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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55화 (155/228)

던전 안의 살림꾼 155화

“주, 죽을 것 같…….”

“자기야! 마력 포션! 포션 먹자! 꿀꺽, 오구 잘 먹네.”

“으어…… 뭐 이, 이딴 맛이 다 있…… 우욱!”

“안 돼! 포션 토하면 아까우니까 올라오더라도 삼키기다?”

정수원은 꾸역꾸역 마력 포션을 먹어 가며 환영 스킬을 사용했다.

초보 각성자가 스킬을 연달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무리가 갈 텐데, 거기다 맛이 고약하기로는 제일인 마력 포션까지 억지로 섭취하고 있으니…….

‘이러다 정수원 씨가 좀비 되는 거 아냐?’

희나는 헛구역질하는 정수원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강진현은 의외로 가차 없었다.

정수원이 적당히 정신을 차리자마자 출발 지시를 내렸다.

“다시 출발하도록 합시다.”

“네! 가요! 자기야! 나한테 업혀!”

김수나가 씩씩하게 정수원을 둘러업었다.

정수원은 이젠 그걸 부끄럽게 여길 기력조차도 없는 듯했다.

“끄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끙끙 앓는 게 다였으니까.

희나는 강진현의 등에 업힌 채 귓가에 속닥거렸다.

“이 속도로 하루 정도만 더 가면 안전지대가 나올 것 같아요.”

일행은 자기들이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그들은 희나의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도착할 때까지 이 사실은 비밀이지만…….’

위급한 상황이긴 했지만 홈 스위트 홈 스킬을 알리는 건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그사이 구조대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안전지대에서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강진현의 물음에 희나는 눈앞에 뜬 조악한 지도를 보며 시간을 대략 가늠해 보았다.

“음. 우리 일행 속도로는 하루 반 정도고…… 진현 씨 속도로는 반나절도 안 걸릴 것 같아요.”

“잘됐군요. 안전지대에서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고 계십시오.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고 오겠습니다.”

“혼자서 괜찮겠어요?”

“지킬 일행이 없는 편이 더 편합니다. 혼자 하는 전투가 더 익숙하니까요.”

강진현은 솔로 플레이에 특화된 헌터였다.

단체 레이드를 뛰더라도, 선두에 서서 독립적인 전투를 치렀다.

이를테면 전장의 승기를 잡아 전투원들의 사기를 올리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알았어요.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거의 다 왔으니까.”

희나는 강진현을 격려했다.

* * *

“헉, 허억.”

희원이 죽는 소리를 내며 밭은 숨을 내쉬었다.

희나는 강진현의 등에 매달려 진심 어린 응원을 날렸다.

“다리에 힘 빼지 말고, 달려! 오빠!”

“끄어어, 너는, 너어느은……!”

“나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파이팅!”

“으아아…….”

희원은 달리고 있는 일행 중 가장 랭크가 떨어졌다.

스태미나도, 체력도 가장 달리는 게 당연했다.

‘정수원 씨가 부럽다!’

희원은 반 시체 꼴로 김수나의 등 뒤에 업힌 채 이동하고 있는 정수원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나 업어 줄 사람은 어디 없나……?’

강진현의 등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뭐라 속닥이는 희나까지 보니 왠지 모를 서러움이 왈칵, 솟았다.

‘크흑, 바둑이 보고 싶다.’

희원은 토끼 같은 바둑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을 애써 지워 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뛰던 일행은 산 중턱의 어느 공터에서 멈추어 섰다.

“으아악!”

정확히 말하자면 달리던 희원이 퍽 하고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오빠?”

“이희원 씨? 괜찮으십니까?”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희원을 둥글게 둘러쌌다.

“으아아……. 죽겠다.”

희원이 흙투성이가 된 무릎을 탈탈 털었다.

“그렇게 힘들면 말을 하지 그랬어.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동생의 은근한 눈빛에 희원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냐! 뭐에 발이 걸려서 넘어졌어. ……그래, 저기! 저기에 뭐가 있네!”

그러면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저게 뭐지?”

누군가가 입을 열어 의문을 표했다.

“빛이 나는데요?”

“랜턴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동그란 원통이 바닥에 비스듬하게 박혀 있었다.

유리로 만든 듯한 원통 안에는 검푸른 불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도깨비불 같네요.”

“그러게요. 어째 심상찮아 보이는데…….”

김수나가 흠, 하며 원통을 들여다보던 순간이었다.

우우웅! 공기에 파동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피부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의 강한 진동이었다.

“윽!”

희나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 오른 팔뚝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누……구……냐……!]

기이한 사념이 일행의 머릿속에 침투했다.

“뭐, 뭐야?”

“방금 들었어요? 아니, 느꼈어요?”

다들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머릿속 울림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죽……인……다……!]

가장 먼저 그 울림의 정체를 눈치챈 건 바로 희나였다.

“보스 몬스터가……!”

‘내 집은 어디에’ 스킬로 눈앞에 띄워 뒀던 던전 지도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의미하는 커다란 점이 깜빡, 깜빡였다.

