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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90화 (190/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90화

    Rrrr……!

    Rrrr! Rrrr!

    Pipipipi! Pipipipi!

    호출기가 정신없이 울렸다. 모두 환경 미화팀원들이 차고 있는 긴급 호출기였다.

    그러니까 청소를 하고 있는 지금도 쉼 없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습하는 속도보다 일 터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으아아. 헌터들 미쳤나 봐.”

    희나는 질린 표정을 하고 챙겨 온 주먹밥을 씹어 삼켰다.

    쉼 없이 일하느라 절반쯤 깎여 나가 있던 스탯들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다들 괜찮으세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쓰윽 닦아 내며 물으니, 팀원들이 대답했다.

    “길드에서 스태미나 포션을 지급해 줬어. 그거 먹었더니 좀 살 것 같네.”

    “약발 없었으면 진작 쓰러졌지.”

    “거기다 체력 증가 아이템도 꼈고 말이야.”

    모두 오늘을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철저히 해 둔 모양이었다.

    ‘하긴. 이 정도면 거의 대전투나 마찬가지지.’

    청룡 길드 헌터들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온갖 길드에서 헌터들이 모이니 그야말로 재앙이 일어났다.

    ‘아니, 지난번에 미국 갔을 때는 별일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때도 이런 사고는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을 사고 대응 관련 팀들을 생각하니 절로 안구가 촉촉해졌다.

    역시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 덕분에 멀쩡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교훈을 다잡고 있는데, 저 먼 곳에서 커다란 비명이 울렸다.

    “아이고, 내 허리!”

    “허 과장! 괜찮아? 이걸 어쩐다?”

    환경 미화팀에서 ‘허 과장’이라고 불리는 중년 남성이 허리를 붙잡은 채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부상이었다.

    김화순 팀장이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응급팀 불러와서 병원 보내요! 허리에 충격 가지 않게 조심히 부축하고! 남은 인원은 청소 계속 진행합시다!”

    잠시 후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허 씨는 허리를 삐끗한 것뿐일 뿐, 디스크가 터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디스크가 아니라니 불행 중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도 잠시였다.

    과장 직급 하나가 빠지자 상황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어졌다.

    ‘아니, 행사 진행팀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이 사람들 사고 치는 거 안 말리고!’

    희나는 마음속으로 진행팀의 무능을 잔뜩 탓했다.

    ‘우리 길드 헌터들, 강하지 않나? 사고 치는 놈들은 그대로 붙잡아서 꽁꽁 묶어 두면 안 돼?’

    답지 않은 과격한 발상까지 하며 손을 바삐 놀리고 있을 때였다.

    “어? 언니! 여기 있었구나!”

    막 하교한 듯, 교복을 입은 권다혜가 희나를 향해 반갑게 뛰어……

    “으악! 이게 뭐야!”

    ……오지는 못했다.

    권다혜는 희나가 치우고 있는 갈색 물체에 질겁했다.

    “이거 똥 아니에요? 어떤 미친놈이 건물 안에 똥을 싸질러 놨지?”

    “똥 아니야. 생긴 게 좀 변 같긴 한데…… 이거 진흙이야.”

    희나는 허허 웃으며 넓적한 삽으로 진흙을 퍼내 쓰레기통에 담았다.

    권다혜는 잠시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이런 걸 언니가 왜 하고 있어요?”

    “미화팀 일손이 부족해서 돕는 거야. 내가 돕겠다고 했어. 친하기도 하고, 예전에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데…….”

    “이런 건 밥 먹으면 금방 나아져! 한국인은 밥심이지!”

    권다혜는 희나가 정말 ‘밥심’ 스킬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으므로, 이 말을 빈말이라고 생각했다.

    “어휴. 다른 사람들도 꼴이 말이 아니네? 이럴 게 아니라…… 나도 도울래요!”

    “아냐. 어린이 청소년은 이런 일 하는 거 아냐.”

    이 일은 청소계의 프로페셔널이나 맡을 수 있는 아주 어렵고 위험한 임무였다.

    하지만 권다혜는 열네 살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이 어른의 말을 들을 리 없다.

    “그래도 도울 거예요! 저거 봐, 호출기 울리는 거! 계속 가서 청소해야 한다는 뜻 아니에요? 이러다가 쓰러져요!”

    “아니야. 너까지 청소할 필요는 없……!”

    “청소 안 할 거예요. 제가 잘하는 거 해야죠.”

    권다혜는 이런 일들은 힘 좋은 상급 헌터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투덜거리며 능력을 개방했다.

    “어? 어어? 이거 능력치가 빵빵하게 오르는데?”

    권다혜의 버프를 받은 건 희나만이 아닌 듯, 주변에 있던 미화팀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팀원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높아진 스탯을 활용하여 더욱더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 고마워, 다혜야!”

    희나는 어린 S급 버퍼에게 고마움을 담아 빙그레 웃어 주었다.

    권다혜는 민망한 듯 큼큼, 헛기침을 하다가 척 하고 손가락을 올렸다.

