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68화
세 쌍의 시선이 희나에게 따가울 정도로 박혔다.
“엘릭서라니? C급 이하로는 아예 남은 게 없다고 알고 있는데?”
우민아의 물음에 대답한 건 한 발짝 늦게 들어온 최상훈이었다.
“요 며칠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걸 보면 정말 막 도착했나 보군?”
“당연하죠. 지금 우리 꼴 안 보입니까? 도착해서 얼굴에 물칠이나 겨우 하고 나온 참인데.”
우민아가 툴툴거리며 사정을 설명해 보라고 재촉했다.
“어, 그게…….”
희나는 무어라 입을 열려다, 응접실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대회 리플릿을 찾아 건넸다.
우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템…… 경진 대회?”
“네. 학회 행사 중에 아이템 경진 대회가 있었어요. 우승 상품이 S급 엘릭서였고요.”
“S급 엘릭서? 그걸 어디서 구했대? 길드장님도 못 구한 걸 어떻게?”
“이번 학회 스폰서를 맡은 팔콘 길드가 비밀리에 하나 보유하고 있었다나 봐요.”
그러면서 대강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파비안 앳킨스라는 사람이 우리 상황을 눈치채고 소문을 퍼뜨렸다.
덕분에 팔콘 길드의 입장이 곤란해졌고, 그 소문을 덮기 위해 S급 엘릭서를 꺼내 든 듯하다.
“…… 그리고 어쩌다 보니, 제가 그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됐어요.”
희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냈다. 투명한 크리스털 병이 손 위에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엘릭서(S): 전설의 영약. 거의 모든 상태 이상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시스템 설명은 몹시 간략했다.
하지만 효능만은 대단했다.
특정 상태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모든’ 상태 이상에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이토록 설명이 짧을 수 있는 것이었다.
퍼센트 수치가 없는 것은 ‘대부분의’ 상태 이상을 완벽히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와……. 타이밍이 이렇게 딱 맞는다고?”
우민아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혹시나 진현 씨한테 쓸모가 있을까 해서 참가한 건데…… 정말 필요했던 것일 줄은 저도 몰랐네요.”
엄청난 우연의 일치였다.
“그, 지난번에 먹었다던 행운의 클로버 주먹밥 효과가 아직 남아 있는 거 아니에요?”
화원호가 입을 쩍 벌리기에 희나는 뺨을 긁적였다.
“제 행운 스탯이 높아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행운 스탯이 얼마나 높길래요?”
다짜고짜 날아온 질문에 얼결에 대답했다.
“대충 60은 넘는 정도……?”
“우와. 나보다 높은데요? 거기다 다른 스탯이랑 비교해서 따지면 가중치 엄청 붙겠는데!”
그러면서 여기서 실질적으로 행운 수치가 가장 높은 건 희나일 거라면서 호들갑 떨었다.
“뭐…… 덕분에 여러분도 만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잘 빠져나올 수 있는 거겠죠.”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자 우민아가 감동이라는 듯 희나를 덥석 껴안았다.
“아이고! 요 예쁜 주둥이! 우리 복덩어리!”
그러면서 사람을 번쩍 들어 올렸다.
“으악! 언니, 진정 좀 해요!”
“크하하!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우민아는 희나가 멀미를 느낄 때까지 비행기를 태워 주었다.
비틀거리던 희나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나서야 분위기는 한결 차분해졌다.
“근데 대체 뭘 출품했길래 1등이나 한 겁니까? 후보가 다들 쟁쟁했을 텐데.”
화원호가 뒤늦게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게. 희나 넌 가진 아이템도 그렇게 많진 않잖아.”
“SSS급 신문지가 있어서 그걸 출품했어요.”
“……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우민아가 귀를 후볐다. 최상훈이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트리플 S급, 맞다. 세계 최초지.”
“신문지가요?”
“암. 무려 SSS급 신문지다. 어때, 이만하면 대회 1등 할 만하지 않으냐?”
그러면서 희나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다.
“희나 씨……. 저를 위해 번거로운 상황까지 감수하시고.”
강진현은 몹시 감명한 듯, 떨리는 눈동자로 희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큰일은 아니었어요. 진현 씨 저주가 걸려 있는데 사람들 주목 좀 받는 게 뭐 대수겠어요?”
희나는 머쓱하다는 듯 뺨을 긁다가 주제를 환기했다.
“어쨌든 엘릭서를 얻었으니까, 이제 진현 씨가 마시기만 하면 되는 거네요.”
손안에 쥐고 있던 크리스털 병을 강진현 옆에 세웠다.
병은 그다지 크지 않아 한 뼘가량 하는 강진현의 반절 정도밖에 안 됐다.
…… 그리고 희나는 뒤늦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챘다.
“진현 씨.”
“예, 희나 씨.”
“이거 다 마실 수 있겠어요? 진현 씨 몸통만 한데…….”
희나는 이런 유의 포션 맛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았다.
한 모금도 안 되는 포션을 먹을 때도 그토록 괴로웠는데, 강진현은 자기 몸뚱이의 절반 정도 되는 용량의 포션을 들이켜야 하는 것이다.
