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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의 살림꾼-153화 (153/228)
  • 던전 안의 살림꾼 153화

    “응? 뭐라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되고, 밥만 축내고 있는 건 싫어요. 식충이 같아요.”

    “뭐?”

    그 발언에 희나는 깜짝 놀랐다.

    “다혜야!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어른들은 당연히 애들을 돕는 거야. 애들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마, 그래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남긴 거야?”

    희나의 물음에 권다혜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다들 뭔가 하고 있잖아요. 환웅이는…… 많이 어리고요.”

    “너도 어려, 다혜야! 열네 살밖에 안 됐잖아.”

    희나의 말에 권다혜는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기도 이 정도면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몰랐다.

    “열네 살이나 된 거예요. 키도 언니만큼 크다고요.”

    권다혜는 키가 큰 편이긴 했다. 160cm 초반인 희나와 눈높이가 비슷했으니까.

    “나도 뭐라도 하고 싶어요. 어른들 사이에서 벌벌 떨기만 하는 건 싫어요.”

    “다혜야.”

    한숨과 함께 희나가 입을 열려는데, 강진현이 희나를 불렀다.

    “갈림길입니다. 희나 씨, 방향 좀 확인 부탁드립니다.”

    희나는 강진현과 권다혜를 번갈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있다가 마저 얘기하자. 기다리는 동안 이거 다 먹고. 알았지?”

    그러면서 권다혜의 손바닥 위에 산딸기를 억지로 쥐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희나는 강진현과 경로를 의논하며 산딸기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것들이었다.

    새콤달콤한 과육이 톡톡 터지는 게, 혀 밑에 침이 절로 고이는 맛이었다.

    ‘맛있네.’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상태 창을 확인하니 스탯이 조금씩 올라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거, 스탯 영구 증가인 건가? 대박이다!’

    남들에 비해 기본 능력치가 떨어지는 편인 희나에게는 굉장한 희소식이었다.

    한편…….

    “으악!”

    뒤따라오던 김수나가 소리를 꽥 질렀다.

    정수원이 달려들어 김수나의 입을 텁, 하고 막았다.

    “수나야! 진정해! 좀비 몰려 온다!”

    “읍, 으읍……! 아, 아라써, 자기!”

    김수나는 B급 헌터답게 정수원의 손길을 가볍게 뿌리치곤 목소리를 낮추어 호들갑을 떨었다.

    “대박! 저 랭크 올랐어요! B랭에서 A랭으로!”

    일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급이 높을수록 랭크 올리기는 힘들었다.

    C등급에서 B등급으로 올린 케이스도 손에 꼽을 만한데, B등급에서 A로 올렸다니!

    “와……. 이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행운이 믿기지 않는지 김수나가 반쯤 넋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혹시 그거, 산딸기 효과가 아닐까요?”

    희원이 조심스럽게 가설을 펼쳤다.

    “사실 저도 방금 메인 스킬 랭크가 하나 올랐거든요. 산딸기 효과로 능력치가 활성화된다는 설명이 뜨면서요.”

    희나도 오빠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저도 산딸기 먹고 스탯 올랐어요!”

    강진현 또한 옆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무엇인가 효과를 보긴 본 듯했다.

    “산딸기에, 주먹밥에 들었던 클로버 효과까지 중첩돼서 이렇게 된 거 같네요.”

    마침내 희나가 결론을 내렸다.

    “S급 행운의 클로버 효과 엄청나네.”

    “아까는 식량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다들 웅성거리며 한마디씩 던지다, 대화 소리에 끄어엉 하며 나타난 좀비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

    S급 클로버와 ?급 산딸기의 효과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희나와 강진현의 인도 아래 천천히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던 때였다.

    “발밑 조심하십시오. 미끄러워 보이는군요.”

    주의를 주자마자 누군가의 발이 미끄러졌다.

    “악!”

    권환웅이었다.

    “환웅아!”

    기우뚱한 아들을 붙잡기 위해 아빠인 권준용이 몸을 날렸다.

    “……잡았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권환웅을 끌어안은 권준용의 몸이 비딱하게 기울었다.

    “으어억!”

    권준용의 몸이 가파른 비탈길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비탈길의 끝에는 까마득한 벼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안 돼!”

    이정화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땅에서 검은 무엇인가가 팟, 하고 불쑥 튀어나왔다.

    권준용은 재빨리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 장면에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두 사람을 잃을 뻔했네.’

    희나가 놀란 마음을 안정시키는 사이, 권준용은 아들을 안고 비탈길 위로 기어올라 왔다.

    “여보!”

    이정화가 둘을 덥석 안았다.

    “아빠! 괜찮아요? 권환웅! 너는 어디 다친 데 없고? 응?”

    권다혜는 몹시 놀란 듯 아빠와 동생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 그래. 나는 괜찮다. 마침 나무뿌리 튀어나온 게 있어서 그거 잡고 올라왔어.”

