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66화
“엥?”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희나에게 최상훈이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인기? 인기야 좋지. 온갖 TV 쇼에, 광고에, 화려하기론 헌터 제일일 테니까.”
“그렇다기엔 별명이 영…….”
스캔들에, 루머라니. 둘 다 네거티브한 단어였다.
아무래도 파비안 앳킨스라는 남자는 온갖 물의를 일으키는 셀러브리티인 듯했다.
할리우드 스타 중에서도 일부러 악명을 떨쳐서 유명세를 이어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화려하게 생겨서, 그런 이미지가 어울리기는 하는데…….’
선글라스 너머로 언뜻 보았던 이목구비를 떠올리고 있는데, 최상훈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너무 고민하지 말려무나. 파비안 앳킨스는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 같은 놈이라, 그가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절대 그럴 리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할걸.”
그러면서 덧붙였다.
“물론, 그놈이 운영하는 가십 채널에 올라간다면 시끄럽기야 하겠지만……. 상대는 청룡 길드에 팔콘 길드까지 엮여 있으니 그렇게 함부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거다. 줄 하나는 기막히게 탈 줄 아는 인간이라고 들었으니까.”
“그럼 절대 상종하지 않고, 민아 언니 돌아오면 얘기는 해 둘게요.”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결심했다.
‘금발 비슷한 사람 보이기만 해도 피해 다녀야지.’
온갖 인종이 가득한 이 미국에서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 * *
헌터계의 셀러브리티이자 관심 종자, 파비안 앳킨스의 SNS에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그가 윙크를 하며 “Make a Wish!”라고 외치는 짧은 영상과 함께 올라왔는데, 이 게시글은 파비안의 팬덤 사이에서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는 값비싼 물건이나 유명인과의 교류를 자랑하던 평소의 게시글과는 달랐다.
그의 SNS를 구독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헌터계 ‘믿거나 말거나’류의 가십이었던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팔콘 길드는 정부에까지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
던전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미합중국 3대 길드 중 하나인 팔콘 길드가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러면서 마지막엔 ‘외계인의 흔적이라도 찾아낸 건 아닐까? 아니면, 미신고 던전에서 비밀 결사의 모임을 가진다거나?’ 하는 문구까지 덧붙이며 음모론적인 가설까지 제기했다.
아주 모호했지만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다양했다.
내용은 자극적이었고, 흥미로웠다. 대중이 달려들기에 딱 좋은 주제였다.
파비안발 루머는 소규모 인터넷 가십지, 가십 블로거들 사이를 휩쓸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가장 곤란해진 건 팔콘 길드였다.
아무리 흥미 본위의 사건들만 올라오는 파비안의 SNS 페이지라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커지는 건 좋지 않았다.
물론 루머의 출처가 파비안이다보니 대다수의 사람은 이를 인터넷발 헛소문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소문은 없는 법.
몸집 있는 언론, 정보상, 심지어 국가 정보부에서까지 은근한 관심을 표해 왔다.
상황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소원 던전의 정체가 까발려질지도 몰랐다.
미등록 던전의 존재는 굉장히 예민한 화두였고…… 이에, 팔콘 길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 * *
“이번 세계 감정 학회에서 엘릭서를 선보인대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휴대전화를 만지던 희나가 방 안에서 뛰쳐나왔다.
카우치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던 최상훈이 벌떡 일어났다.
“엘릭서? 엘릭서라고? 내가 아는 그 엘릭서 말이냐?”
“네! S급이래요!”
“심지어 S급?”
최상훈의 입이 떡 벌어졌다.
“S급 엘릭서는 지금 재고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팔콘 길드에 하나 남아 있었대요. 이번에 세계 감정 학회를 후원하게 된 기념으로 넘기는 거라는데요?”
엘릭서란 모든 상태 이상을 단번에 풀어 주는 만능 포션이었다.
그런 만큼 엘릭서를 제조하는 방식은 몹시 까다로웠고, 이를 제조할 수 있는 포션술사나 연금술사는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거기다 S급의 엘릭서라면…… 어지간한 운이 따라 주지 않는 이상 제조가 어렵다 일컬어지는 수준이었다.
1년에 하나 만들어질까, 말까 하는 게 S급 엘릭서였으니 말이다.
“팔콘 길드도 똥줄이 어지간히 탔던 모양이구나.”
최상훈이 희나가 내민 ‘글로벌 이슈’ 뉴스를 찬찬히 읽어 보며 중얼거렸다.
“그, 파비안 앳킨슨이 올린 글 때문일까요?”
파비안을 만난 이후로, 희나는 매일같이 파비안의 SNS를 염탐하고 있었다.
당연히 얼마 전 올린 소원 던전 관련 게시글 또한 읽어 알았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루머가 더 커지기 전에 더 큰 이슈로 덮어 버리려고요?”
“그래. 아무래도 엘릭서는 세간에 ‘소원을 이루어 주는 포션’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니까.”
“아……. 팔콘 길드가 감추고 있는 게 던전이 아니라 포션이었다는 쪽으로 얘기를 끌고 가려는 걸까요?”