    S급 버퍼의 특수 능력인지, 권다혜는 본능적으로 전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능력치 상승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 문제가 있어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요!”

    역시, S급 버퍼의 눈에도 이곳은 치열한 전투 현장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듯했다.

    권다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언니, 언니는 저랑 따로 팀을 나눠서 다니도록 해요.”

    “다시 버프 갈게요!”

    권다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뜨고, 스킬이 활성화되었다.

    <대청소(A++, 버프 효과 유지 중): 청결이야말로 살림의 기본 중 기본. 반경 20m 이내의 오염물을 싸그리 제거한다. 그러나 대청소는 품이 많이 드니 가끔씩만. 액티브 스킬. (현재: 스킬 사용 가능)>

    대청소 스킬 설명 창 아래로 부가 스킬들도 떴다.

    <-쓰레기 치우기: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한다. (2회 사용 가능)

    -바닥 닦기: 지면의 오염도를 조절한다. (2회 사용 가능)

    -공기 정화: 청정한 공기를 공급한다. (4회 사용 가능)>

    부가 스킬들은 대청소 스킬을 세분화한 하위 스킬인 만큼 여러 번에 나누어서 쓸 수 있었다.

    희나는 ‘쓰레기 치우기’ 스킬을 사용하여 엉망이 된 회의장 내부를 치웠다. 쓸모를 잃고 나동그라져 있던 부서진 물건들이 싹 사라졌다.

    연이어 ‘바닥 닦기’ 스킬을 사용하여 그을음 자국으로 얼룩덜룩한 바닥을 말끔하게 청소했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회의장은 말끔하게 원상 복구되었다.

    ‘물론 망가진 비품들은 다시 채워 넣어야 하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권다혜가 신경질적으로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아오! 헌터들 미친 거 아니에요? 다섯 살짜리 내 사촌 동생도 이렇게 사고는 안 치는데.”

    “그래도 네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어. 우리 S급 버퍼님 아니었으면 진작 다 쓰러졌을 텐데.”

    “흐, 흥……! 별말씀을.”

    “진짜야.”

    청소하느라 꼴이 엉망만 아니었다면 다혜를 꼭 안아 주었을 것이다.

    치우기 곤란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장은 희나의 대청소 스킬로 치우고, 나머지 현장은 환경 미화팀원들이 처리한다.

    이게 바로 권다혜의 전략이었다.

    버퍼인 권다혜가 있으니 희나는 며칠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대청소 스킬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언니랑 붙어 다닐 수 있으니까 이득이고.’

    권다혜는 씰룩거리는 입술을 애써 진정하며 희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개운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좋았다.

    ‘거기다 오늘 일 끝나면 특별히 맛있는 걸 해 준댔어!’

    희나가 해 준 밥을 떠올리자 절로 혀 아래에 단침이 고였다.

    ‘희나 언니 밥은 그냥 맨밥만 먹어도 맛있는데…….’

    그런데 평소보다 더 맛있는 밥을 해 준다고 공언했으니…… 대체 얼마나 환상적인 음식이 나올지 벌써 심장이 두근거렸다.

    “끙차.”

    한숨 돌리나 싶을 때쯤 되니, 호출기가 다시 울렸다.

    건물 로비에 큰 문제가 생겨서 희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무릎을 짚은 채 있던 희나가 허리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아무리 버퍼의 도움이 있다지만, 쉼 없이 스킬을 펼치려니 심리적 피로감이 컸다.

    하지만 희나는 티 내지 않고 씩씩하게 외쳤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끝나. 다혜야, 우리 힘내자!”

    발을 재게 놀려 로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인 출입을 제재해서 후속 처리팀들만 오가게 되는데, 아무래도 로비는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공간이다 보니 그럴 수 없었던 듯했다.

    “잠시만, 조금 비켜 주세요. 아앗, 죄송합니다. 네네, 네.”

    희나는 간신히 커다란 헌터들을 제치고 사건 현장(?)에 진입했다.

    “아이고. 엉망이네, 아주.”

    1층 로비는 건물의 얼굴이나 다름없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청룡 길드 로비는 지금 완전히 먹칠이 되어 있었다.

    이상한 냄새까지 폴폴 나는 게, 하위 스킬을 사용할 필요 없이 그대로 대청소 스킬을 사용해야 할 판이었다.

    “완전 엉망이다, 그치? 버프 한 번만 더 걸어 주……, 어라?”

    희나는 뒤따라왔을 권다혜에게 말을 걸려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얘가 어디 갔지?”

    고개를 휘휘 돌리는데 저 한구석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게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헌터들 중심에 권다혜가 끼어 있었다.

    “그쪽이 이번 S급 버퍼?”

    “나랑 악수 한번 해 봅시다!”

    “크라겐 길드 임원입니다. 며칠 전에 지원 요청했는데요, 승낙 부탁드립……!”

    다들 사탕에 꼬인 개미처럼 권다혜에게 들러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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