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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74화 (174/228)

던전 안의 살림꾼 174화

촬영 스태프는 잠시 본분도 잊고 입을 쩍 벌린 채 감탄했다.

“와아…….”

스페셜 주방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스트가 신들린 듯한 손길로 고기를 굽고, 잘라 내고 있었다.

‘거기다 고기를 가위로 자를 줄이야.’

그로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익숙하다 못해 프로페셔널해 보이기까지 하는 분위기 때문일까? 고기를 석둑석둑 잘라 내는 손길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게스트의 첫인상은 ‘그저 선하고 예쁘장해 보인다’ 정도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게스트에게선 묘한 카리스마가 흘러나왔다.

“식기 전에 드세요! 접시 돌려요!”

단호한 명령에 진행자가 홀린 듯 움직였다.

손수 접시를 옮겨 스태프들에게 건네기까지 했다.

‘허. 내가 헛것을 보나?’

스태프는 눈을 비볐다.

진행자는 카메라 앞에서는 유쾌하기 그지없었으나, 실제로는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이였다.

‘저 인간이 순순히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그것도 고기 한 점 더 얻어먹겠다고?’

게스트가 고기에 약이라도 뿌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할 무렵이었다.

“먹으면서 합시다!”

스태프 앞에도 고기 접시가 배당됐다.

그는 재빨리 포크를 집어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와.”

그리고 확신했다.

‘고기에 약 뿌린 게 맞았다.’

그렇지 않으면 고기에서 이런 맛이 날 리가 없었다.

‘입안에서 녹잖아? 액첸가?’

목장에서 풀을 뜯으며 뛰노는 소에 잠시 빙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자유와 행복의 맛이 났다.

‘소처럼 울고 싶어…….’

감동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릇이 텅 비어 있었다.

주변 동료들도 황홀한 표정으로 입안의 고기를 씹었다.

다들 순식간에 사라진 고기의 행방을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누군가는 되새김질이라도 하고 싶다며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스태프 또한 그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였다.

“이런 고기를 한 입만 먹게 하는 건 너무 잔혹한 일 아니야?”

수십의 셰프가 엄청난 요리를 해 대는 쇼를 촬영하면서 눈 하나 깜짝해 본 적 없는 스태프들의 부동심이 휘청휘청 흔들렸다.

스태프들이 스페셜 주방을 성난 들소 떼처럼 덮쳐 버릴까, 하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을 즈음.

희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쓰윽 닦아 냈다.

화력 좋은 불 앞에 서 있어서 그런지 피부도 후끈거렸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들 맛있어하네!’

고기를 한 점씩 맛보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없는 피로도 싹 다 풀릴 지경이었다.

‘바로 이거지! 이 맛이지!’

속이 아주 시원했다.

강진현이 저주에 걸린 이후로 일반 헌터들에게 뭘 해 주질 못했더랬다.

거의 3주, 아니, 한 달에 가까운 기간이었다.

자신이 한 음식을 먹고 기뻐하는 걸 보는 것을 좋아하는 희나에게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한 달이었다.

강진현이나 오빠인 희원의 반응도 좋았지만, 일반 헌터들이 보여 주는 호들갑은 또 다른 맛이 있었으니까.

‘아, 갑자기 길드 사람들 보고 싶다. 한국이 그립네. 김치도 먹고 싶고…….’

연신 감탄하며 고기를 주워 먹는 촬영 스태프들을 아련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참가자들이 내게 욕을 잔뜩 들어 먹고 있는 동안, 여기는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군요.”

중간 점검 촬영을 마친 마스터 셰프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사실 고기 굽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고기를 잘 굽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희나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팔짱을 턱 낀 채였다.

마치 희나의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켜보려는 것 같은 포즈였다.

제법 거만한 듯 보였지만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눈은 마치 아이 같았다.

“스킬 쓰고 있는 겁니까?”

“네. 지금 스킬 적용되고 있어요.”

“흠……. 빛이 나고 신기한 소리가 나지는 않는군요?”

희나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저도 각성하기 전에는 각성 스킬은 다 화려한 것만 있는 줄 알았어요. 영상 매체에서는 스킬을 전부 엄청나게 멋진 것만 보여 주니까요.”

“그렇습니까?”

둘의 대화에 진행자가 핀잔 어린 농담을 던졌다.

“마스터 셰프의 레스토랑에는 고등급 각성자들도 많이 방문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몰랐어요?”

마스터 셰프가 픽 웃었다.

“그 인간들이 내 레스토랑에서 횡포를 부린다? 절대 안 되고말고!”

……천하의 고등급 헌터들을 상대로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역시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지금도 어째 인중께를 실룩거리는 게, 당장 고함이라도 칠 것 같은 표정이다.

‘성격 대단하네.’

희나는 혀를 내두르며 집게로 고기 한 점을 집어 내밀었다.

“셰프님도 한 입 하시겠어요?”

마스터 셰프는 자기 코앞에 들이민 고기 조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경계라도 하는 것같이 말이다.

“아무래도 제가 전문 요리사는 아니다 보니 입에 안 차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식재료를 망쳤다고 혼내시진 마시고요. 저는 게스트니까요.”

가장 자신 있는 일 중 하나를 하고 있어서 자신감이 잔뜩 솟기라도 한 걸까?

