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안의 살림꾼 152화
시스템 창이 뜬 건 희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어? 이거 뭐야! 대박인데요?”
김수나는 입안에 든 밥알을 꿀꺽 삼키며 연신 감탄했다.
“이야, 이거…… 와. 대박. 와 씨…….”
그 와중에도 시스템 창은 열심히 상태 변화를 띄웠다.
등등…….
희나가 한꺼번에 다져 넣은 채집물들의 효과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채집한 식물 모두 ‘먹을 수 있는’, ‘효과가 좋은’, 혹은 ‘맛있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거기다 내 살림꾼 스킬 버프까지 받아 버렸으니…….’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게 이상했다.
손에 쥔 주먹밥을 내려다보니 역시나, 상태 창이 떴다.
<갖가지 산나물과 버섯을 섞은 구운 주먹밥(A): 던전에서 갓 캐내 싱싱한 식물과 버섯을 넣어 만든 주먹밥. 불에 구워 풍미를 더했다.>
그 밑으로는 들어간 재료들의 이름과 그 효능이 줄줄이 쓰여 있었다.
“역시 밥심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먹으니까 확 힘이 나는데요?”
권준용이 혀를 내둘렀다.
상태 창이 뜨지 않을 뿐, 비각성자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안에 풀만 들었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권환웅도 엄지를 척 내밀었고, 권다혜마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이거 대박. 완전…… 와, 맛도 대박인데, 효과가! 희나 씨, 이거 대체 뭐예요?”
김수나는 한참 동안 감탄하다 희나를 덥석 붙잡았다.
강진현은 그런 김수나를 슬쩍 밀어냈다.
“타인의 능력을 함부로 물어보는 건 실례입니다, 김수나 씨.”
은근슬쩍 벽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첫 만남 때 보았던 깐깐하고 원리 원칙주의적인 모습이었다.
희나는 강진현의 팔을 톡톡 치며 그의 등 뒤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니에요.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아요. 이미 효과를 보셨으니까요. 궁금해하시는데, 괜히 억측하게 두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희나 씨가 괜찮으시다면…… 예.”
강진현은 조금 시무룩한 듯 물러났다. 희나는 강진현에게 속닥거렸다.
“다른 데서 꼬셔도 저 어디 안 갈 거니까,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그 말에 강진현의 낯이 밝아졌다.
“……네!”
역시, 희나의 능력을 밝혔다가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릴지가 걱정이었나 보다.
‘잔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라니깐.’
희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설명했다.
“각성 클래스가 음식과 관련 있는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식용 식물들도 구분해서 딸 수 있었던 거고…….”
적당히 밝혀도 괜찮은 선 안에서 설명을 했다.
“제가 만든 음식에 상태 창이 뜨고 특별한 효과가 생긴 건 아무래도 던전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김수나는 오호라, 하며 금방 납득했다.
“하긴. 몬스터 고기로 만든 육포도 상태 창이 뜨긴 하죠. 이런 식으로 버프가 마구 붙지는 않지만.”
그러면서 고급 육포 중에는 이 주먹밥처럼 특수 효과가 붙은 것도 있다는 소리를 들어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튼 희나 씨 덕분에 귀한 걸 먹어 보네요! 자기, 이거 되게 좋은 거야. 빨리 고맙다고 해요.”
김수나의 속닥거림에 다들 한마디씩 건넸따.
“오……. 기분의 문젠 줄 알았는데, 정말로 좋은 거였군요. 잘 먹었습니다.”
“누나, 진짜 맛있었어요.”
“어머, 밥만 먹었는데도 푹 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역시 각성자 능력은 남다른가 봐요. 음식도 범상치 않네.”
피로로 축 늘어졌던 사람들의 낯에 활기가 맴돌았다.
의도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절로 마음 뿌듯해지는 장면이었다.
희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해! 탄수화물 최고!’
굴 입구는 풀숲에 깊이 숨겨져 있어 몬스터의 눈에 띌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그 덕에 일행은 주먹밥을 먹고 휴식을 푹 취할 수 있었다.
내내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강진현마저도 조금 누그러진 듯 보였다.
던전에 떨어진 이후, 거의 처음으로 맞이하는 나른한 휴식이었다.
문득 희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데 말이야. 나오는 몬스터는 좀빈데 왜 배경은 유럽 산길이래? 장르가 좀 잘못 섞인 것 같은데.”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김수나 또한 희원의 의견에 동감하는지 덩달아 꿍얼거렸다.
“그러게요. 좀비 하면 도시 배경이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적어도 좀비면 평지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던전, 고증에 문제 있어.”
“요즘은 좀비물이 워낙 많아서 산에서도 뛰어다니고, 열차에서도 뛰어다니고. 배경 안 가리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보죠.”
가만히 앉아 있던 권다혜가 뚱하니 중얼거렸다. 내내 말이 없더니, 주먹밥을 먹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일행은 좀비물의 고증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실없는 토론을 벌였다.
