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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1화 (191/228)

던전 안의 살림꾼 191화

“권다혜, 다혜야?”

희나는 인간 벽을 넘지 못하고 멀리서 펄쩍펄쩍 뛰며 손을 휘저었다.

저곳엔 쟁쟁한 상급 헌터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끼어들었다가는 온몸이 짜부라 들어 터질지도 몰랐다.

‘하긴. 다혜는 유명 인사였지. 상황이 곤란해졌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권다혜는 조금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렇게 큰 어른들 사이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와중, 누군가가 희나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비켜!”

전투계 헌터의 힘을 비전투계인 희나가 이겨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꺅!”

희나는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엉덩이를 그대로 쿵 찧었다.

“아야야…….”

엉덩이가 욱신욱신했다. 주저앉으며 바닥을 잘못 짚었는지 오른쪽 손목도 시큰거렸다.

‘아니 저 사람들이?’

희나는 눈을 뾰쪽하게 떴다.

짜증이 치솟았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나동그라졌다는 민망함에, 아픈 엉덩이와 손목까지!

‘거기다 사람 밀쳐놓고 미안하단 말도 없어?’

희나를 밀친 남자는 어느새 인파 속으로 몸을 구겨 들어간 지 오래였다.

매너 좋은 청룡 길드 사람들과만 지내다가 오래간만에 무례한 인간을 만나니 머리에 열이 확 올랐다.

“에이…… 악!”

발끈해서 바닥을 짚고 벌떡 일어서려다, 접질린 오른팔을 잘못 짚어 끙끙 앓았다.

그런 희나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희나 씨?”

고개를 휙 돌리자, 강진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희나를 살피고 있었다.

“어? 진현 씨?”

잔뜩 짜증이 난 와중에도 강진현을 만나니 기분이 확 풀렸다.

“오늘 바쁜 날 아니에요? 여기서 다 만나네요.”

잠시 상황도 잊고 반갑게 인사했으나, 강진현은 희나의 인사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대신 붉게 달아오른 손목을 짚었다.

“아야!”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강진현의 표정이 무시무시해졌다.

“어떤 놈입니까?”

“예?”

“희나 씨를 이렇게 만든 놈 말입니다.”

그의 시선에 사나운 기색이 스쳤다.

희나는 범인을 그대로 일러바치려다가 주춤했다.

‘헉. 이러다가 또 싸움 나는 거 아니야?’

물론 희나는 강진현을 아주 좋아하고…… 가족만큼이나 신뢰했지만…….

‘그치만……. 진현 씨는 흥분하면 힘 조절을 잘 못하는데.’

슬쩍 눈동자를 굴리니, 역시나.

그의 손이 닿은 바닥재 부분에 미세하게 금이 가 있었다. 강진현의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진현 씨,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의무실에나 같이 가 주……”

나는 괜찮다며 강진현을 붙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다들 썩 비켜요!”

권다혜의 목소리가 로비에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사령관의 재능이 있는 S급 버퍼이기 때문일까? 목소리에 묘한 카리스마가 실려 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무의식중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 정도로 말이다.

“나랑 얘기하고 싶으면 우리 길드장님한테 허락부터 받고 와요. 안 그러면 상대 안 할 테니…… 언니? 왜 바닥에서 그러고 있어요? 강진현 헌터님은 왜 여기 있고요?”

권다혜는 제 앞을 막아선 사람들을 밀치고 희나를 향해 조르르 달려갔다.

“부상당했다.”

강진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희나의 상태를 알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누가 밀친 것 같더군.”

“어떤 새끼가요?”

“저 중에 있겠지.”

권다혜는 고개를 팩 돌려 등 뒤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언니 밀친 사람 누구야? 자수하는 편이 좋을 거예요!”

기세가 제법 사나웠으므로, 모두 찔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뒤에 있는 헌터 강진현의 기운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눈치를 살폈다.

떠들썩하고 정신없던 1층 로비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정적에 희나는 얼굴을 슬쩍 붉혔다.

‘민망해라.’

볼품없이 주저앉아 있는 꼴을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있는 셈 아닌가.

거기다가 로비를 어슬렁거리던 청룡 길드원까지 희나를 발견했다. 수군거림이 이곳저곳에 번졌다.

“뭐야, 희나 팀장님 아니야? 왜 그래?”

“누가 밀쳤대.”

“팔이 부어 있어. 다쳤나 봐.”

“헐. 팔 부러졌대.”

“뭐라고? 우리한테 밥해 주는 귀한 팔을 아작 냈다고?”

소문은 순식간에 와전됐고, 길드원들의 얼굴이 흉흉해졌다.

“어떤 개놈이 그랬어?”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CCTV 뒤져!”

“범인 색출할 때까지 아무도 못 나갈 줄 알아라!”

심지어 범인을 찾는다며 통로를 봉쇄하기까지 했다.

‘이건 투 머치인데.’

희나는 마른침을 꼴딱 삼켰다.

방금까지는 분명히 화가 났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2절, 3절, 4절까지 하니 이젠 부끄러움이 더 커졌다.

