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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67화 (167/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67화

    * * *

    며칠간의 예선 심사를 거쳐 최종 본선 심사가 시작되었다.

    비공개로 진행했던 예선과 달리, 본선 심사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컨벤션 센터의 가장 커다란 홀에서 이루어지는데도 공간은 바글바글, 미어터질 듯했다.

    “자네는 심사 넣었는가? 나는 고양이 똥을 자동으로 분해해 주는 B급 모래로 지원했는데, 떨어졌다네. 대신 고양이 협회에서 연락이 왔지. 비싸게 주고 팔았어.”

    “S급 엘릭서는 어디 있지? 모양이라도 구경하고 싶은데.”

    “재미있겠다! 학회라고 해서 지루할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볼거리가 엄청 많잖아?”

    홀은 온갖 각성자들과 대대적인 홍보에 대회 구경을 온 일반인들로 가득 차 그야말로 도떼기시장 같았다.

    희나는 무대 앞쪽, 본선 진출자들을 위해 준비된 자리에 얌전히 앉아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제발……. 제발 1등 해야 하는데.’

    희나는 S급 감정사 최상훈이라는 연줄을 이용해 심사 없이 곧바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희나를 적극 추천해 준 최상훈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 물건’은 최선을 다해 쓸모없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아이템 대회,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대회 시작을 알렸다.

    ‘정말…… 별의별 물건이 다 있구나.’

    차례대로 나오는 아이템들은 말 그대로 기상천외했다.

    엉덩이를 시원하게 긁어 주는 B급 방석의 차례가 지나고, 드디어 희나가 출품한 물건이 심사 위원들 앞에 놓였다.

    “다음 물건은…… 신문지입니다!”

    사회자가 ‘SSS급 쓸모 있는 신문지’를 소개했다.

    “평범해 보이는 신문지인데? 그런 게 아이템이라고?”

    “그래도 신문지는 여러모로 쓰임이 많지. 바닥에 깔고 앉아도 되고, 유리창을 닦을 때 써도 되고, 돌돌 말아서 벌레를 잡을 때 써도 되고…….”

    사람들은 희나의 신문지를 보며 웅성거렸다.

    다들 감정 결과가 어떨지 궁금한 눈치였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 등급이나 쓰임이 영 생뚱맞은 아이템이 하도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힘내자! S급 엘릭서를 따오는 거야!’

    희나는 주먹을 꽉 쥐고 신문지를 열렬히 응원했다.

    그 응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심사 위원석에 앉은 세 S급 감정사들의 표정이 심상찮게 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들은 신문지를 두고 머리를 한데 모은 채 한참을 쑥덕였다.

    “대체 설명 창에 뭐라고 떴기에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야?”

    희나 앞에 앉은 본선 진출자 중 한 사람이 궁금한 듯 중얼거렸다.

    마침내 세 심사 위원의 길디긴 토론이 끝났고, 이들 중 한 사람이 사회자에게 감정 평가서를 건넸다.

    “정말로 오래 기다렸습니다. 대체 어떤 아이템이기에…… 허억?”

    평가서를 눈으로 훑던 사회자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아이템은 무려 트리플…… 트리플 S급 아이템입니다!”

    몹시 놀랄 만도 했다.

    상태 창에서 나타나는 가장 높은 급수는 S급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싱글 S가 아닌 더블 S, 트리플 S급의 아이템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몹시 희귀했다. 특히 트리플 S급 아이템의 경우에는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다섯 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여섯 번째 SSS급 아이템이 등장한 것이다!

    “여섯 번째 트리플 S급 아이템이 학계, 아니, 세계 최초로 발표되는 순간입니다! 놀랍습니다! 심사 위원진이 그렇게 놀랐던 이유가 있었군요!”

    사회자가 무어라 말을 덧붙이며 신문지를 들어 보였다.

    “보기에는 정말로 평범한 신문지인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신문지의 기본 정보를 읊어 주었다.

    희나는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쓸모 있는 신문지(SSS): 다방면에 두루두루 사용할 수 있는 몹시 쓸모 있는 신문지. 쉽게 찢어지지 않고, 구겨짐이 쉽게 회복된다. 사용자의 쓰임에 따라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부가 기능: 사용자의 상황에 따라 등급 감추기가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이 내용에 사람들이 갑론을박했다.

    “잘 찢어지지 않고 구겨지지 않는다니 쓸모를 찾자면 잘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신문지는 은근 사용할 데가 많잖아.”

    “그런데 저런 신문지 따위에 SSS등급이 붙는 게 말이 돼? 돼지 목에 진주, 아니, 다이아몬드인데.”

    실제로 심사 위원을 맡은 세 감정사 또한 같은 논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아이템 대회, 영예를 차지한 최고의 아이템은! 트리플 S급 쓸모 있는 신문지입니다!”

    “해냈구나! 신문지야!”

    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최상훈이 심사 위원 대표로 나서서 신문지를 뽑은 까닭을 설명했다.