피곤한 현실을 잠시 잊기에는 나쁘지 않은 주제였다.
굴속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부스럭,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엇인가 검은 덩어리가 쿵! 하고 굴속으로 추락했다.
“뭐, 뭐예요?”
“몬스턴가?”
모두 당황한 와중, 강진현만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물러서십시오.”
그는 단도를 꺼내 검은 덩어리의 목 줄기를 그었다.
끄륵, 끅…….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의 숨이 끊어졌다.
강진현은 사체에 손을 대고 상태 창을 살폈다.
“……사슴이군요.”
희나도 슬쩍 다가가 상태 창을 띄웠다.
<사슴(D): 산짐승. 고기 맛이 아주 좋은 동물이다.>
……정말로 사슴이었다.
심지어 보란 듯 ‘고기 맛이 아주 좋다’고 쓰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이걸 구워 잡수시오’ 하고 소리치는 거였다.
강진현도 같은 판단을 한 듯했다.
“식량으로 삼으면 되겠군요. 던전 부산물로 만든 음식물이니 인벤토리 창에 장기 보관도 가능하겠고요.”
“그러게요. 제가 구우면 부가 효과가 나타낼 수도…….”
슬슬 식량이 떨어져 가던 차였다. 아주 잘된 일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사슴이 떨어지고 별일이 다 있네. 고기 먹고 힘내라는 뜻인가?”
희원이 뺨을 긁적거리며 사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순간이었다…….
굴 입구에서부터 무엇인가 후두두둑 굴러떨어졌다.
“……이건 또 뭐지?”
희나는 발치까지 굴러들어 온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곧바로 상태 창이 떴다.
<산딸기(?):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새콤달콤한 산딸기. 신체 능력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먹어 봐서 해될 건 전혀 없어 보인다.>
등급이 물음표로 뜬 데다, 설명이 구구절절 길기는 했지만, 어쨌든 먹어도 되는 산딸기였다.
그것도 알 하나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이나 큰!
어느새 다가온 김수나가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딸기를 주워 모으면서 중얼거렸다.
“이거 참 신통방통하네. 먹을 게 하늘에서 막 떨어지네……. 우연이 겹쳐도 이 정도면 거의 로또 당첨급 확률 아닌가?”
그러다 헉, 하고 고개를 들었다.
“설마! 행운 버프 받아서 그런가? 아까 주먹밥 버프 중에 행운 스탯 올려 주는 게 있었잖아요! 대충 열 배쯤!”
희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행운 버프 때문에 먹을 게 굴러떨어지는 거라고요?”
“확률로 치면 밖에 널리고 널린 좀비가 떨어지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사슴 고기랑 산딸기가 떨어진다? 이거야말로 행운 스탯으로 땡잡았다는 소리 아닌가요?”
듣고 보니 꽤 그럴싸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설명 외에는 괴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S급 행운의 클로버가 영험하긴 한가 보다.”
희원도 김수나의 의견에 동의하며 감탄했다.
그런 희원의 머리 위로 작은 도토리 한 개가 따콩, 하고 떨어졌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아야!”
마치 누군가가 ‘그렇다’라고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이후로도 굴 안으로 작은 메추리, 도토리 등이 툭툭 굴러떨어지는 일이 이어졌다.
희나 일행은 한동안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으느라 바빴다.
* * *
해가 졌고, 몬스터들이 잠잠해지는 시간이 돌아왔다.
일행은 반나절간의 꿀 같은 휴식을 즐긴 후, 다시 여정을 떠났다.
“출발하기 전에 이것 좀 드세요.”
희나는 모아 두었던 산딸기를 일행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등급은 조금 의심스러웠으나 먹어도 된다는 설명이 떴으니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신체 능력을 활성화해 준다니까, 밤 산행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나란히 걷고 있는 권다혜, 권환웅 남매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거, 너희도 좀 먹어 둬.”
며칠 동안 노숙하며 험한 광경을 잔뜩 봤을 아이들이다.
어른도 침착하게 버티기 어려운 환경에서 군소리 없이 의젓하게 따라 준 게 고마웠다.
“다혜야, 너도 먹어. 입맛이 없어?”
희나는 눈을 내리깐 채 걷고 있는 권다혜 앞으로 산딸기를 내밀었다.
“누나, 누나도 먹어. 희나 누나가 따다 준 거잖아. 되게 맛있어.”
권환웅도 옆에서 누나를 재촉했다.
“맞아, 다혜야. 계속 밥도 남기고 다른 사람한테 준다면서? 그러다 몸 상해.”
한창 예민할 때라 그런 걸까, 권다혜는 배급한 음식도 다 안 먹고 그대로 두곤 했다.
‘아까 주먹밥은 맛있게 먹어서 이제 괜찮을 줄 알았는데…….’
희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권다혜를 바라보았다.
권다혜가 작게 입을 연 건 그 순간이었다.
“……내고 있는 게 싫어요.”