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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61화 (161/228)

던전 안의 살림꾼 161화

* * *

길드장과 개인 면담을 한 후, 강진현은 한동안 자신의 상태 창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보상의 도움을 받아야겠습니다.”

이에 조그마한 천을 붙잡고 바느질하고 있던 희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원덕삼 아저씨요?”

“예.”

“진현 씨 저주 관련한 내용은 기밀 아니에요? 바깥에 유출하면 안 되잖아요.”

대한민국 S급 각성자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가 저주 때문에 상태 이상에 걸렸다는 사실은 기밀 중 기밀이었다.

이 정보가 유출되면 뒤집어지는 건 청룡 길드뿐만이 아니었다. 나라가 뒤집힐 사건이었다.

‘길드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표정이 저렇게 심각하담?’

오늘 실패한 실험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온 것 같은데, 오늘따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단 길드 선에서 가능한 시도는 다 해 보았다고 합니다.”

“정말요? 마법팀 말고 다른 부서에서도요?”

“예. 청룡 길드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방법을 찾아봐야지요. 이대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미스터 원의 경우, 우리를 배신할 가능성이 몹시 희박합니다. 당장 정보를 팔아 이득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희나 씨와 인연이 끊겼을 때 잃을 것이 더 많을 테니까요.”

“아.”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석의 맹세도 맹세였지만, 원덕삼은 아주 중요한 걸 저당 잡혀 있었다.

‘건강…….’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쾌변의 자유 같은 것 말이다. 그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럼 덕삼 아저씨한테 지금 당장 연락해 볼까요?”

“예. 부탁합니다.”

재빨리 휴대전화를 들고 텍스트 메시지를 날렸다. 상의할 게 있으니 연락을 보는 즉시 전화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희나는 방금까지 붙잡고 있던 것을 강진현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희나 씨?”

고개를 갸웃하며 묻기에, 희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진현 씨 옷이요!”

“……옷, 말입니까?”

들어서 펼쳐 보니, 희나 말대로 정말 옷이었다. 어떻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교하게 바느질한 후드 티셔츠였다.

“진현 씨 몸이 작아지는 바람에 인벤토리에 있는 옷 말고는 못 입게 됐잖아요! 전투복만 입고 지내는 건 불편할 것 같아서 만들었어요.”

희나는 다소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와다다 설명을 이었다.

“이 정도면 꽤 귀엽게 잘 만들지 않았어요?”

강진현이 어서 입어 보았으면 하는지, 양손을 꼭 붙잡고 눈까지 반짝였다.

흥분하여 상기한 뺨이 굉장히 보기 좋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진현은 상당한 불안을 느꼈다.

길드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성 간엔 적당한 긴장이 있어야지. 귀여움만 받다간 기회 놓치기 십상이란다.’

「♨삐뽀삐뽀♨」

그의 속을 어찌 읽었는지, 오색이가 안테나를 삐죽거리며 비상벨을 한참 동안 울려 댔다.

* * *

원덕삼은 자초지종을 듣고 몹시 심각한 목소리로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답변이 온 건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 후였다.

- 희나 양. 저도 여러모로 알아보았습니다만…… 이게 저도 완전히 처음 보는 케이스라서요.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뜻인가요?”

희나의 닦달에 난처한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울렸다.

- 확실하지는 않은데, 방법을 하나 찾긴 했습니다. 그게…….

원덕삼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고, 희나와 희원, 강진현은 휴대전화 소리를 스피커로 돌려놓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으므로 통화는 금세 끝이 났다.

전화를 끊자마자 희원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건 너무 복잡한데?”

“그러게. 확실하지도 않고.”

희나도 오빠의 말에 동의했다.

“미국에 있는 던전이라니. 거기다 관리도 철저한 곳이면…… 몰래 왔다 갔다 했다간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원덕삼이 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에 던전 하나가 있다.

이 던전은 미국 최고 길드인 ‘팔콘’이 관리하는 곳으로, 그 존재는 극비라고 했다.

그 까닭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샘? 이걸 믿으라고? 과할 정도로 동화적인 소문 아닌가?”

희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고 휴대전화를 째려보았다.

그 눈초리가 어찌나 의심에 가득 차 있던지, 원덕삼이 있었다면 ‘제 말을 왜 믿지 못하십니까!’ 하고 억울해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워낙 허무맹랑해야지.’

희나는 폭 한숨을 내쉬며 강진현을 내려다보았다.

그 또한 이 정보에 황당함을 느낀 건 마찬가지인지, 잘생긴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

“이제 믿을 건 길드장님밖에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길드장이 무슨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는 소식을 인사팀장 강목현을 통해 넌지시 전해 받은 터였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길드장님 찾아가 봐요, 우리.”

그러면서 희나는 문뜩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진현 씨. 그 후드 정말 잘 어울리네요. 참 잘 만든 것 같아.”

“아, 예…….”

강진현은 자신이 입은 병아리색 후드 티셔츠를 내려다보며 하루빨리 원래 모습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희나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건 좋았지만, 이러다가 정작 중요한 걸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현 씨는 귀여…… 아니, 잘생겨서 그런지 무채색 말고 알록달록한 색도 잘 어울리네요!”