그리고 점이 한 번 깜빡일 때마다, 보스 몬스터의 위치는 희나 일행에게 가까워졌다.

믿기지 않는 속도였다.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희나는 크게 외쳤다.

“뛰어요! 보스 몬스터가 접근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번쩍, 눈 시린 섬광과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강한 돌풍이 일었다.

“희나 씨! 꽉 잡으십시오!”

“네, 네!”

희나는 강진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미지의 상황에 대한 불안이 덮쳐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영……원……한…… 영광……!]

[영……생……과…… 죽음……!]

새카만 로브를 둘러쓴 괴인이 검푸른 오라를 풍기며 허공에 부유한 채 있었다.

급작스러운 출현이었지만, 모두 단박에 괴인의 정체를 눈치챘다.

“보스 몬스터?”

일행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괴인, 아니, 보스 몬스터에게서 풍기는 사기(邪氣)가 어마어마했다.

[라이프…… 베슬……을 건드린 자!]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유리 원통이 허공에 떠올랐다. 검푸른 불꽃은 한결 음산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건만, 괴인의 검은 옷자락이 사정없이 펄럭였다.

보스 몬스터가 뿜어내는 검은 마력의 폭풍 때문이었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사이한 기운과 함께 경고처럼 시스템 설명 창이 깜빡였다.

<네크로맨서(S): 시체를 다스리는 위대한 마법사. 스스로의 생명력을 라이프 베슬(Life Vessel)에 봉인하여 영원의 삶을 얻은 리치. 사악한 고대의 마법을 부릴 수 있다.>

희나에게만 설명 창이 뜬 것은 아닌 듯했다.

“말도 안 돼!”

“……네크로맨서?”

“S급이라고?”

절규와 같은 탄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째서?”

강진현 또한 몹시 당황한 듯했다.

인해 전술을 방불케 하는 그 수가 문제가 되었을 뿐이지, 여태까지 마주친 몬스터들의 등급 자체는 B급에서 D급 사이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의 등급은 일반 몬스터와 한 등급 이상 차이 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다름없었다.

즉, 이 던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보스 몬스터의 최대 등급은 A등급이란 소리다.

“S급 던전 게이트가 열릴 확률은 1% 미만일 텐데…….”

거기다 국내에 존재하는 S급 던전의 수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강진현이 현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한곳에 모이십시오!”

강진현의 외침에 일행은 하나, 둘 정신을 차리고 한데 모여들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브리핑해 두었던 전투 진형을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는 전투 대형을 갖추는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박힌 라이프 베슬을 뽑아 품 안에 소중히 넣었다.

[라이프 베슬에…… 손을 댄 인간들…… 자비로운…… 죽음은…… 없다!]

미라처럼 앙상한 몸체에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좀비 몬스터들이 네크로맨서의 부름에 화답했다.

나무 사이로 몬스터들이 하나, 둘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애애액!

그오오오!

마치 군대처럼 열과 행을 갖춘 채였다.

규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섬뜩한 장면이었다.

‘어떻게 하지?’

희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일행을 돌아보았다.

모두의 시선에 공포와 당혹이 서려 있었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살아 나갈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강진현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제가 보스를 상대하겠습니다. 보스를 없앨 때까지만 방어 진형을 유지해 주십시오.”

단순하기 그지없는 지령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강인한 의지는 생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전방을 경계하며 입을 움직였다.

“권준용 씨, 나무뿌리로 땅을 헤집으십시오.”

“예…… 예!”

“이정화 씨는 헤집은 땅을 축이고요.”

“알겠어요!”

“두 분은 바닥을 펄처럼 만들어 몬스터의 발을 잡아 두는 일을 할 겁니다. 능력을 최소한도로 사용하십시오.”

이에 김수나는 금세 자기 할 일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방어선 뚫고 들어오는 놈들을 처리할게요.”

“좋습니다. 그리고 정수원 씨는 힘을 회복하신 후, 환각으로 방어선을 좀 넓혀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진현은 희나와 희원 남매를 바라보았다.

이 둘은 비전투계로, 전력에 실질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됐다.

하지만 희나는 씩씩하게 신문지를 움켜쥐었다.

“우리는 원래 하던 대로 있는 힘껏 수나 씨 도우면 되는 거죠?”

“……위험하니 주의를 놓지 마십시오.”

“진현 씨야말로 우리 때문에 집중력 흐트러지면 안 돼요. 진현 씨 아니면 보스 잡을 사람 없는 거 알죠?”

“예.”

강진현은 짧은 대답과 함께 눈짓을 보냈다.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모두 알 수 있었다.

이제, 전투는 시작이다.

* * *

권준용이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움직여라, 움직여……!”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땅이 푹푹 꺼졌다. 나무뿌리가 바닥을 뱀처럼 헤치고 있었다.

케엣!

나무뿌리가 만들어 낸 구덩이에 전진하던 좀비 한 무리가 굴러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이정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계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순식간에 구덩이 안에 습기가 서리고, 퍽퍽하던 흙이 진흙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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