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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54화 (154/228)

던전 안의 살림꾼 154화

* * *

“능력은 사용하시되, 자기 체력과 마력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만약 넘치게 사용하면 어떻게 돼요?”

“에너지 드레인 상태가 되어…….”

일행은 잠시 행군을 멈춘 채, 강진현에게 각성 능력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다들 이런저런 궁금한 점을 물으며 자신의 능력을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궁리가 한창이었다.

사람들의 눈은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들이 각성했으니, 이전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한편, 희나는 그들을 피해 슬쩍 돌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혜야.”

“……왜 부르세요?”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푹 파묻고 있던 권다혜가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그냥. 거기서 뭐 하나 싶어서.”

“…….”

권다혜가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속이 많이 상했나 보네.’

그도 그럴 만했다.

‘남들 모두 각성했는데, 자기한테만 아무 일이 없었잖아.’

일행 중 권다혜만 유일하게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네 살의 어린 나이 때문에 그렇다기엔 고작 열 살에 불과한 권환웅마저 힐러로 각성한 상황.

희나는 속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안 그래도 자기가 도움이 안 된다면서 자책하는 앤데…….’

자기 혼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며 속상해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혜야, 남들은 대단한 능력이 생긴 것 같은데, 너는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한 거지?”

“……나도 각성해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싶어요.”

“네 마음 이해해. 나도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해 봤거든. 부모님을 잃었을 때 내가 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고…… 오빠가 많이 다쳐 왔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지.”

희나는 멋쩍은 듯 뺨을 긁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꼭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더라.”

“그래도 언니는 각성했잖아요.”

“나? 이건 너한테만 알려 주는 비밀인데, 내 클래스는 C급 살림꾼이야. 심지어 처음에 각성할 때는 D급이었고 말이야.”

그제야 권다혜가 고개를 들어 희나를 바라보았다.

“살림꾼이요? 그런 클래스는 처음 들어 보는데…….”

“당연하지. 전투계도 아니고, 청소하기 밥하기 같은 생활 스킬만 가득하니까. 같은 랭크 각성자들에 비해서 스탯 능력치도 낮은 편이고…….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별로인 것처럼 들린다, 그치?”

“……별로 안 그래요.”

권다혜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렇게 봐 준다니 고맙네. 난 처음에 능력 각성했을 때 되게 실망했거든. 랭크도 낮고, 클래스도 이상해서.”

회사에서 야근 중 각성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희나는 생긋 웃음 지었다.

“사실 내 능력은 일반인이랑 별반 다를 바 없어. 지금이야 스킬 쓰는 방법을 익혀서 내 몸 정도는 겨우 지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권다혜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알았어. 결론부터 말할게.”

사실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주 뻔했다.

“내가 능력이 없다고 자책해 보았자 바뀌는 건 하나도 없어.”

직설적인 지적에 권다혜는 입을 꾹 다물었다.

“…….”

희나는 강진현과 김수나를 가리키며 속닥거렸다.

“저 두 사람 기준에서는 너나 나나 별다를 것 없이 도움 안 되는 사람 아닐까?”

“그래도 언니는 전투에 참여하잖아요.”

“진짜 그게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해? 내가 빠져도 전투는 잘 돌아갈걸. 진현 씨나 수나 씨가 아주 살짝 피곤해할 수야 있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두 전투계 각성자가 없었더라면 이미 일행은 좀비에게 뜯겨 뼈만 남은 지 오래였을 테니까.

“거기다 너나 나나, 당장 꼭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그리고 음, 하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물론 저 두 사람의 희생과 노력을 당연히 여기라는 건 아니고……. 나를 자책하기보단 그냥 상황을 고맙게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지.”

“그건 너무 염치없는 생각 아니에요?”

“별로. 원래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네가 손해, 내가 손해, 이렇게 이득 따져 가며 사는 건 인생에 별반 도움이 안 돼.”

표현이야 ‘대가 없는 친절’이라고 하지만, 친절은 언제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적어도 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은 받기만 해도 괜찮아. 대신 다음에 여력이 생겼을 때 남을 도와주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난 여기서 나가면 진현 씨에게 아주 맛있는 밥을 해 줄 생각이야. 진현 씨는 내가 한 요리를 먹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물론 강진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몸보신할 만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잔뜩이었다.

‘어떤 음식을 하는 게 좋을까?’

희나가 잠깐 딴생각에 빠진 사이, 권다혜 역시 머리를 정리한 듯했다.

찜찜함이 완전히 해소된 듯 보이지는 않았지만, 우울함은 한결 가신 낯이었다.

“……알았어요.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괜히 나 혼자 우울해하고, 징징거려 봤자 상황이 바뀌진 않으니까요.”

희나는 빙그레 웃으며 권다혜의 어깨를 톡톡 쳤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을 수도 있지. 그래도 계속 안 좋은 생각만 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위로해 줘서 고마워요.”

“아냐. 위로는 뭘. 그냥 얘기 좀 나눈 거지. 대신 나중에 도움받을 일 생기면 꼭 받을 테니까, 도와줘야 해?”

