믿었을 거야.”

    희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수저로 국그릇을 휘저었다.

    희나가 밥상머리 앞에서 딴짓을 한다는 건, 사안이 정말로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진현은 희나 밥 위에 달콤 짭짤한 장조림 고기 한 점을 올려놓았다.

    “희나 씨, 밥 식습니다.”

    “……알았어요.”

    희나는 한숨과 함께 강진현이 얹어 준 반찬과 함께 밥을 떠먹었다.

    밥 한 술을 다 씹어 삼키자마자 다음 반찬이 올라왔다. 이번엔 매콤한 콩나물무침이었다.

    희나는 슬쩍 오빠의 눈치를 보고는 밥을 한 숟갈 더 먹었다. 강진현의 입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오색이는 그 장면을 이렇게 평했다.

    「ㅇㅕㅁㅂㅕㅇ」

    희원 또한 허, 하고 코웃음 치며 동생 커플의 닭살 행각을 1열 직관했다.

    “아주 본격적이다, 응?”

    “헤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가 던전 하나를 비활성화할 때마다 그, 뭐시기, 불안정도가 낮아지는 것 같다…… 이 말이지?”

    “응. 공간 불안정도.”

    공간 불안정도란, 일종의 던전 게이트 생성 확률의 파라미터라고 볼 수 있었다.

    특정 지역의 공간 불안정도가 일정 수치 이상 높아지면 게이트 오픈 확률이 급속도로 올랐다.

    토탈 공간 불안정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라는 명제는 거의 학계의 정설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 공간 불안정도의 증가세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는 참이라, 국제 단체에서도 굉장한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공간 불안정도 상승세를 보여 주기 위해 세미나에서 올해 데이터를 보여 줬거든.”

    희나는 싹싹 비운 밥그릇을 강진현에게 보여 주고는 마저 설명했다.

    “그런데 연구원님 설명에 의하면 중간에 몇 번, 전체 공간 불안정도가 소폭 감소한 지점이 있었대. 그 시기를 보니까…… 꽤 눈에 익은 때였다 이 말이지.”

    “맞습니다. 우리가 거울상 공간으로 가서 던전을 완전 비활성화했던 시기였습니다.”

    강진현이 땅땅 말뚝을 박아 주었다.

    희원은 의문스럽다는 듯 이마를 찡그렸다.

    “꼭 그렇단 법이 있나? 우연일 수도 있잖아? 과잉 해석 아니야?”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과잉 해석은 아니야.”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두 번은 의심스럽고, 세 번이면 거의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었다.

    강진현 또한 희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시스템은 희나 씨와 희원 형님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사실 하나는 확실합니다.’

    색다른 히든 클래스에, 이상한 퀘스트까지.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시스템이 이 남매에게만 새삼스럽게 굴 이유가 없었다.

    “으음……. 만약 너희 말이 맞는다면 이거 참, 상황이 곤란해지는데.”

    희원은 머리를 쥐어뜯었고 희나는 끙, 신음을 내뱉었다.

    “이쯤 되니까 시스템이 우리한테 뭘 원하는지 알 것 같지?”

    희원이 중얼거렸다.

    “세계 평화…….”

    그랬다.

    시스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늘로써 완벽해졌다.

    ‘나날이 촉진되는 던전 생성을 저지하라!’

    그와 동시에 시스템 창에 팡파르가 울렸다.

    짐작이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 * *

    “안……녕하세요. 저는 청룡 길드의 이희나라고 합니다. 몸은 많이 괜찮아……지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으음, 여기부터는 어떻게 써야 하지?”

    휴대전화를 붙잡고 끙끙 앓았다.

    지금 희나는 한우섭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 시무룩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꼭 보내야 합니까?”

    “하지만 진현 씨, 진현 씨도 이건 한 번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동의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요.”

    “이왕이면 구면인 쪽이 편하고, 진현 씨는 아무래도 너무 눈에 뜨이니까 제가 연락하는 게 더 낫고요.”

    “……희나 씨 말이 전부 맞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강진현의 입술이 평소보다 조금 더 튀어나와 있는 듯한 건, 아마도 착각이겠지.

    「♨질투의 맛♨」

    「핫뜨거 핫뜨거!」

    오색이가 새빨간 글자를 번쩍번쩍 내보냈지만, 희나도 강진현도 서로를 위해 모른 척했다.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우섭에게서 답장이 왔다.

    희나와 강진현은 머리를 맞댄 채 함께 답장을 읽었다.

    [한우섭: 네 안녕하세요^^! 그날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세미나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우섭: 내일도 일 때문에 청룡 길드에 갈 것 같은데, 괜찮으시면 커피 한잔 사도 될까요?^^]

    “커피 한잔…….”

    우드득, 강진현의 손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희나는 화들짝 놀라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진현 씨, 손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방금 뭐 부서지는 소리가 났는데요?”

    “가끔 손가락 관절에서 소리가 나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단순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강진현이 재차 괜찮다고 강조하니 더 물어보기도 그랬다.

    대신 희나는 그의 손을 조물조물 주물러 주었다.

    “절대 진현 씨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네에…….”

    “청룡 길드에서 만나는 거니까 진현 씨가 저 멀리서 지켜볼 수도 있잖아요.”

    “맞습니다…….”

    시무룩한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희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등을 토닥여 주었다.

    “거기다 저 혼자만 갈 것도 아니니까요.”

    * * *

    사실 여부는 원덕삼의 도움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희나와 한우섭이 이야기하는 도중, 원덕삼이 모르는 척 끼어 정보를 빼냈다.

    원덕삼의 능력은 꽤 요긴했다. 상대에게 은근한 암시를 주어 인지 능력을 흐리게 했다.

    덕분에 한우섭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공간 불안정도가 감소한 정확한 날짜와 감소 정도 등 몇 가지 기밀을 유출했다.

    중요한 내용인 만큼 원덕삼은 한우섭이 주는 정보가 정확한지, 진실 여부 또한 파악했다.

    모두 사실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