인터넷에서는 파비안이 어째서 ‘Make a wish!’라는 말을 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팔콘 길드는 소원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한 S급 엘릭서를 내보인다면 사람들이 납득하리라고 판단한 듯했다.
최상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릭서라면 사람들 이목 끌기에는 아주 딱 좋은 주제지.”
“하긴, 엘릭서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헌터계 일에는 눈도 귀도 어두운 희나가 알 정도의 물건이니, 그 화제성에 대한 검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 던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S급 엘릭서로 소문을 덮으려고 하는 걸까요?”
희나의 의문에 최상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이게 별것 아닌 던전이었더라도 팔콘 길드는 이런 식으로 일을 덮을 수밖에 없을걸.”
“왜요?”
“요즈음 미 정부는 길드 권한이 점점 커지는 걸 부쩍 경계하고 있어. 그런데 미국 유명 길드인 팔콘에서 미등록 던전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해 봐라. 아주 작신작신 두들겨 팰걸.”
들켰다가는 팔콘 길드의 입장이 난처해진다는 의미였다.
희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다.
“아무튼…… 우리가 그걸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소원을 이루어 주는 데다, 상태 이상을 풀어 주는 물약이라니. 지금의 진현 씨한테 꼭 필요한 것처럼 들리는데요.”
최상훈도 동의했다.
“맞아. 길드장도 S급 엘릭서를 구하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소원 던전에 입장시킨 것일 게다. ……어디 보자. 기사에서는 S급 엘릭서를 세계 감정 학회에서 선보인다고만 쓰여 있구나.”
기사를 읽은 최상훈이 끙차,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세계 감정 학회의 VVVIP 된 몸으로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번 알아볼까?”
그가 껄껄 웃음 지었다.
“학회장 그 양반, 사람 졸리게 하는 재주만 있는 인간이 아니거든.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도 뛰어나지.”
* * *
세계 감정 학회의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재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쓴다고요?”
희나는 조금 질린 낯으로 학회 리플릿을 받아 읽었다.
거기엔 S급 엘릭서를 상품으로 건 엄청난 이벤트가 대문짝만한 글자로 설명하고 있었다.
“제가 잘못 읽은 것 아니죠?”
통역 아이템은 글자까지는 번역해 주지는 않았으므로, 희나는 잠시 자신의 영어 읽기 능력을 의심했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 영어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상하네요. 내용이 이상한 것 같아요.”
“뭐라고 해석했는데?”
“대회 우승 상품으로 S급 엘릭서를 준다고요.”
“영특하구나. 제대로 읽은 것 맞아.”
최상훈이 희나의 영어 독해 능력을 칭찬했다. 잘 키운 딸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 몹시 다정했다.
하지만 희나는 그 부드러운 눈빛을 만끽할 여유가 안 됐다.
“아니, 상훈 아저씨! 근데 대회가 너무 이상한 거 아니에요? S급 엘릭서 같은 대단한 물건을 이런 데 상품으로 내건다고요?”
리플릿에 쓰인 대회 내용이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학회장이란 사람…… 제정신인가?’
희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최상훈이 킬킬 웃었다.
“엄청나니까 그렇게 쓰는 거라는데.”
“이해가 안 돼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아이템 대회’라니!”
그랬다.
이벤트의 내용과 취지는 다음과 같았다.
<감정사란, 물건의 가치를 평가하고 그 쓰임새를 새로이 정의하는 클래스다.
이 자리, ‘세계 감정 학회’에는 세계 유수의 감정사가 한데 모였다.
진정한 감정사란, 가치 있는 아이템을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물건에서 가치를 발견해 내는 이다.
그러한바, 본 학회에서는 감정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참신한 아이템 경진 대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이 대회의 주제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아이템’이었다.
얼핏 그럴싸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개소리인 그런 내용이었다.
“내가 말했잖냐? 학회장 그놈, 아주 이상한 놈이라고.”
최상훈이 관자놀이께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S급 감정사 셋 전부를 심사 위원으로 내세워 놓고선 벌인다는 게 쓸모없는 아이템 뽑기 대회라니, 재미는 있을 것 같다만…….”
그의 말대로 순전히 학회장의 재미를 위해 기획한 대회인 것 같았다.
희나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저씨는 심사 위원이니까, 참석할 수 있는 건 저뿐이네요.”
“참가하려고?”
“어쩌겠어요? 훔쳐 올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죠.”
어떻게든 S급 엘릭서를 얻어 내고 싶었다.
‘진현 씨는 날 위해 기꺼이 몸을 던졌어! 나도 뭔가를 하고 싶어!’
작아진 몸으로 던전에서 고생하고 있을 그를 위해 희나도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런 속을 읽었는지 최상훈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심사 위원 인맥으로 예선은 그냥 통과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나도 힘들 것 같다, 희나야.”
아무리 우스운 내용의 대회라고 하더라도, 대단한 상품이 걸린 대회였다.
그런 만큼 감정은 아주 심도 있게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무엇보다…… 출품할 만한 물건은 있고?”
최상훈의 물음에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나름 자신 있어요.”
희나에게는 비밀 병기가 하나 있었다.
이름만은 너무나 ‘쓸모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몹시도 쓸데없어 보일, 그런 대단한 아이템 하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