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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76화 (176/228)

던전 안의 살림꾼 176화

강진현의 착각을 정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하하하! 하하하! 푸하하하!”

다만, 그 오해에 웃음이 터져 버린 우민아를 진정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야! 강진현! 경각심이 엄청난데? 크흐흐, 푸흐, 흐흐흐! 이러다 희나 시집 흐, 갈, 때도, 푸하, 네 허락 받…… 으하하! 받으라고 하겠네!”

“희나 씨 결혼은 희나 씨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데, 제 허락이 왜 필요합니까?”

돌아오는 진지한 대꾸에 우민아는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희나만 가슴 졸였다.

‘이러다 우리 사귀는 거 들키는 거 아니야?’

물론 우민아 정도 되는 가까운 지인이라면 희나가 강진현과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상관없긴 했다.

적어도 강진현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희나는 이 상황에 조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나름 사내 연앤데, 눈치는 좀 봐야지. 사귄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관계가 좀 더 무르익기 전까지는 남들에게 밝히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는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강진현이 워낙 유명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급작스러운 소식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물론 청룡 길드 사람들은 놀라기는 할 것이다.

둘의 열애설이 아니라 ‘둘이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라는 사실에 말이다.

몇몇 사람들은 환호를 올리기도 할 테다.

예를 들어 ‘아직은 둘이 썸 타는 중이다’에 내기 돈을 걸었던 소수의 헌터들과 길드 직원들이라든가…….

참고로 대부분이 ‘이미 저 둘은 비밀 연애 중이다’에 돈을 걸었기에 배당금이 아주 높았다.

희나로서는 알 리 없는 뒷이야기였다.

“그, 그래서 진현 씨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

껄껄 화통하게 웃는 우민아를 뒤에 둔 채, 희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애썼다.

“자선 파티 시간까지는 꽤 남지 않았어요?”

“아. 의도치 않게…… 좋지 않은 소식을 들어서요.”

그제야 우민아가 웃음을 그치고 귀를 쫑긋 열었다.

“무슨 일인데?”

“근방 독 던전에서 나오는 독기가 짙어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정화 작업을 진행해 두었는데, 그게 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고 하는군요.”

희나는 입을 쩍 벌렸다.

“그거, 엄청 심각한 사고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도 자선 행사 때문에 민간인이 잔뜩 모인 상황이었다.

이 엄청난 인원이 독기의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람들한테 알리고 최대한 빨리 조치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주최 측은 이를 비밀로 하고 자선 행사를 강행할 듯합니다. 대신 긴급 대응팀을 파견하여 투입한 상태라더군요. 이런 사태를 완전히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닌 듯합니다.”

“대응팀으로 해결 가능한 상황인가요?”

“일단 내일 낮까지는 정화 장벽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아……. 일단 버텨 보자는 건가요?”

주최 측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파티 참석자들이 빠져나가는 건 둘째 치더라도, 파티가 끝난 후 쇄도할 온갖 정신적 피해 보상 청구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미국은 고소의 나라니까 그렇겠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상황인데, 괜히 문제를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한편 문득 떠오른 의문에 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행사 참가자들이 떠나고 나도 여기에는 거주민들이 남아 있잖아요.”

“주최 측은 독기가 걷힐 때까지 다른 곳에 주민들의 거처를 마련하려는 듯 보입니다만…… 쉽지는 않을 듯하더군요.”

우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야.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 마을은 밑바닥 중의 밑바닥 인생들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불법적인 일에 얽혀 주 정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거주민들이 주최의 설득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러려나요…….”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의 이면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모른 척 두기는 찜찜한데.”

희나는 끙,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뭐…… 여기 사람들한테 해독 포션이나 좀 풀고 가는 수밖에.”

우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가 다였다.

“당장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우리가 정화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이트 외부까지 독기가 자욱해 던전 진입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던전 자체는 엄청 작아서 쉽게 처리 가능한 곳인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이 꼴이 됐지.”

듣기로 해당 던전은 반경 10m가 조금 넘는 둥그런 유리 온실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중앙에 있는 포이즌드 로즈(poisoned rose)만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각지대였고, 아무도 던전을 관리하지 않았다.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독기가 10km 바깥의 마을을 덮칠 때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던전에 입장하려면 10km의 독 안개를 헤쳐 가야 해. 그건 천하의 강진현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거기다 던전에 입장한다 치더라도, 독 계열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정화 능력자가 필요했다.