희나의 너스레에 권다혜가 어처구니없어했다.

“방금까진 도움이 꼭 안 돼도 된댔으면서…… 말이 너무 금방 바뀌는 거 아니에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킥킥거리며 웃는 희나의 모습에 결국 권다혜도 따라 피식, 웃고야 말았다.

* * *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앞으로의 바뀐 작전을 듣던 중 희나가 손을 들어 물었다.

“그러니까, 진현 씨랑 수나 씨 생각에 이제 강행 돌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거죠?”

“네! 새로 각성하신 분들은 스킬 사용법이나 활용법이 조금 미숙하긴 한데, 원체 랭크가 높아서요! 출력발로 부수면서 가면 딱일 것 같아요.”

김수나가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강진현과 김수나는 근거리 공격에 최적화한 스킬을 가진 딜러와 탱커였고, 덕분에 벌 떼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해치우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역기나 원거리 스킬을 가진 각성자의 등장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정수원 씨 환각 스킬이 몬스터에게도 일부 먹히는 듯하니, 최대한 전투를 피해 이동할 수 있을 겁니다.”

강진현이 과격하게만 들리는 김수나의 전법을 부가 설명했다.

“아! 수원 씨 환각술이 좀비한테도 먹힌다니, 다행에요!”

“하하, 몇 마리 유인해 와서 시험해 봤는데…… 잘 듣더라고요.”

정수원이 멋쩍은 듯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역시, 우리 자기는 못 하는 게 없지!”

김수나는 그런 정수원이 사랑스럽다는 듯 꽉 껴안았다.

“으악! 수, 수나야! 아파! 몸 터질 것 같다!”

“아, B급으로 각성해서 이 정도는 힘줘도 될 줄 알았는데…… 안 되네.”

“히익, 그동안 힘 조절하고 있던 거였어?”

“당연하지. 포옹하다가 자기 갈비뼈 부러뜨릴 일 있어?”

달콤 살벌한 대화는 뒤로한 채, 희나는 강진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전투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건데요?”

“권준용 씨가 나무뿌리를 자라게 해서 몬스터들의 발목을 잡고, 이정화 씨가 워터 밤(Water Bomb) 스킬을 이용하여 원거리에서 광역 보조해 주실 겁니다.”

새로 각성한 세 명이 되도록 안전한 곳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머리를 쓴 듯했다.

“무엇보다 체력과 근력, 민첩이 높아져서 빠른 이동이 가능하게 된 게 큰 장점입니다. 아, 그리고 희나 씨와 권다혜 양, 권환웅 군은 저희가 업고 이동할 예정입니다.”

희나는 이동 속도가 느려서 그런 것이고, 권다혜는 비각성자라, 권환웅은 나이가 어려서 업고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아하…….”

“여기까지 정했고, 이제 슬슬 이동하려 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좀 지체했다 보니까요.”

“앗, 알겠어요! 우리 빨리 출발하죠.”

희나는 강진현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업히며 권다혜를 슬쩍 바라보았다.

‘이것 봐. 난 각성했는데도 다른 사람 등에 업혀 이동해야 하거든.’

시선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는지, 권다혜는 뚱한 눈으로 희나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아빠의 등 뒤에 매달렸다.

희나는 그 순순한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였다.

“너는 아주 진현이 등 껌딱지다? 아주 자가용인 줄 알겠어.”

신나게 희나를 놀려 대는 희원 때문이었다.

희나는 오빠를 찌릿, 째려보았다.

“오빠야말로 뛰다가 뒤처지지나 마시지?”

“그래. 오빠 걱정해 줘서 고맙다.”

다정한 대화에 강진현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힘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중간에 쉬었다 가도 되고, 속도도 줄일 테니까요.”

“옙!”

그의 신호와 동시에 일행은 재빨리 발을 내디뎠다.

각성한 탓일까, 발걸음 소리가 한결 힘차고 가벼웠다.

* * *

바위 뒤에 몸을 숨긴 강진현이 작게 속삭였다.

“정수원 씨. 9시 방향에 환영, 부탁합니다.”

“느에에에…….”

“자기야, 힘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짜내자!”

“으아아아…….”

정수원이 끙, 하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강진현이 지시한 방향에서 어렴풋이 사람 모양을 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밝은 대낮인지라 그 모습은 몹시 선명히 보였고,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기에 아주 좋았다.

끄어어…….

구르륵, 끅!

몬스터들이 하나둘, 정수원이 만든 환영을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은 몬스터들도 물살에라도 휩쓸린 듯, 그곳을 향해 우르르 이동했다.

소란이 일어나는 쪽으로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마지막 몬스터 한 마리까지 저 먼 곳으로 이동한 걸 확인한 후, 희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이번에도 잘 피했다.”

“정수원 씨 덕분에 편하게 갑니다.”

아들을 업은 권준용 또한 정수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장본인인 정수원은 감사 인사를 받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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