“…… 견뎌 보겠습니다.”
강진현은 비장한 얼굴로 퐁 하고 S급 엘릭서의 뚜껑을 땄다.
그리고 병목을 잡고는 꿀떡꿀떡 들이켜기 시작했다.
“처, 천천히 마셔요! 사레들릴라!”
희나는 강진현이 엘릭서에 잠겨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손을 달달 떨었다.
‘최소 맥주 피처 두 개 정도를 단박에 마시는 거잖아!’
차라리 맥주는 맛이라도 있지, 포션은 맛이 끔찍하지 않은가…… 라고 희나는 전지적 주당 시점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현은 쉬지 않고 엘릭서를 마셨다.
‘S급은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나 봐.’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엘릭서 병 안의 액체가 완전히 바닥났다.
“다 마셨다!”
“해냈다, 해냈어!”
환호성과 함께 사람들은 강진현을 지켜보았다.
강진현은 천천히 크리스털 병을 바닥에 놓았다
엘릭서의 맛이 끔찍하긴 했는지, 낯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괜찮아요?”
희나의 물음에 강진현은 반쯤 넋 나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괜찮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정말로 끔찍했다는 의미렷다.
희나는 주머니를 뒤져 사탕 한 개를 까서 올려놓았다.
“이거라도 먹어요! 입가심하세요!”
“네…… 네.”
강진현은 염치를 따질 정신조차 없는 듯, 그대로 자기 머리통만 한 사탕에다 머리를 처박았다.
“그나저나 뭔가 느낌은 안 와요? 시스템 창에 뭐라고 떠요? 해주되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물으니, 강진현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사탕가루를 소매로 닦아 내며 말했다.
“당장 변화가 보이지는 않습니다마는…… 아니, 시스템 창에 뭔가 떴습니다. S급 네크로맨서가 내린 저주와 S급 엘릭서의 기운이 충돌…… 윽!”
눈앞에 뜬 시스템 창을 읽던 그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희나는 그가 이런 식으로 고통을 표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진현 씨!”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던 순간이었다.
금빛 기운이 강진현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 빛은 폭발하듯 순식간에 크기를 키웠다.
“윽!”
마치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방 안의 사람들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수 초가 지난 후였다.
“눈부셔…….”
희나는 망막에 남은 빛의 잔상을 지워 내려 눈을 비비려다, 입을 쩍 벌렸다.
“지, 진현 씨가 돌아왔어요!”
방금까지 한 뼘짜리 몸으로 테이블 위에 서 있던 강진현이 어느새 본래의 몸으로 돌아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엘릭서가 먹혔어! 저주가 풀렸구나!”
우민아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희나도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외쳤다.
“침대로, 침대로 옮겨요! 이대로 바닥에 둘 수는 없잖아요!”
희나와 우민아, 최상훈, 화원호는 침대에 누운 강진현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정상 크기로 돌아왔건만, 모두의 낯이 어두웠다.
그 까닭은…….
“엘릭서를 먹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니.”
우민아가 끙, 하고 이마를 짚었다.
“진현 씨, 많이 괴로워 보여요.”
희나도 강진현의 찌푸린 미간이 신경 쓰여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펄펄 끓는 이마에 물 적신 수건을 갈아 올렸다.
그를 주의 깊게 살피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저주와 엘릭서의 등급이 S로 같아 해주가 쉽게 되지 않고 있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해주 성공률도 50%로 절반밖에 안 됐다.
희나는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S급 엘릭서는 만능 회복약 아니었어요? 대부분의 상태 이상은 다 풀어낼 수 있다면서요?”
“대부분이 전부란 의미는 아니니까……. 그 S급 보스가 남긴 저주가 보통이 아니었나 보구나.”
최상훈이 어두운 낯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만약 해주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다…….”
“진현 씨에게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죠? 지금 너무 아파하잖아요.”
마지막쯤 돼서는 희나는 반쯤 울먹이다시피 했다.
강진현의 몸 안에서는 두 기운이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저주를 담고 있는 육체가 괴롭지 않다면 이상한 일일 터.
그 고통은 천하의 강진현조차도 견디기 힘들 만큼 치명적이었다.
몸에 열이 들끓었고, 정신도 차리지 못했다.
“……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더는 없는 것 같아. 이 이상은 강진현의 운에 달린 일이겠지. 곁은 번갈아 가며 지키자. 우리가 전부 여기에 매달려 있는 건 쟤도 원치 않을걸.”
우민아가 무거운 목소리로 희나를 다독였다.
희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럼 제가 옆에 있을게요. 언니랑 화원호 헌터님은 막 던전 다녀와서 피곤하실 테니까요. 그리고 진현 씨를 살피는 건 제 업무이기도 하니까…….”
진지한 모습에 우민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희나야, 부탁한다.”
최상훈은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을 지우지 못했다.
“힘들면 나 부르고. 무리하지 말거라.”
“옆에서 간호하는 일인데, 무리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희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최상훈 감정사를 마지막으로 침실 문이 쾅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