희나는 슬쩍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방송에 꽤 익숙해지긴 했나 봐. 카메라 앞에서 이런 넉살도 다 부리고.’

한편, 마스터 셰프는 짙은 눈썹 산을 까딱했다.

“그럼, 먹어 보도록 하죠.”

“빨리 먹어요, 셰프! 안 먹을 거면 나 달라고요! 내 입에서 침 떨어지는 거 안 보여요?”

옆에서 진행자가 익살을 부렸다.

그의 채근이 영 귀찮은지 마스터 셰프는 입을 열어 텁, 하고 후다닥 고기를 받아먹었다.

우물우물.

마스터 셰프의 심술궂은 턱이 열심히 움직였다.

“어때요? 맛있지 않습니까? 끝내주죠?”

진행자는 셰프의 반응이 궁금한지 곁에서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고도 고마워서 희나는 진행자의 입에도 고기를 한 점 더 물려 주었다.

“최고입니다! 최고!”

그는 희나가 하사한 고기를 받아먹으며 환호했고, 스태프들은 진행자에게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한편, 마스터 셰프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고기만 씹었다.

‘고기가 질긴가? 왜 저렇게 오래 씹지?’

희나가 내심 의아할 때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건.”

“이건?”

“대체 고기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젠장, 대충 구운 것 같아서 방심했는데! 맛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거지?”

그러면서 서바이벌 참가자들의 주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자식들아!”

그는 쩌렁쩌렁 소리쳤다.

“너희는 다 탈락이야!”

난데없는 선언에 주방이 술렁였다.

“대체 무슨 말입니까, 마스터 셰프?”

“이번엔 또 누가 실수했어? 빨리 자백해!”

“억울해! 왜 나를 보는 건데? 오늘은 아무 짓도 안 했다고!”

……반응을 보니 이런 소리를 한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

“지난번에 했던 스테이크 경연은 다 취소야! 제대로 굽는 놈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군!”

그는 고래고래 고함치며 희나를 손가락질했다.

“다들 하던 일 멈추고 저 고기 맛보고 와!”

* * *

유명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지옥의 셰프’ 방영으로 온, 오프라인이 떠들썩해졌다.

평소처럼 탈락자에 대한 갑론을박, 마스터 셰프의 끔찍한 인성, 참가자들의 화려한 요리 따위가 회자된 게 아니었다.

“그 스킬로 구운 고기 봤어?”

“윤기가 자르르 돌던데. 맛이 대체 어떻길래 천하의 마스터 셰프까지 엄지를 쳐든 거야?”

“참가자 중 하나는 자존심이 상해 울기까지 했다고!”

모두 ‘살림꾼’ 게스트가 선보인 스테이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기가 맛있어 봐야 얼마나 맛있겠냐는 의견, 이건 방송국의 과장한 편집이라는 의견, 천하의 마스터 셰프가 인정할 정도면 진짜라는 의견 등이 뒤섞여 시끌벅적했다.

어찌 되었건, 이 중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이야! 너 완전 슈퍼스타 됐어, 희나야!”

‘손맛’ 스킬을 선보인 희나가 일약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극적인 인기 예능에 출연해서 그런 것일까?

SSS급 신문지로 얻은 유명세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됐다.

상상 이상의 파급력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여겼는지, 미 방송국 측에서는 희나에게 끊임없는 러브 콜을 보냈다.

팔콘 길드, 청룡 길드를 통해 공문을 넣을 정도니…… 그 집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했다.

희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과거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때 내가 왜 나섰을까? 주책이지, 주책이야!”

“스타 기질이 있는 거지! ‘천상의 손’을 가진 이희나 씨!”

“으악! 놀리지 마요!”

우민아의 놀림에 희나는 귀를 가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강진현도 그런 우민아를 막아섰다.

“놀리지 마십시오. 희나 씨가 힘들어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손에서 검은 기운을 피워 내기에 희나는 당황해 등을 콕콕 찔렀다.

“아, 아니. 진현 씨, 진정해요.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돼요.”

“하지만 희나 씨가……”

“괜찮다니까요.”

상당히 수상쩍게 느껴지는 대화였다.

하지만 희나와 강진현 사이는 언제나 유별났으므로, 무슨 변화가 일어났으리라 짐작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아마도.

“거참, 강진현, 깐깐하게 굴긴. 이젠 희나 놀리지도 못하게 하네.”

“예. 못 놀립니다.”

“쳇, 네가 뭐라고…….”

우민아가 투덜거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튼 팔콘 길드가 요청한 일정은 다 끝났어. 이후 일정은 하건 말건 상관없어. 이 말은, 네가 더 하고 싶은 일만 없으면 이대로 한국으로 튀어도 된다는 소리야.”

그러면서 희나에게 태블릿 PC를 건넸다.

“이건 참가 요청 들어온 행사 리스트. 일괄적으로 다 거절해 버릴까 하다가, 내 마음대로 진행하는 건 영 아닌 것 같아서. 확인해 보고 마음에 드는 건 참가해도 돼.”

우민아는 오늘부터 일주일 정도의 여유를 만들어 두었으니 일정 걱정은 말라며 덧붙였다.

희나는 리스트 업한 행사를 찬찬히 읽어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제 집이 슬슬 그리워지기도 하…….”

중얼거리던 희나의 시선이 한곳에서 멈췄다.

“……잠깐. 이것만 자세히 확인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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