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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77화 (177/228)

던전 안의 살림꾼 177화

하지만 희나는 오색이의 지적을 귀찮게 여긴 듯했다.

“에잇, 차림새가 불량하다니! 나 안에 옷 입었어!”

그러면서 목욕 가운을 휙 젖혀 보였다.

예상치 못한 노출에 오색이는 안테나를 쑥 집어넣었다.

「꾸엙[email protected],@」

「내 눈! 내 눈! x_x」

「MY EYES! MY EYES! X(」

오색이의 텍스트 비명에 희나는 당황해서 달팽이를 탈탈 흔들었다.

“아니, 나 안에 옷 입었어! 보라고! 젖어서 걸쳐 입은 거라고!”

오색이는 급하게 흥분하고, 급하게 당황했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심경을 가라앉혔다.

「휴;」

“무슨 일 있었는지 나중에 한꺼번에 설명해 줄 테니까, 이제 가만히 있자?”

「오케이. 본론 고고씽ㅠ」

“홈 스위트 홈 안전 구역 말이야.”

「ㅇㅇ.」

“안전 구역 안에 있으면 거의 100%의 확률로 몬스터들이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잖아.”

「ㅇㅇ.」

“그럼 안전 구역 선 안으로는 독 같은 것도 못 들어와?”

희나의 질문에 오색이가 안테나를 기역 자로 까딱거렸다.

「99.9% 확률로 대기 정화 프로그램 가동됨.」

엄청나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현 씨! 우리 예상대로예요! 이러면 독 던전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겠어요!”

독 던전은 반경 10m의 돔 형태의 유리 온실 모양이라고 했다.

던전치고는 굉장히 협소한 크기였다.

‘즉, 내 대청소 스킬 반경에 다 들어오고도 남는 크기라는 뜻!’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청소 스킬은 여러모로 쓸 일이 많구나!’

대청소는 반경 20m 이내의 오염물을 모두 제거하는 스킬이다.

여기서 오염물이란 희나의 인지에 따라 굉장히 다양해질 수 있었다.

단순한 쓰레기에서 몬스터…… 여기에 독까지!

“이대로 마당 나가서 대청소로 싹 갈아엎어 버리면 되겠네요!”

희나가 씩씩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의욕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 뭔 일 있음?」

전후 사정을 모르는 오색이만 동그란 머리통을 갸웃거릴 뿐이었다.

“나중에 한국 오면 다 설명해 줄게. 일단 가요, 진현 씨!”

희나는 독 던전의 정보를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을 열자마자 새카만 안개가 자욱이 깔린 게 보였다.

하늘은 마치 일몰 직전처럼 새빨갰고, 유리 온실은 장미 넝쿨로 가득했다.

“저게 그 독 장미인가 봐요.”

검은 독무 사이로 그보다 더 새카만 장미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온실 한가운데 꼿꼿이 머리를 쳐들고 있는 유일한 장미 한 송이는 꽃이라기보다는 나무처럼 보였다.

장미에서 뻗어 나온 가시넝쿨은 ‘홈 스위트 홈’ 마당까지 퍼져 있었다.

강진현이 나직하게 말했다.

“가시에 독이 서려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하긴. 오색이가 대기 정화 얘기만 했으니…… 가시엔 독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돌 만 SSS급 신문지를 움켜쥐었다.

“그럼 시간 없으니까 대청소부터 할게요.”

참고로 신문지는 스킬 시전에 하등 연관이 없었지만, 없으면 허전했다.

‘휘두를 때 은근히 손맛이 있단 말이야.’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스킬이 발동되었다.

‘이곳에 깃든 독을 죄다 없애 버리겠어!’

의지를 품자마자 우우웅, 피부를 감싼 공기가 잘게 진동했다.

이윽고 희나를 중심으로 강렬한 돌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새카만 장미 넝쿨이 뽑혀 나갈 듯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 던전의 보스 격인 검은 장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커다란 꽃잎이 뿜어져 나온 기운에 저항하듯 이리저리 펄럭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한낱 부동형 식물 몬스터 따위가 S급 네크로맨서의 독 장판조차 이겨 낸 대청소 스킬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샤아아……!

희나를 둘러싼 풍경이 잠시 흐릿해지는 듯하다, 일순간 또렷해졌다.

대청소 스킬에 의해 독기가 빠져나가며 빠져나갔던 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와……!”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해가 드러난 것 같기도 했고, 흑백이었던 세상이 순간 총천연색으로 뒤바뀐 것 같기도 했다.

스킬의 여파로 눈앞이 핑 도는 와중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희나 씨.”

강진현은 비틀거리는 희나를 부축해 안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 온 커다란 주먹밥 한 덩이와 스태미나 포션을 건넸다.

“고마워요.”

희나는 비교적 금방 기운을 차렸다.

밥심 스킬과 고등급 스태미나 포션 덕이었다.

희나는 입가를 훔치며 강진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까는 되게 으스스해 보였는데…… 여기 정말 예쁜 곳이었네요.”

감상에 잠긴 희나와 달리, 강진현은 희나의 안색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희나 씨, 몸은 괜찮습니까?”

