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56화
좀비들은 진흙탕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수백의 좀비가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눈 깜짝할 사이 질척이는 구덩이에 좀비가 가득 찼다.
그륵, 그르륵!
이지 없는 시체들은 서로를 밟고, 혹은 타고 올랐다. 그저 희나 일행이 있는 곳으로 전진할 뿐이었다.
“흐아아압!”
김수나가 커다란 기합 소리와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엉! 김수나를 중심으로 포악한 권풍이 일었다.
희원도, 희나도 그 곁에서 열심히 무기를 휘둘렀다.
‘진현 씨! 힘내요!’
희나는 네크로맨서를 향해 튀어 나가는 강진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홍해가 열리듯, 좀비들이 우수수 터져 나갔다.
등 뒤에 지킬 것이 없기에 보일 수 있는 파괴적인 무위였다.
네크로맨서는 하찮은 인간들의 반항에 분노한 듯했다.
[나의…… 권속……!]
[지옥불에…… 떨어뜨리리……!]
강진현은 침착한 낯으로 대답했다.
“아니. 네 목부터 잘라 주마.”
정확히 말하면, 그는 리치 네크로맨서의 생명력이 담겨 있는 라이프 베슬을 깨뜨릴 생각이었다.
손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온 짙은 기운이 일렁이며 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강진현은 속으로 시간을 셈했다.
‘2초.’
네크로맨서의 품 안에 있는 라이프 베슬에 검을 찔러 넣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쌔애애액!
그는 한 줄기 섬광이 되었고, 순식간에 적의 목전에 도달했다.
“됐다.”
중얼거리며 허공에 찔러 넣는 순간, 강진현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
‘이게 무슨?’
무엇인가를 찌를 때 으레 느껴져야 할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둔한…… 인간……!]
강진현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를 몸을 뒤틀어 피해 냈다.
그러나 공격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실패했다.
“……크윽!”
그저 기운이 스쳤을 뿐인데, 손등에 순식간에 녹색 수포가 올라왔다.
하지만 고통을 살피는 것보다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강진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마법……? 순간 이동인가?’
믿기지 않는 능력이었다.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그였지만, 이런 식의 초월적인 능력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난생처음이었다.
‘심지어 인간과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니.’
몬스터라기보다는 강력한 각성자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이레귤러였다.
강진현은 재빨리 당혹을 지워 내고 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몬스터일 뿐이다.’
그는 다시 몸을 틀어 네크로맨서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강진현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런 공방이 이어지길 수회.
강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진다.’
일행이 상급 각성자로 각성했다고는 하나, 실전 전투는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힘만 센 어린아이들을 모아 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문제인 건 체력.
일행의 체력에 한계가 찾아오기 전에 보스전을 끝내야만 했다.
‘그런데 닿지 않는군.’
공격하는 족족 멀리 사라지는 상대라니, 근거리 전투에 익숙한 강진현으로서는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원거리 전투원이 있었다면 조금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그런 강진현의 머리에 떠오른 건 바로 희나였다.
희나의 능력 범위는 반경 20미터가량.
보스 몬스터의 순간 이동 범위 안이었다.
‘하지만 희나 씨의 능력으로 S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군.’
희나의 대청소 스킬로 보스 몬스터를 처리한 적이 있다고는 하나, 이는 D등급 전후의 낮은 던전 보스에 불과했다.
B등급인 희나의 스킬 랭크보다 낮은 몬스터만 상대해 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보루로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어.’
강진현이 힐끗, 일행을 살피던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희나의 신문지 끝이 동그란 파동을 그렸다. 그를 중심으로 쨍, 하고 공기가 울렸다.
몇 번 보아 익숙한 스킬이었다.
대청소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아악!”
최전방에서 탱커 역할을 하던 김수나가 좀비에게 팔을 물렸다.
순식간에 좀비를 떨쳐 냈으므로 고작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어선이 뚫리는 건 그 작은 틈이면 충분했다.
게에에에!
마치 방죽이 터진 것처럼 좀비들이 밀려들어 왔다.
좀비들의 첫 타깃은 바로 김수나였다.
“아, 안 돼!”
이런 상황에서, 희나가 대청소 스킬을 발동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야아압!”
온 힘을 다해 신문지를 휘둘렀고, 이내 희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이 일었다.
파아아앗!
공기의 진동이 느껴지자마자 동시에 좀비들이 사라졌다. 아니, 허공에서 지워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창졸간에 수십의 좀비에게 목줄기를 뜯길 뻔한 상황을 모면한 김수나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허.”
