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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85화 (185/228)

던전 안의 살림꾼 185화

* * *

희나는 SNS에 올라온 파비안의 근황을 훑었다.

“파비안은 잘 지내고 있나 보네요.”

이번 일로 ‘파비안 앳킨스’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난생처음 SNS 계정을 만들고 팔로우까지 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 스타답게 피드를 굉장히 재미있게 꾸미는 편이었다.

이런 데에 문외한인 희나마저 매일매일 게시글을 확인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여긴 또 어디래? 엄청 예쁘다.”

방금 막 올라온 영상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 알람이 띠롱띠롱 울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희나는 당황하여 휴대전화를 떨궜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는 쉼 없이 알람을 띄웠다.

어찌나 정신없이 울리던지, 종래에는 기기가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확인해 보니 방금까지 보고 있던 SNS 앱 알람이었다.

희나는 간신히 애플리케이션 알람을 끈 후, 사태를 확인했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희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헉, 이게 뭐람?”

분명히 팔로잉 1, 팔로워 0이던 계정이었다.

그저 파비안 앳킨스의 근황을 구경하는 용도로 쓰는 계정이라 프로필 사진도 없었고, 아무런 게시글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이 계정의 팔로워가 순식간에 수천이 되어 있었다.

‘헉. 아니…… 실시간으로 숫자가 오르고 있잖아?’

이 속도로 오르다가는 팔로워가 만 명이 넘어 버릴지도 몰랐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희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정황을 파악하기까지는 그닥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악! 파비안 앳킨스!”

희나는 여전히 로켓처럼 치솟고 있는 팔로워 수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파비안 앳킨스의 공식 계정은 아무도 팔로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오늘.

파비안 앳킨스의 공식 계정의 팔로잉 수가 ‘1’로 늘어났다.

바로 게시글 하나 없는 텅 빈 희나의 계정이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이게 나인 걸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거야?’

이것도 파비안 앳킨스의 탁월한 ‘감’인 것일까?

그는 이 계정이 희나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 다이렉트 메시지로 ‘Hello Hee!’라는 문구를 보내기까지 했다.

아무튼, 파비안의 팬들이 공식 계정 팔로잉 숫자 변화를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 결과, 그들은 파비안이 팔로우한 ‘1’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너도나도 희나의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아니, 호기심에 한번 구경하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볼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왜 계속 늘어나는 건데?”

심지어 이 일은 한국 커뮤니티에서까지 화제가 되었다.

제목은 ‘파비안 앳킨스가 팔로우한 계정의 정체는?’으로, 게시글에선 온갖 말도 안 되는 추측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퇴근하고 저녁 밥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 희원은 배를 잡고 웃었다.

“너도 인플루언서? 이런 거 해 보는 건 어때? 미국에서도 유명했잖아. 의외로 재능 있을지도?”

희원의 뒤에서 바둑이가 잎사귀로 짝짝 손뼉을 쳤다.

오색이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날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박대박」

이 상황을 걱정스럽게 받아들이는 건 강진현뿐이었다.

“계정을 삭제하는 건 어떻습니까?”

희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정 삭제는 안 하려고요.”

“어째서입니까?”

“처음에야 깜짝 놀라고 어쩔 줄 몰랐는데, 지금은 이게 꽤 재밌게 느껴져서요.”

희원의 말대로 희나는 의외로 이런 데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이런 익명의 관심이 무작정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계정에 제 개인 정보가 올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슬쩍 떠보듯 물어보니, 강진현의 얼굴에 고민이 스쳤다.

‘고민하는 걸 보면 영 위험한 일은 아닌가 봐.’

반짝거리는 희나의 눈을 본 강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될 건 없지요.”

그러면서 정체가 알려지면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 개인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며 몇 번이고 잔소리를 했다.

희나는 냉큼 대답했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 * *

“흐음.”

희나는 폭신한 침대에 누운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만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희나를 팔로우했다.

이들이 희나를 팔로우한 까닭은 파비안 앳킨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테다.

‘그래도…… 이왕 보는 사람이 생겼는데, 뭔가 하고 싶네.’

그런 생각을 한 자신조차 깜짝 놀랄 만큼 대범한 욕구가 뇌리를 스쳤다.

“와, 나. 진짜로?”

희나는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맞은편 화장대 거울을 보았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익숙한 얼굴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희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듯 중얼거렸다.

“희나야, 너 의외인 점이 꽤 많구나?”

먹고살기 바빠 언제나 몸을 바짝 움츠린 채 살았다.

별달리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조용하고 평범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건재하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이 가시고 나니 가끔 이렇게 예상치 못한 면면이 불쑥 튀어나온다.