    그런데 권준용은 다소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귀신에라도 홀린 듯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강진현이 나서서 권준용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걸을 수는 있으시겠고요?”

    그의 물음에 권준용이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휘휘 가로저었다.

    “안 괜찮으시다는 뜻입니까?”

    “그게 아니라……”

    “불편하신 데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포션으로 응급 처치가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라…… 강 헌터님, 제 눈앞에 각성했다는 글자가 뜨는데요…….”

    “예?”

    “‘축하합니다, ‘식물 테이머’로 각성하셨습니다!’라는 시스템 문구가 보입니다.”

    어쩐지, 시선이 허공에서 떠나질 않더니만 시스템 문구를 읽느라 정신이 쏙 빠져 있었던 듯했다.

    그는 더듬더듬 눈앞에 뜬 문장들을 읽어 나갔다.

    “산딸기 효과가 극대화되어 잠들어 있던 각성 능력이 깨어났다고…….”

    “허어.”

    그 소리를 들은 희원이 탄식인지, 감탄일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클로버에, 산딸기 효과가 이런 식으로까지 나타난다고? 일반인을 각성자로 일깨워? 뭐 이런 게 다 있어?”

    희원의 말대로 이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각성자의 각성 조건에 대해 밝혀진 바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히 밝혀진 것이 있다면, 인공적인 방법으로 각성을 유도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게 해내네.’

    희원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희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동생아, 네가 뭔가 한 건 한 것 같다.’

    그가 감탄하는 사이였다.

    “아빠, 많이 다쳤어요?”

    권환웅이 울먹거리며 아빠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드러난 맨팔은 맨바닥에 쓸린 상처로 엉망이었다.

    “나 때문에 아빠가 다쳤어. 으허엉.”

    “어허. 아니야. 아빠 괜찮아. 울면 좀비 찾아온다. 쉿!”

    “끄응, 흐으윽.”

    권환웅은 끙끙거리며 아빠의 팔에 매달렸다. 이에 이정화가 아들을 말리려 했다.

    “얘야, 그렇게 매달리면 아빠 아플 수도 있……!”

    순간, 권준용의 상처 부위에 은은한 빛이 맴돌다 사라졌다.

    일행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권준용 또한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사라졌어?”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권준용 씨, 식물 테이머로 각성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건 힐러의 능력인데.”

    강진현에 물음에 답한 건 권준용이 아니었다.

    “……허엉, 눈앞에 글자가 떠요. 제가 힐러래요.”

    아빠의 상처에 매달려 있던 권환웅이었다.

    확인해 본 결과, 권준용은 A급 식물 테이머로, 권환웅은 B급 힐러로 각성했다.

    “열 살에 B급으로 각성이라니. 나이 먹으면 A급으로도 올라갈 수 있겠는데.”

    희원이 작게 감탄했다.

    힐러는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총칭해 부르는 명칭이었다.

    전체 각성자 대비 비율이 높지 않아 대체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B급 이상의 상급 힐러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거기다가 열 살에 B급으로 각성하다니!

    충분한 경험과 노력을 쌓는다면 A급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만한 나이였다.

    “……지금 이곳에서 겪은 일은 여러분의 안전상 보안에 유의가 필요합니다. 나가면 모두들 청룡 길드에 한번 들러 주십시오.”

    천하의 강진현조차 상황을 잊은 채 안전을 빙자한 스카우트 제의를 건네는 이유였다.

    “네가 우리한테 먹인 S급 클로버 효과가 이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야.”

    희원이 희나에게 속삭이며 일행을 슬쩍 둘러보았다.

    희나도 오빠의 말에 동의했다.

    “각성자한테만 효과가 있었던 게 아닌가 봐. 눈에 띄진 않아도 다른 비각성자들한테도 뭔가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을 것 같아.”

    시스템 창이 안 떴다 뿐이지, 시력이 좋아졌다거나, 근육이 생겼다거나, 그림을 잘 그리게 됐다거나…… 그런 능력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김수나, 정수원 커플의 호들갑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

    “왜? 무슨 일이야, 자기?”

    “나도 각성했대.”

    “뭐?”

    평소와 비슷한 닭살 돋는 멘트일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대단한 이야기였다.

    “각성하셨다고요?”

    “네. B급 환각술사라는데요?”

    정수원이 다소 얼빵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거 좋은 건가? 처음 들어 보는 능력들인데……. 쓸 만한 싸움 기술 있으면 좋을 텐데요.”

    중얼거리면서 자기 능력 창을 차근차근 읽던 와중, 또 하나의 각성자가 탄성했다.

    “저도 각성했다고…… 뜨네요? B급 수계 능력자라네. 어머, 이건 또 뭐야?”

    이정화의 손바닥 위에 주먹만 한 물방울이 몽글몽글 떴다. 능력 발현이었다.

    사태를 지켜보던 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러다 우리 일행 전부 각성해 버리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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