이를테면…… 이성으로서의 매력 같은 것 말이다.

* * *

다음 날, 예상대로 길드장의 호출이 내려왔다.

“내가 몇 가지 알아봤는데.”

김규희 길드장은 희나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다.

“아무래도 미국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미국이요?”

“그래. 미국 던전에 쓸 만한 게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소원을 이루어 주는 샘’이라고, 유치한 이름이지만 저주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

“아.”

길드장 역시 전날 원덕삼과 같은 말을 했다.

미국 팔콘 길드가 극비리에 관리하는 던전에 ‘소원을 이루어 주는 샘’이란 게 있고, 그 샘이 강진현의 저주를 해주하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소문 때문에 다짜고짜 미국행을 준비해야 한다니,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이건 지금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던전이 활성화했을 때, 단 한 번만 나타나는 샘이라고 해. 그리고 이곳은 1년 반 주기로 활성화하는 던전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1년 하고도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거지.”

김규희 길드장이 골치 아프다는 듯 혀를 쯧, 찼다.

“백방으로 알아보았는데, 당장은 이 방법밖에 없어.”

“미국 길드가 극비리로 관리하는 던전입니다. 입장 허가를 받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강진현의 물음에 길드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해결할 문제지. 자네들은 당장 이동할 준비부터 해.”

그러면서 희나를 바라보았다.

“이 팀장도 준비해야 할 거예요. 강 헌터를 케어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출장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으니, 준비는 단단히 해 두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 네……!”

“오늘 안에 팀원을 꾸려 공지하도록 하지요. 자세한 사항은 인사팀장 통해서 듣도록 합시다.”

* * *

강진현에 관한 일이라 그럴까? 일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길드장의 지시를 받은 지 채 36시간도 지나지 않아 희나는 청룡 길드 전용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와……. 외국 처음 나가 봐요.”

희나는 안락한 전용기 내부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우민아가 희나의 머리를 톡톡 치며 씨익 웃었다.

“그래? 비행기는 타 봤고?”

그녀는 일명 ‘강진현 저주 해결팀’의 책임자로 동행한 몸이었다.

“옛날에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제주도 한 번 가 본 적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비행기는 처음 타 봐요.”

전용기에는 어지간한 소파보다 푹신해 보이는 좌석에, 침실에, 간단한 부엌까지 갖추고 있었다.

‘옛날에 오빠랑 둘이 살던 집보다 더 좋은 것 같아.’

강진현은 화려한 전용기가 익숙한 듯 어느새 가장 좋은 좌석 하나(?)를 차지한 채였다.

“희나 씨, 여기 앉으십시오.”

하지만 그런 강진현의 모습은 누군가의 눈에 들어오기엔 너무나 작았다.

“으아아아! 피곤하다!”

S급 감정사 최상훈이 하품을 쩍 했다. 방금까지 일하다 온 기색이 여실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했나 봐. 며칠 철야 좀 했다고 삭신이 쑤시네.”

그는 피곤한 듯 목을 우득우득 돌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려다…… 거의 솟아오를 듯 몸을 벌떡 솟구쳤다.

“아이고! 엉덩이! 엉덩이!”

강진현은 검은 기운을 손바닥 안으로 갈무리하며 최상훈에게 정중히 경고했다.

“자리를 잘 살피고 앉으십시오. 여기 사람 있습니다.”

그 장면에 마지막으로 전용기에 탑승한 화원호 헌터가 배를 잡고 낄낄댔다.

“크하하하! 최 감정사님 바지에 구멍 난 거 아닙니까?”

그는 화염계 능력자로, 청룡 길드에서 손꼽히는 상급 헌터 중 하나였다.

이번 일을 돕기 위해 차출된 인원으로 성격이 조금 급한 게 흠이었지만, 그것만 빼면 상당히 유능한 요원이었다.

“자자, 출발할 테니까 모두 자리 잡고 앉으시고.”

우민아는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에 익숙한 듯, 당황하지 않고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우린 대외적으로 세계 감정 학회에 참가하는 최상훈 감정사의 동행팀으로 처리될 겁니다.”

마침 팔콘 길드의 컨벤션 센터에서 ‘세계 감정 학회’가 주최되었다.

해당 길드의 던전을 출입해야 하는 청룡 길드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복잡한 얘기는 길드장님 선에서 다 처리했다고 하니까, 우리는 적당히 눈치 보다가 던전 다녀오면 됩니다.”

그러면서 특히나 이번 대외 임무에서는 절대 사고를 쳐서는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다.

“최 감정사님! 술자리 갔다가 괜한 소리 꺼내지 마시고요!”

“아니, 나처럼 입이 무거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는지.”

“화원호! 너는 불 지르는 거 금지야!”

“끄응…… 참아 보겠습니다.”

“강진현! 벼룩처럼 튀어 다니지 말고 주머니에 꼭꼭 숨어 있어라!”

“문제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희나야, 난 널 믿는다. 알았지? 너만은 사고 치지 말아 다오.”

“네, 언니. 조심조심 잘 다녀올게요.”

대답에도 우민아는 일행이 미덥지 못한 듯, 몇 번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이번에 사고 치면 끝이야, 끝. 알았지? 다들 성질 좀 죽이고…… 잘 좀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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