‘정화 능력이라면 어쩌면 나도…….’

……여기까지 생각하던 희나의 고개가 천천히 기울었다.

무엇인가 눈앞에 떠오른 탓이다.

늘 그렇듯 시스템 창이었고, 그 내용은……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아니, 이런 반응은 좀 새로운데.’

좋은 생각을 떠올리라고 강제로 종용하는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시스템이 뭘 원하는지는 알겠어.’

시스템은 희나에게 이 마을의 불행을 해결해 주는 게 어떻겠느냐, 권유하고 있었다.

희나는 흠, 하며 생각에 빠졌다.

시스템이 불가능한 일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힘들어 보여도 아슬아슬하게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를 던져 주었다.

‘이번엔 퀘스트가 아니라 단순 권유지만, 해결 난이도는 비슷하겠지.’

이것도 희나의 능력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분명했다.

‘이렇게까지 등 떠밀지 않아도 고민해 봤을 일이긴 해.’

자신의 능력으로 도울 수는 없을지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였으니까.

때맞춰 시스템 창이 희나를 충동질…… 아니, 응원했다.

어째, 시스템 메시지가 부쩍 격의 없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희나만의 착각일까?

의문을 뒤로한 채, 희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민아 언니, 우리 자선 파티는 언제 시작한다고 했죠?”

“두 시간 정도 후에 시작할걸.”

“그럼 시간이 충분한 것 같…… 아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희나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 * *

“진현 씨! 빨리요!”

희나는 목욕 가운을 입은 채 강진현에게 달려들었다.

축축한 머리에 흰 가운을 입은 희나의 모습에 강진현의 낯이 붉어졌다.

“희, 희나 씨! 이…… 이게 무슨 차, 차, 차림!”

낯이 붉어진 건 물론이고, 말까지 엄청나게 더듬었다.

“아, 아직, 마, 마음의 준비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30분이면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한 거 아니에요?”

“그, 그게!”

“아까는 도와주겠다고 말했잖아요?”

그제야 강진현은 대화가 헛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제가 말입니까?”

“네! 제가 독 던전 정화하겠다고 하니까, 혼자는 못 보낸다면서 같이 가야겠다더니!”

“아.”

강진현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 허망한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데 차림이 왜……?”

“아. 이거요?”

희나는 그제야 목욕 가운을 입은 제 모습이 민망한지 뺨을 긁적였다.

“민아 언니한테 목욕 중일 거라고 미리 얘기해 둬서요. 기척 없는 거 들킬까 봐 샤워기 틀어 놓고 왔어요.”

그 상태로 ‘홈 스위트 홈’ 현관문을 사용해 강진현의 숙소에 도착한 거고 말이다.

한편, 강진현은 상당히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고 머리까지 적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에 희나의 낯에 민망한 기색이 스쳤다.

“이, 이건 제가 샤워기 설정을 잘못 맞춰서 물벼락을 맞는 바람에…….”

젖은 옷이 얇아 속이 비치는 터라, 부랴부랴 목욕 가운으로 젖은 옷을 감췄다.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올 여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희나도 여기까지 생각하곤 아, 하고 손을 휘저었다.

“안에 옷 입고 있어요! 저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다급한 변명에 강진현이 반쯤 넋 나간 표정을 했다.

“네……. 다행,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정신을 빼놓을 수 없었다.

희나가 대뜸 손목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가요. 독 던전 클리어해야죠. 이왕 좋은 일 하기로 한 거, 끝까지 책임지는 게 좋겠죠?”

“네, 네. 그, 그렇습니다.”

빙긋이 웃는 그 미소를 강진현이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색이가 둘을 반겼다.

「방가방가! 하숙인 올만!」

“응, 오색아. 진현 씨는 오래간만에 보지?”

「ㅇㅇ! 반가움!」

“일단 인사는 나중에 나누고…… 나 지금 궁금한 게 있는데, 뭘 좀 물어도 돼?”

하지만 오색이는 희나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안테나를 회초리처럼 휘둘렀다.

「그나저나♨」

「집주인, 차림새가 다소 불량♨」

「남녀칠세부동석♨」

이름하여 유교 달팽이의 등장이었다.

오색이는 축축하게 젖은 머리에, 목욕 가운을 입은 채 외간 남자의 손목을 붙잡고 어딜 가느냐며 희나의 발목에 매달렸다.

‘역시…….’

강진현은 자신만 이상한 오해를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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