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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58화 (158/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58화

    무엇인가 계산할 틈조차 없었다.

    “……희나 씨!”

    강진현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그는 부상당한 몸으로, 희나를 향해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평소였다면 한달음에 가까워졌을 거리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고작 몇십 미터가 몇 킬로미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강진현은 희나를 품에 안고 땅을 구르고 있었다.

    “지, 진현 씨!”

    “괜찮, 괜찮으십니까?”

    “저는 당연히 괜찮죠! 그 전에, 진현 씨부터!”

    고통은 뒤늦게 느껴졌다.

    “윽…….”

    오른쪽 어깨가 인두로 지지는 듯, 뜨거웠다. 곧이어 강진현의 눈앞에 시스템 문구가 떴다.

    “보스 물리쳤대요!”

    “해냈다!”

    “살았다! 우리, 살았어요!”

    일행이 반쯤 울먹이며 소리치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스 클리어 메시지가 뜬 듯했다.

    강진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물론 보스 몬스터를 해치웠다고 던전 토벌이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조무래기 몬스터들은 계속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일행이 전부 각성하며 실력이 수준급을 맴돌게 되었으니, 그깟 좀비 몬스터 따위는 걱정할 바가 안 됐다.

    그제야 안심이 되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고작, 이런 일로…….’

    고작 전투 한 번, 저주 한 방으로 기절이라니. 천하의 S급 칭호가 아까웠다.

    ‘오늘만 해도 그랬지.’

    일행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네크로맨서를 처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괜찮았다.

    “진현 씨! 진현 씨! 정신 차려요! 환웅아! 이리 와서 진현 씨 좀 봐줘!”

    그의 품에 안긴 희나의 심장이 사정없이 콩닥거리는 느낌이, 기분 좋았으니까.

    ‘희나 씨가 무사하면 됐다…….’

    깊은 안도와 함께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그 때문에 강진현은 시스템 메시지 한 줄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 * *

    “미, 민간인이다! 살아 있어!”

    일행은 그동안 그렇게 고대했던 구조대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마주쳤다.

    목숨 걸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자마자 구조대를 만나다니.

    “아니, 보스전 다 끝내자마자 만나는 건 좀 억울한데?”

    일행의 마음을 대변하듯 김수나가 작게 투덜거렸다.

    그래도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기쁨은 내심 감추지 못했다.

    “집에 가면 뜨끈한 물로 씻고, 치킨이랑 피자 시켜 먹을 거야.”

    “나는 흰밥에 김이랑 김치 먹고 싶어.”

    “시골에 계신 부모님한테 전화해야겠어요.”

    치열한 전투를 겪으며 일행은 부쩍 가까워졌다.

    다들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조대를 따라 던전 게이트까지 이동하는 데는 반나절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강 헌터님 보스 몹을 해치우신 겁니까?”

    게이트 앞,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책임자로 보이는 헌터 하나가 강진현에게 물었다.

    강진현은 피곤한 낯으로 손을 저었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서면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저도 그렇고, 일행이 많이 지쳤습니다. 빠른 귀가 조치 부탁드립니다.”

    그는 희나를 대신해 네크로맨서의 저주에 맞아 쓰러졌었다.

    이에 희나는 몹시 놀라 가진 포션을 모두 퍼부었고, 덕분에 강진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의식을 찾았다.

    희나는 아슬아슬한 시선으로 강진현을 바라보았다.

    ‘……별일 아니니까 얘기를 안 꺼내고 있는 거겠지?’

    상처 입은 그의 모습을 처음 본 탓일까?

    아니면 그가 자기를 대신해서 저주를 대신 맞아 준 탓일까?

    너덜너덜해졌던 강진현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집에 가면 몸 상태 어떤지 물어봐야지.’

    희나가 강진현의 등을 힐끔거리는 사이, 책임자와의 대화는 끝난 듯했다.

    “바깥에 응급대원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조치 후, 인근 병원으로 호송되어 정밀 검사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책임자가 일렁거리는 게이트를 손짓하며 브리핑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는데…… 게이트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이 아주 많을 겁니다. 당장은 어떤 매체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직 조사 중인 부분이라서요.”

    그러면서 책임자는 기밀을 지켜 줄 것을 재차 강조했다.

    “알았으니까, 빨리 여기서 나가게나 해 주쇼!”

    희원의 재촉에 책임자가 마침내 길을 열어 주었다.

    자신이 거지꼴이 된 표류자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마침내 귀가를 눈앞에 둔 일행은 각자의 소회를 한마디씩 던졌다.

    “돌아갑시다!”

    “저는 다시는 좀비물 안 보려고요.”

    “앞으로 캠핑하러 오나 봐라.”

    사람들이 하나둘 던전 밖으로 나섰다.

    희나 또한 그들을 따라 발을 한 걸음 내디뎠다.

    환한 빛과 함께, 익숙한 공기가 피부에 맞닿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던전을 벗어나 본래 세계로 돌아왔다.