그렇게 반경 20미터 이내의 좀비들이 사라졌고, 잠시간의 짬이 생겼다.
그 틈을 타 김수나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 수나야!”
“환웅아, 치료 부탁한다!”
“아, 알았어요, 아빠!”
모두가 김수나에게 정신을 판 사이, 희나는 한숨과 함께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피, 피곤해…….’
급박한 상황에서 스킬을 펼쳐서 그런지, 힘을 조절할 여력도 없었다. 덕분에 기운이 완전히 동났다.
눈앞이 흐릿해졌다. 언제고 혼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언니! 괜찮아요?”
그런 희나를 부축한 건, 권다혜였다.
강진현은 권다혜의 품에서 할딱이는 희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희나 씨…….’
희나가 대청소 스킬을 사용했다. 덕분에 순간 전황은 한결 유리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승기를 잡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희나라는 전투원 하나를 잃었고, 최후의 상황에서 사용할 만한 광역기를 소모해 버렸다.
물론, 일행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스킬 사용이 아쉬운 건 사실.
강진현은 수를 셈했다.
‘그래도 대다수의 잔챙이들을 해결했으니…… 최악의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 말인즉슨, 일행의 안전은 한동안 보장된 상태란 의미였다.
‘그사이, 어떻게 해서든 보스를 잡는다.’
강진현은 허공에 뜬 네크로맨서를 노려보았다.
검은 괴인, 아니 네크로맨서는 희나의 대청소 스킬을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상태였다.
‘역시 B급 대청소 스킬로 S급 던전 보스를 잡는 건 무리였나……?’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감히!]
괴인이 손에 쥔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필드 오브 데스(Field of Death)!]
하늘 높이 치솟아 있던 침엽수들이 하나, 둘 바스러졌고, 바닥이 얼룩덜룩한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좀비 무리의 공격에 이은 두 번째 페이즈, 독 공격이었다.
희원이 흐르는 코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아오, 젠장!”
정수원은 그런 희원을 부축해 끌고 이동했다.
“빨리, 발을 움직여요! 이대로 있다간 중독돼서 죽어요!”
S급 네크로맨서가 시전한 필드 공격은 일행에게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있었고, 독 내성이 약한 하위 랭커일수록 그 영향을 쉽게 받았다.
희원의 코피가 멎지 않는 이유였다.
비각성자인 권다혜와 반 기절 상태인 희나는 다른 사람들의 등에 업힌 채 간신히 독 장판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저쪽! 저쪽에 올라와요! 더 앞으로 피해요!”
“아악!”
사람들은 서서히 중독되어 갔다.
대지에서부터 올라오는 독기에 눈알의 실핏줄이 터졌고, 코피가 흘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상황이었다.
‘젠장!’
강진현은 그답지 않은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고, 그는 아직도 네크로맨서를 베어 내지 못했다.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이 줄어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강진현은 이를 악물었다.
‘지켜 내지 못하다니…….’
그의 힘으로 해내지 못할 것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등 뒤에 있는데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작 그의 능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참기 어려운 무력감이 느껴졌다.
‘……괴로워.’
무력감을 느끼는 건 강진현뿐만이 아니었다.
엄마의 등에 업힌 채, 아우성치는 일행을 바라보는 권다혜 또한 그랬다.
고작 열 살인 권환웅마저 사람들의 깎여 가는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있는 마력을 쥐어 짜내고 있는 상황.
‘나는, 왜 아무런 힘도 없어서!’
나만 각성하지 못했다, 나도 강한 힘을 가지고 싶다…… 하는 치기 어린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쿨럭!”
김수나의 등에 업혀 있던 희나가 검은 피를 토했다. 약해진 몸에 독기가 스며들 대로 스며든 것이다.
“희나 언니!”
좌절감이 권다혜를 엄습했다.
귓가에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당장은 받기만 해도 괜찮아. 대신 다음에 여력이 생겼을 때 남을 도와주면 되는 거지.’
희나는 미래를 기약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권다혜에게는 남을 도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조차!
그 사실이 권다혜를 가장 힘들게 했다.
‘나도 돕고 싶어.’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손바닥을 파고든 손톱이 아프게 느껴질 만도 했지만, 그런 아픔 따위는 권다혜가 느끼는 슬픔, 절망, 무력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건 싫어!’
절규하던 그때, 눈앞에 글자가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흩어져 있던 글자들이 한데 조합되어 문장을 이루었다.
전무후무한 S급 버퍼(Buffer), 권다혜가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