의외로 대범한 부분도 있었고, 가끔은 막 나가기도 했다.

‘거기다 남들 시선이나 관심이 영 부담스럽지만은 않단 말이지…….’

희나는 미국에서 받았던 엄청난 관심을 떠올리며 킥킥거렸다.

희원 말대로 정말로 체질일지도 몰랐다.

이럴 때마다 희나는 그런 자신이 낯설면서도 반갑게 느껴졌다.

진짜 ‘나’를 알아 가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 사는 거 너무 재밌다!”

심지어, 잘생긴 데다 능력 있기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남자를 연인으로 두기까지 했다.

‘회사는 끝내주고, 오빠도 안전하고, 진현 씨는 멋지고 다정해.’

거기다 귀여운 반려동물과 싱싱한 반려식물까지.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완벽한 삶이었다.

쥐구멍에 볕 들 날 온다고, 인생이 이렇게까지 바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열심히 살아온 노력의 대가라기엔 과분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폭신한 베개를 꼭 껴안고 실실 웃음 짓고 있는 참이었다.

똑똑.

묵직한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희나 씨.”

“진현 씨?”

희나는 껴안고 있던 베개를 내팽개치고는 문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잠깐만요!”

잠시 화장대 거울 앞에 들러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낯빛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쩐지 푸석하고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 급하게 립 케어 제품을 문질러 발랐다.

색깔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입술에 윤기가 도니 한결 생기 있어 보였다.

허둥지둥 방문을 열자마자 강진현의 얼굴이 보였다.

희나의 입이 헤 벌어졌다.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진현 씨, 어디 가요?”

그는 대부분 전투복 아니면 편안한 실내복 차림으로 다녔다.

그런데 오늘의 그는 아주 색달랐다.

면바지에 깔끔한 셔츠를 차려입은 모습이 굉장히 세련돼 보였다.

편안해 보이면서도 슬쩍 격식을 차린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희나의 반응에 강진현이 고개를 모로 틀었다.

“이상합니까?”

“아뇨. 엄청…… 엄청 멋져요!”

희나는 저도 모르게 엄지를 척 세워 칭찬했다.

이에 강진현의 광대가 조금 씰룩거렸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에요? 이렇게 멋있게 입고?”

희나의 질문에 강진현이 등 뒤에 숨겨 두었던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노란 튤립 한 송이였다. 귀여웠다.

“데이트 신청하러 왔습니다.”

“데, 데이트?”

희나는 조금 벙한 상태로 중얼거렸다.

강진현은 조금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첫 데이트 신청은 제대로 하고 싶어서……. 너무 급작스럽습니까?”

* * *

“와…….”

희나는 탁 트인 도시의 전경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지금 희나가 있는 곳은 호텔 최상층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이런 곳은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하고, 그렇지 않아요?”

심지어 그냥 홀도 아니고 이런 식의 프라이빗 룸이라면, 값은 제쳐 두더라도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제가 오늘 시간 안 된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다음에 또 예약하면 되지요.”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해요?”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강진현은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희나에게 의자를 빼 주었다.

희나는 그가 빼 준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하긴, 이 사람은 S급 헌터지.’

그가 강력한 헌터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품행이 워낙 소탈하다 보니 그가 이런 근사한 레스토랑쯤은 밥 먹듯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깜빡깜빡하곤 했다.

“이런 곳에 올 줄 알았으면 좀 더 차려입고 올 걸 그랬어요.”

희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한 원피스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예쁘긴 했지만 이런 장소와 어울리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강진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주 예쁩니다. 굉장히 어울려요. 희나 씨에게 부담감을 주려고 이런 곳에 온 게 아니니, 편안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알았어요.”

희나는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가득 요리가 채워졌다.

원래대로라면 코스에 따라 식전 요리부터 본 식사까지 순서대로 나왔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강진현은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기 원치 않았으므로, 모든 음식을 한꺼번에 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와, 맛있겠다. 담음새도 모양도 다들 너무 예쁘고 신기해요.”

희나는 화려한 플레이팅에 감탄하며 음식을 조금씩 덜어 먹었다.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눈앞에서 별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신기한 맛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식재료, 처음 경험해 보는 식감, 조리 방식들……. 감탄이 절로 났다.

희나는 한참 동안 음식을 맛보다가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그런데 진현 씨 입맛에는 이거, 안 맞을 텐데요.”

강진현은 예민한 미각 때문에 희나의 손길이 닿은 요리밖에 먹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이런 고급 요리는 아무 의미 없을 게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강진현은 만족스레 웃으며 희나에게 식사를 권했다.

“희나 씨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곳에 자주 다니도록 하죠. 저 때문에 매번 희나 씨가 음식 신경 쓰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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