    * * *

    던전에서 나온 후,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아무래도 던전에 있던 기간이 더 길어서일까? 먼젓번 게이트에 휘말렸을 때와는 대처가 사뭇 달랐다.

    밀도 있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강진현의 주장 덕분일까? 일행은 온갖 검진을 받고 또 받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희나의 검진 결과는 아주 양호했다. 심지어 충치 하나 없이 건강했다.

    길고 긴 건강 검진과 치료 이후에는 정부 관련자와 면담이 이어졌다.

    며칠간의 심문에 가까운 면담이 끝나고, 희나 일행이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많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와…… 이게 다 뭐래?”

    집에 오자마자 새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던 희원이 입을 쩍 벌렸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고 온 희나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헉, 이게 뭐야!”

    그런 희나가 오빠와 별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게 되는 데는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기밀이라면서! 온 동네에 다 소문났잖아!”

    희나는 뜨악하며 포털 사이트에 뜬 뉴스 헤드라인을 읽었다.

    [강원 게이트 생성 사태, S급 헌터가 만들어 낸 기적?]

    [강원 게이트 생성 사태, 정확한 요인은 아직 불명……. 짙어지는 의혹.]

    [기적의 귀환자들. 일행 모두 각성한 것으로 밝혀져…….]

    [전 세계 최초 S급 버퍼 탄생!]

    [‘안전 불감증’ 정부의 실책, 일반 국민이 치러야만 했던 뼈아픈 대가…….]

    이번 사태를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정부 당국에 대한 비난이 섞여 있으리란 건 예상했다.

    하지만…….

    “이거 다 극비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우리 얘기는 왜 이렇게 자세하게 퍼진 건데?”

    이번 사태 피해자들 신상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매스컴을 타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지?”

    남매는 언론의 집요함을 저평가했다.

    사실 우연히 던전 게이트에 휘말린 민간인들이 모두 생존해 나왔다는 일만으로도 대서특필감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강력한 능력자로 각성했다?

    자극적인 기사에 목마른 언론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세계 유일의 S급 버퍼가 된 권다혜의 이야기는 뜨거운 감자, 그 자체였다.

    Rrrrr…….

    때맞춰 희원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 예! 안녕하십니까? ○○일보의 성주한 기자라고 합니다. 이희원 씨 맞으시죠?

    “맞는데요, 무슨 일이신지……?”

    - 다름이 아니라 이번 강원도 게이트 사태 관련하여 인터뷰를 요청하고 싶어서요.

    “그건 좀 곤란한데요. 저희도 막 집에 도착해서 피곤한 터라.”

    - 그래도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

    “괜찮습니다. 생각 없으니까 전화 끊겠습니다. 수고하십쇼.”

    희원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 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희나의 휴대전화도 울리기 시작했다.

    Rrrr…….

    “받지 마. 이것도 취재 전화일 것 같아.”

    “알았어.”

    하지만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고, 남매는 마침내 휴대전화 전원을 끄기에 이르렀다.

    희나는 질린 얼굴로 오빠와 강진현을 바라보았다.

    “우리한테 이 정도면, 다혜는 더 곤란한 상황이겠는데?”

    어린 S급 버퍼가 받을 관심이란, 상상 초월일 게 분명했다.

    * * *

    하지만 희나와 희원의 걱정도 잠시였다.

    의외로 권다혜의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S급 버퍼 권다혜, 청룡 길드와 전속 계약 맺어]

    권다혜가 청룡 길드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청룡 길드의 언론 대처는 능숙했다.

    미성년자인 권다혜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강력한 조치를 취한 듯, 청룡 길드는 날뛰던 언론들을 단숨에 진정시켰다.

    희나가 인사팀장 강목현의 연락을 받고 길드장실로 향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무슨 일이지? 던전에서 클로버 주먹밥 만들었던 것 때문인가? 아니면 진현 씨가 나 대신 공격받은 일 때문이려나?’

    희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똑똑, 길드장실 문을 두드려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희나는 웃음을 활짝 머금은 김규희 길드장의 얼굴을 맞이했다.

    “이희나 팀장, 어서 와요.”

    “네, 네에.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험한 일에 휘말려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소름 돋을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에 희나는 땀을 삐죽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수, 수고라뇨. 불러 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호호,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우리 복덩…… 아니, 이 팀장, 자리에 앉아요.”

    김규희 길드장이 희나에게 자리를 권했고, 희나는 뒤늦게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눈치챘다.

    “어? ……다혜야?”

    S급 버퍼로 청룡 길드와 계약했다던 권다혜였다.

    “희나 언니!”

    권다혜는 몹시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길드장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이는군요.”

    희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아, 네. 아무래도 힘들 때 같이 지낸 사이다 보니까요…….”

    그 대답에 김규희 길드장이 빙그레 웃었다.

    “잘됐군요. 그렇지 않아도 권다혜 양을 맡을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려 부른 거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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