    “쓰임새가 엉뚱한 다른 물건들에 비해 신문지는 다소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사진은 SSS급이라는 걸출한 등급에도 불구하고 본 아이템은 오직 질긴 신문지라는 아이덴티티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습니다.”

    대충 ‘SSS급 주제에 고작 신문지의 형태로 물리적 쓰임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라는 요지였다.

    거기다 자기 등급을 감추는 부가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 화룡점정이라고 했다.

    독특한 등급 외에는 탐낼 만한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그마저도 숨길 수 있다니…….

    “……감정사의 입장에서는 몹시 흥미로운 아이템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우리는 이 신문지가 그 이상의 쓸모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묘하게 신랄한 감정평이었다.

    하지만 희나는 기쁜 마음으로 짜디짠 평가를 받아들였다.

    ‘엘릭서다!’

    우승 상패와 함께 받아 든 S급 엘릭서가 몹시 영롱했기 때문이다.

    SSS급 신문지를 둘둘 말아 든 채로 활짝 웃는 희나의 모습이 오늘의 핫 토픽란에 실린 건 덤이었다.

    * * *

    여섯 번째 트리플 S급 아이템의 정체가 고작 신문지에 불과하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파비안 앳킨스가 퍼뜨린 은근한 루머를 덮어 버리기엔 확실한 뉴스였다.

    한편, 이 SSS급 신문지의 주인인 희나는 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오! 그 사람 아니야? 신문지?”

    “그러게? 인터넷에서 봤던 사람이다!”

    “같이 사진 찍어 줘요, 사진!”

    희나가 사람들에게서 풀려난 건 한참 동안 사진을 찍은 후였다.

    “히, 힘들어…….”

    어색한 웃음을 짓느라 경련이 이는 입매를 문질렀다.

    그러자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상훈이 어깨를 툭툭 쳤다.

    “슈퍼스타가 된 기분은 어떠냐?”

    “저 사람들은 TV랑 인터넷에서 보던 사람이 지나가니까 신기해서 사진 찍고 가는 것뿐이거든요!”

    모르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자길 아는 척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다며 투정 부리니, 최상훈이 껄껄 웃었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대회에 내놓고선 이 정도로 끝낼 수 있는 건 운이 좋은 거지.”

    대회의 내용이 워낙 기상천외하였던 부분이 있어, SSS급 아이템의 발견은 진지하게 여겨지기보다는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치부되어 지나갔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었어.”

    최상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신문지’가 아닌, ‘SSS급’이라는 타이틀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실렸더라면 좀 더 위험한 관심에 시달렸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운 좋게 슬쩍 지나가게 됐네요.”

    희나는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거야말로 행운 스탯이 열심히 활약해 준 덕인 것 같았다.

    ‘쓸모없는 아이템 대회였던 것도 그렇고…….’

    이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파비안을 만났을 때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엘릭서를 얻은 지금은 고마운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 최상층에 발을 내딛는데, 저 멀리서부터 왁자함이 느껴졌다.

    “어라? 다들 돌아왔나 봐요!”

    강진현 일행이 소원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온 듯했다.

    저 멀리서 우민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화원호 이 새끼야! 커튼 탔잖아! 이 큰 호텔에 불낼 일 있냐!”

    “아니, 벌레가 콧구멍에 들어갔다니까요! 사람이 놀라면 불 좀 뿜을 수 있지!”

    “화원호 헌터는 능력치 컨트롤에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맞아. 너 던전 안에서 강진현 들고 튀다가 터뜨릴 뻔했잖아.”

    “결론적으로 안 터졌으니 된 거 아님까?”

    호쾌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 진현 씨가 터질 뻔했다고?’

    후다닥 말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스위트 층 전체를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지라 곧바로 강진현을 볼 수 없다는 점이 괜스레 갑갑하게 느껴졌다.

    ‘진현 씨 저주는 풀렸을까?’

    콩닥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하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희나는 곧바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저주…… 안 풀렸나 보네요.”

    한 뼘 크기의 강진현이 테이블 위에 앉아 있었다.

    성큼 다가온 우민아가 실망한 희나를 다독였다.

    “저주는 못 풀었지만 방법은 찾아왔어.”

    “소원의 샘은 말 그대로 소원을 이루어 주는 곳은 아니더군요. 대신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보여 줍니다.”

    강진현의 부연 설명에 희나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럼, 방법은 찾은 거예요?”

    “찾긴 했습니다마는…….”

    강진현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매사 냉철하기 그지없는 그답지 않은 감정 표현이었다.

    “그것이, 당장 구할 수 없는 것이 필요한 터라…….”

    자그마한 얼굴에 근심이 스치는 걸 보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뭔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강진현이 마른세수하며 대답했다.

    “엘릭서입니다. 저주를 건 마법사의 수준 이상의 등급을 가진 엘릭서.”

    “예?”

    익숙한 이름에 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진현은 이를 의문으로 받아들였는지 부연 설명했다.

    “S급 엘릭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S급 엘릭서는 완전히 씨가 마른 상태고, 재료를 수급하려면 최소 반년은 기다려야 하는데…….”

    이에, 희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거, 구했어요. 저한테 하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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