“살짝 어지럽긴 했는데 이젠 괜찮아졌어요. 곧바로 밥도 먹고 포션도 먹어서요.”

“정말이지요?”

“그럼요. 처음에야 뭣도 모르고 사용해서 기절했지, 이젠 요령 붙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힘들면 꼭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강진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희나가 조금이라도 피곤하다고 말하면 그대로 둘러업고 다닐 기세였다.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나저나 진현 씨도 여기 온실 풍경 좀 보세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희나는 강진현의 단단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강진현은 그제야 한숨과 함께 눈앞의 풍광을 살폈다.

“……그렇군요. 예쁘네요.”

한 송이 붉은 장미를 제외하고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초록이 존재하다니, 신기하지 않아요? 정말로 청량해요!”

희나는 작게 감탄하며 온실을 둘러보았다.

“너무 예쁘네요. 세상에. 저 빨갛고 커다란 장미 송이 좀 봐요. 아까는 으스스하게 보였는데 정화하니까 되게 예쁘다.”

몇 번이나 예쁘다, 예쁘다 중얼거리자 강진현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었다.

“……따다 드릴까요?”

“예? 뭐, 뭐라고……!”

미처 반문하기도 전에, 그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어, 어어?”

희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적장의 목을 딴 후…… 아니, 장미를 꺾은 후였다.

희나의 발밑에 커다란 장미 한 송이가 놓였다.

“여기 있습니다. 희나 씨가 모두 정화해 둔 상태라, 아무런 독도 없었습니다.”

강진현이 뿌듯한 표정으로 그 옆에 섰다.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희나는 땀을 삐질 흘리며 꽃송이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고, 고, 고마워요. 진현 씨가 따다 준 꽃이라 그런지 더 예쁜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어쩐지 강진현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 것 같은 건 희나의 착각일까?

“이건…… 진현 씨가 준 거니까 인벤토리에 소중하게 보관해 둬야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보니, 꽤 의미 있는 장미였다.

연인에게 처음 받는 꽃 선물 아닌가?

‘어머!’

뒤늦게 희나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그렇게 슬슬 핑크빛 기류가 흐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뒷주머니에 꽂아 둔 휴대전화에서 알람이 삐삐 울렸다.

“아악!”

희나는 화들짝 놀라 알람을 해지했다.

혹시나 자선 파티 전에 제때 일을 처리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에 설정해 둔 알람이었다.

“지, 진현 씨,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빡빡해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습니까?”

“네, 네. 벌써 40분 가까이 지났어요.”

목욕을 한 시간 넘게 하면 의심을 사는 법이다.

희나는 허둥지둥 거대한 장미꽃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빨리 돌아가요. 민아 언니가 욕실 문 열어 볼라.”

성화에 강진현이 다소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짧은 데이트 아닌 데이트도 끝이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희나는 물에 젖은 머리를 탈탈 털어 말리며 욕실에서 나왔다.

“와! 목욕 어어엄청 오래 했네!”

엄청나게 부자연스러운 대사와 함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민아는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희나의 발연기를 눈치채지 못했다.

“흠……. 두 개라니. 이건 예상왼데.”

“언니,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어? 나왔냐? 선물 왔다, 희나야.”

예상치 못한 단어에 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물이요?”

“그래.”

우민아가 몸을 틀어 침대 위에 놓인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보여 주었다.

두 개 모두 아주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야, 야. 빨리 열어 봐. 뭐가 뭔지 궁금하니까!”

성화에 머리 말릴 새도 없이 허겁지겁 상자 뚜껑을 열었다.

“우와.”

열자마자 희나는 감탄을 내뱉었다.

두 상자에는 각각 푸른색, 노란색의 드레스가 담겨 있었다. 어울리는 액세서리도 함께였다.

뭣 모르는 희나가 보기에도 둘 다 ‘나는 아주 비싸요’ 하고 소리치는 것 같은 디자인에, 재질이었다.

오늘 희나가 판 핫도그 총매출액의 몇 배는 될 듯 보였다!

“이거, 대체 누가 보낸 거죠? 못 받겠다고, 환불해 달라고 말해야……!”

“진정해, 진정!”

우민아가 희나를 애써 진정시켰다.

“오늘 낮에 했던 건 소꿉놀이야. 오늘 저녁 파티 때 모금할 금액이 훨씬 더 클걸. 돈 많은 놈들이 꽤 참석했나 보더라고.”

물론 좋은 의도로 참석한 사람도 있겠지만, 희나가 궁금해서 온 이들이 더 많으니 이 정도 차려입어 줘야 한다나?

“거기다 청룡 길드 이름이 있지, 이럴 땐 제대로 입고 나가 줘야 우리 길드 면이 산다고.”

설명에 희나는 입을 쩍 벌렸다.

“설마 이거, 우리 길드에서 돈 낸 거예요?”

“청룡의 간판인 강진현이 냈으니까 대충 비슷하게 퉁 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강진현이 냈다는 소리였다.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진현 씨가요? 두 벌 다요?”

그러자 우민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내가 알기로는 한 벌만 주문했는데…… 왜 두 벌이 도착했을까?”

미스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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