“여기 소속이랑 이름 적어! 어쭈? 반항한다? 죽고 싶냐?”

“뭐? 너는 안 그랬다고?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손발을 맞춰 움직이는 길드원들을 저지하기에는 이미 상황은 너무 멀리 나간 듯했다.

희나는 결국 차선택을 택했다.

“저 아프니까 여기 좀…… 벗어나면 안 될까요?”

상황에서 도피하는 방법 말이다.

* * *

권다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뼈는 안 다쳤다니 다행이에요.”

“으응. 나 괜찮아. 비싼 포션 발라서 그런가? 손목도 평소보다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네.”

희나는 붓기가 가라앉은 오른쪽 팔을 들어 보였다. A급 포션을 그야말로 철철 퍼부은 덕에 아주 멀쩡해졌다.

심지어 그쪽 피부가 평소보다 더 반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강진현의 걱정은 아직 덜 끝난 듯했다.

“엉덩이에도 멍이 들었을 텐데 거기도…….”

“아뇻! 그건 괜찮아욧!”

희나는 화들짝 놀려 손을 휘저었다.

‘어, 엉덩이에 멍 뺀다고 포션을?’

포션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민망한 부위였다.

“하지만 아플 겁니다.”

“맞아요, 언니. 꼬리뼈에 금 갔으면 어떻게 해요?”

“그 정도로 꼬리뼈에 금 갈 것 같지는 않은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으나, 권다혜는 아주 완고했다.

“아닌데. 지난겨울에 우리 할머니 넘어졌다가 꼬리뼈에 금 갔어요.”

“난 할머니가 아니야. 아직 골다공증 올 나이도 아니고…….”

셋은 한참 동안 갑론을박하다 희나가 뼈에 좋은 특별 포션을 먹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중간에 의무실 직원이 특별 포션 얘기 안 꺼냈으면 진짜로 엉덩이 까게 됐을지도.’

희나는 맛없는 포션을 삼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탕 드십시오.”

포션을 다 마시자마자 강진현은 희나의 입안에 레몬 맛 사탕을 쏙 넣어 주었다.

“내, 내가 하려고 했는데!”

권다혜는 자기 손에 든 포도 맛 사탕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S급이라도 신체 능력 관련한 스탯은 강진현이 훨씬 높았기에, 그의 민첩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젠 포션도 다 먹고, 몸도 다 나았어. 아까 하던 일 마저 하자.”

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금세 어깨를 붙잡혀 침대에 눕혀졌다.

왼쪽 어깨는 강진현, 오른쪽 어깨는 권다혜가 붙잡은 거였다.

“어? 어어? 놓아줘!”

“오늘 고생 많이 했잖아요. 거기다 양호실 오면 한 시간은 누워 있다 가는 건데.”

“왜?”

“그게 규칙이에요.”

권다혜는 엄격한 표정을 했고, 강진현은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규칙인 것 같습니다, 희나 씨.”

“처음 들어 보는 규칙인데…….”

“요새는 그렇게 배워요.”

“이왕이면 요즘 유행을 따르는 편이 좋지요.”

언제부터 두 S급이 이렇게 손발이 짝짝 맞았을까? 희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알았어. 딱 30분만 누워 있다가 갈게. 끝나고 나면 미화팀 도와주러 갈 거야. 알았지?”

“알았어요, 언니. 눈 감아요.”

단호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희나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딱 30분만 누워 있다가 나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지 딱 3분만에, 희나는 스르르 잠들어 버렸다.

누워서 눈을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희나의 숨소리는 이내 고르게 변했다.

권다혜는 잠든 희나의 눈앞에 손바닥을 휘휘 저어 보였다.

“많이 피곤했나 봐요. 엄청 금방 잠들었다.”

“오늘 희나 씨 스케줄은 꽤 여유로웠을 텐데.”

“언니요? 스킬 엄청 많이 써서 그래요. 버프 받고 포션 많이 먹으면 뭐 해? 스킬 누적 피로도는 회복되지 않는걸…….”

권다혜는 얼마 전 배운 헌터 상식을 중얼거리며 입안에 포도 맛 사탕을 던져 넣었다.

“그나저나 강진현 헌터님은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 오신 거예요? S급 전투 헌터쯤 됐으면 사람들 좀 통솔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대놓고 부루퉁한 목소리였다. 강진현은 잠든 희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권다혜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엄청 많았죠!”

시도 때도 없이 쾅쾅, 난리를 피워 대던 헌터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니,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돼지우리 같은 방을 보면서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인데, 그 말에 이렇게 공감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헌터들이 어찌나 건물을 어질러 대던지, 언니가 대청소 스킬을 몇 번이나 쓴 줄 아세요?”

권다혜는 요 몇 시간 동안 자기가 보고 겪은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 사고 현장 묘사에, 강진현의 미간에 하나둘, 주름이 져 갔다.

“……그래서 언니가 엄청 고생했어요! 제 버프 아니었으면 언니는 진작에 뻗어 버렸을걸요. 사람 돕는 건 좋은데, 이러다 병나면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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